세상사는 이야기 96

토박이

우리가 평소 입버릇처럼 말하는 토박이라는 말은 본토박이를 줄인 말이다. 한 고장에서 대대로 살아오는 사람을 일컫는 말로 정서적으로 매우 훈훈한 느낌을 주기도 하며 또 한편으로는 타지방 사람들에 대한 텃세를 상징하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서울에는 토박이들이 많지 않고 토박이들의 텃세가 심하지 않다. 현재 서울에는 타지역에서 이주 온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고 서울 토박이들도 주변 신도시로 많이 이주하여 서울의 토박이 개념은 타 도시에 비해 매우 모호한 편이다. 오히려 텃세나 토박이란 말이 존재하는 곳은 서울의 전반적인 개념이 아니라 동네의 작은 구분에서 그러한 현상은 잘 드러난다. 주로 오랫동안 같은 지역정서를 유지하고 있는 변두리 동네가 바로 대표적이다. 토박이들이 많이 사는 동네는 처음엔 친해지기가 ..

이루어진 꿈★세 가지

매년 새해가 되면 원치 않아도 바라는 일이 생긴다. 아니, 바라는 일을 기원하는 시간이 생긴다. 그러면서 올해는 뭘 바랄까 생각에 젖곤 한다. 하지만 언제나 그 생각의 결론은 뻔하다. 식구들 아프지 않고 건강하고 돈이나 많이 생겼으면 좋겠고 불의의 사고 없이 모든 것이 자연의 섭리대로 진행되었으면 좋겠다는, 소원의 교과서 같은 내용들이다. 올해 초에도 아마 그런 소원을 빌었던 것 같다. 아니, 분명 그랬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처럼 한해가 다 가는 이때 올해를 돌이켜 보면 과연 그것이 이루어졌을까?식구들 아무 일 없는 걸 보니 모두 건강히 살고 있는 것 같고 밥 굶은 기억도 없고 주체못할 정도로 돈이 넘쳐나진 않는 걸로 보아 돈도 굶어죽지 않을 만큼 벌었나보다. 그러니 올해는 더도 덜도 말고 딱 적당히 지..

비누

우리집에는 비누가 없다. 남들이 들으면 아마 일인당 국민소득 만불시대에 이게 무슨 말인지 헷갈릴게다. 집에 있는 비누는 향수 냄새가 꽤 많이 나는 포도주색의 반투명한 미용비누와 피부과에서 직접 제조했다는 냄새없는 하얀색 비누의 두 종류뿐이다. 두 비누 모두 거품이 많이 일어나지 않아 비누칠을 듬뿍 북적거리는 맛도 없고특유의 비누 향기가 없어 조금 싱겁다. 비누는 아무래도 비누다와야 한다.잔뜩 가공된 화장품의 향기보다 풋풋한 비누향이 더 좋게 느껴질 때가 많으니까. 내가 알고 있는 비누는 다이얼 비누로 시작해서 이의 아류작인 데이트 비누, 그리고 인삼 냄새나는 인삼비누, 우유비누, 큼직하고 딱딱한 비놀리아, 그리고 식물나라 정도인데 이런 비누를 우리집에선 찾을 수가 없다.그래서 매번 비누를 쓰면서 아쉽고 ..

평양에 울린 윤도현의 아리랑

얼마전에 MBC방송에서 평양공연을 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 공연에는 가수 윤도현도 참가했었다고 하는데       강한 비트로 편곡한 아리랑에 대해서 말들이 많았다.       북한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앞서가는 음악이었다는 소리도 있고       나름대로 감동적인 무대였다는 기사도 있었다.       윤도현이 부른 아리랑이라면 지난 6월 월드컵에서 응원가로 쓰인 곡일텐데       그 음악을 생각하면서 평양의 분위기와 연결을 시키려니       그 또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며칠 뒤 MBC에서 평양공연 실황을 녹화로 보여주었다.    평양에서는 생중계를 했다던데 왜 우리는 녹화를 봐야 하는지.....   공연 끝부분에 윤도현이 나왔다.       특유의 시원..

뷔페

예전에 축구팀 동료에게서 들은 얘기가 기억난다. 30대 초반인 이 친구가 자란 곳은 강원도 어느 시골이었는데, 중학교 땐가 읍내에 뷔페라는 음식점이 생겼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먹는 일처럼 세상에 중요한 일이 없었던 때라 일정한 돈만 내면 음식을 마음대로 먹을 수 있다는 메리트는 바로 주변 사람들에게 화제가 되었고, 따라서 사람들은 그 뷔페가 문을 여는 날 모두 읍내로 몰려갔다고 한다. 뷔페에 대한 인식부족과 시골사람 특유의 식성을 계산 못한 채 문을 연 뷔페는 음식을 충당하지 못해 문을 연지 4시간 만에 문을 닫았고 이후 다시 문을 여는 데 6개월의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왜 이리 웃었는지. 아미도 시대가 가져다주는 묘한 변화의 느낌을 가졌던 모양이다.  * * * 오전에 얼..

지하철의 여인

밤늦은 시간,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지하철을 탔다. 늦은 시간임에도 사람은 많았지만 용케 한자리를 차지하고 앉을 수 있었다. 요즘 공부에 열을 올리고 있는 한문책을 펴고 몇자 보니 금방 피곤해진다. 잠시 눈을 감으니 조금 편안해졌다. 내 앞에 서있는 사람은 내가 자리에 앉을 무렵부터 전화통화를 하고 있었다. 책을 덮고 눈을 감으니 그 목소리가 더욱 크게 들려온다. 지하철에서 남의 전화통화를 옆에서 듣는 일이란 별로 유쾌하지 않다. 전화하는 사람의 목소리는 유난히 클뿐더러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의 대화내용이란 전혀 중요하지 않은 내용이니까.  애써 듣지 않으려는데 앞사람의 전화통화는 계속 내 귀를 통해 예민한 신경을 정확히 찌른다.  "아이, 이 아저씨가 정말 못하는 말이 없어~" 30대 이상의 아줌마로 예..

漢 字

갑자기 때늦은 공부에 열을 올리는 요즘이다.      한자능력검정시험이란게 있어 이에 대비하는 공부다.      평소에 자신만만하던 한자 실력이었지만       우연히 서점에서 본 3급 시험 문제집에 쩔쩔매고 나서는       본격적으로 공부에 들어간 것이다.      그렇다고 머리를 싸매고 책상머리에 앉아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것은 아니고       또 도서관이나 고시원에 들어가 고시공부하듯 하는 공부는 아니다.      그저 오가는 전철안이나 틈나는 시간을 이용해      교재를 뒤적거리는 게 공부의 전부다.      사람이 다 그렇겠지만 몰랐던 것을 알게 되면 바로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싶어진다.       한자도 마찬가지여서 몰랐던 자, 몰았던 단어를 알게 되면       꼭 누..

지하철 잡상인

전문가에 비하면 새 발의 피겠지만 내게는 남보다 조금 나은 재주가 한가지 있다. 음악을 듣는 귀가 남보다 조금 발달한 것 같다. 정식으로 음악 공부를 한 적은 없고, 물론 음악을 정식으로 배워보려고 노력한 적도 없다. 그저 라디오를 통해, 오디오를 통해 들리는 음악을 주의깊게 들으려는 노력을 하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한 것뿐이다. 물론 그 방법이 옳은 건지 아닌지도 알 수 없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전문가라는 사람을 만나서 상의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내가 원하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 뿐이지 그것을 객관성을 빌어 확인받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리고 그 전문가라는 사람도 내가 인정해야 전문가일 뿐이라는 생각이다.  이렇듯 음악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재주를 가졌다고 스스로 생각하지만 내가 음악을 전문으로 하거나 ..

사무실에 찾아온 친구

퇴근 무렵 친구가 사무실에 찾아왔다. 언제나 유쾌한 그 친구의 얘기를 들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항상 신이 난 표정과 말투로 재미있게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친구는 평소와 다름없이 이런 저런 얘기를 내게 전해주고 있었다. 이야기 중 한 대목에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먹고...'라는 부분이 나왔을 때 얼른 내가 물었다.  "어느 회사에서 만든 자판기였어?" 친구는 잠시 알 듯 모를 미소를 지었다. 평소 그를 잘 아는 나였으니 그 잠깐의 변화를 읽을 수 있었지 아마 다른 사람 같으면 전혀 눈치채지 못할 짧은 순간의 변화였다. 친구는 얼른 원래의 표정과 말투로 바뀌어 내 물음에 답했다.  "난 삼정전자 자판기에서만 커피 마시는 거 몰라?" 커피자판기의 제조회사가 커피 맛의 차이를 내는 영향은 매우 적..

초코파이, 우유 그리고 오징어

허기를 느끼기 시작한 것은 밤 9시 뉴스가 끝날 즈음이었지만 무언가 반드시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밤 12시가 넘어서였다.저녁식사를 대충 마쳤더니 약간의 허기가 있었는데 밤늦은 시간에 무언가를 먹는다는 것이 왠지 부담스러워 억지로 참고 있다가 12시가 넘어서야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먹을 것을 찾아 나서게 된 것이다. 곤히 자고 있는 아내에게 물었다. "뭐 먹을 거 없나?" 아내는 이상한 말을 남기고 자던 잠을 계속 자고 있다. 아니, 잠에서 깨지 않으려고 필사적인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이럴 때 깨워봐야 밥상이 나오진 않는다. 밥상이 날아오면 모를까. 냉장고문을 열어 먹을 만한 음식을 꺼내보았다.초코파이 2개, 우유 그리고 오징어.....오징어는 평범한 오징어가 아니라 여름 휴가 때 강릉에서 사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