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초코파이, 우유 그리고 오징어

아하누가 2024. 7. 7. 00:23



허기를 느끼기 시작한 것은 밤 9시 뉴스가 끝날 즈음이었지만 

무언가 반드시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밤 12시가 넘어서였다.

저녁식사를 대충 마쳤더니 약간의 허기가 있었는데 

밤늦은 시간에 무언가를 먹는다는 것이 왠지 부담스러워 억지로 참고 있다가 

12시가 넘어서야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먹을 것을 찾아 나서게 된 것이다. 

곤히 자고 있는 아내에게 물었다.

 

"뭐 먹을 거 없나?"

 

아내는 이상한 말을 남기고 자던 잠을 계속 자고 있다. 

아니, 잠에서 깨지 않으려고 필사적인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이럴 때 깨워봐야 밥상이 나오진 않는다. 밥상이 날아오면 모를까.

 

냉장고문을 열어 먹을 만한 음식을 꺼내보았다.

초코파이 2개, 우유 그리고 오징어.....

오징어는 평범한 오징어가 아니라 여름 휴가 때 강릉에서 사온 것으로, 

약간 덜 말린 오징어를 채 썰듯 얇게 만들어둔 것이라 맛이 일품이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선 그리 반갑지 않은 음식이다. 

 

세상에는 다양한 음식이 있고 음식에는 다양한 목적이 있다. 

다양한 목적 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구분을 한다면 

허기를 채우는 음식과 입을 즐겁게 하는 음식으로 나눌 수 있다. 

그런 개념으로 볼 때 냉장고에서 겨우 찾은 저 음식들은 허기를 채우기보다는 

입을 즐겁게 해주는데 더 가까운 음식들이다. 

물론 이것들을 배가 부를 때까지 먹는다면 허기를 채울 수도 있겠지만 

그럴 경우엔 배가 부르기 전에 입으로 다시 튀어나오는 일이 생길 수 있다. 

이 음식들이 허기를 채우기에는 부적절한 음식이지만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어 

초코파이를 우유와 함께 먹고 오징어를 디저트 삼아 먹으면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초코파이 포장을 뜯다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이 세 가지 음식을 약간 조리하여 전혀 새로운 음식으로 만들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아, 이 얼마나 대단한 발상인가. 

이 생각을 해낸 이후 나는 배고픔의 고통도 잠시 잊은 채 

새로운 음식에의 도전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래서 새로운 음식으로 만들어 내고자 생각한 음식은 다음과 같다. 

 

 

<음식 1>

 

우선 오징어채를 우유에 넣고 끓인 뒤 라면처럼 만들고 

그 위에 초코파이를 부셔 만든 가루를 뿌려 먹는 방법이다. 

끓인 우유의 고소한 맛이 짭짜름한 오징어와 어울리고 

거기에 가끔 느껴지는 초코렛의 달콤함이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게 될 것이다. 

 

<음식 2>

 

오징어를 물에 푹 삶아 퉁퉁 불게 한 뒤 잘 꺼낸다. 

그리고 초코파이를 넓은 쪽으로 2등분하여 중간에 끼워 넣는다. 

이른바 햄버거 스타일의 음식이다. 

이 오징어버거를 우유와 함께 먹는다. 이 맛도 아마 환상적일 것이다.

 

<음식 3>

 

우유에 오징어를 담아 물기가 줄어들 때까지 졸인다. 

그리고 물기가 조금 남았을 때 초코파이 2개를 으깨듯 부셔 섞은 뒤 반죽을 한다. 

잘 반죽이 되면 그것을 후라이판에 튀긴다. 일종의 부침개다. 

오징어가 있으니 해물파전에 가깝다. 정확한 명칭은 해물초코전이다. 

 

* * *

 

하지만 아쉽게도 세 가지 방법을 하나도 실행하지 못했다. 

조리에 걸리는 시간이 너무 많고 그 시간을 참아가면서 기다릴 만큼 

여유가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설령 조리를 한다 하더라도 완성된 음식물에 대한 음식으로서의 가치가 

쉽게 예상되지 않아 그 뛰어난 계획은 훗날의 실험으로 미루기로 했다. 

그리고 나서 초코파이를 우유와 함께 먹고 디저트로 오징어를 먹었다. 맛있다.

 

 

세상을 잘 살아가는 방법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단순하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대부분의 경우는 처음에 생각한 것이 맞기 때문이다.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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