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기를 느끼기 시작한 것은 밤 9시 뉴스가 끝날 즈음이었지만
무언가 반드시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밤 12시가 넘어서였다.
저녁식사를 대충 마쳤더니 약간의 허기가 있었는데
밤늦은 시간에 무언가를 먹는다는 것이 왠지 부담스러워 억지로 참고 있다가
12시가 넘어서야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먹을 것을 찾아 나서게 된 것이다.
곤히 자고 있는 아내에게 물었다.
"뭐 먹을 거 없나?"
아내는 이상한 말을 남기고 자던 잠을 계속 자고 있다.
아니, 잠에서 깨지 않으려고 필사적인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이럴 때 깨워봐야 밥상이 나오진 않는다. 밥상이 날아오면 모를까.
냉장고문을 열어 먹을 만한 음식을 꺼내보았다.
초코파이 2개, 우유 그리고 오징어.....
오징어는 평범한 오징어가 아니라 여름 휴가 때 강릉에서 사온 것으로,
약간 덜 말린 오징어를 채 썰듯 얇게 만들어둔 것이라 맛이 일품이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선 그리 반갑지 않은 음식이다.
세상에는 다양한 음식이 있고 음식에는 다양한 목적이 있다.
다양한 목적 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구분을 한다면
허기를 채우는 음식과 입을 즐겁게 하는 음식으로 나눌 수 있다.
그런 개념으로 볼 때 냉장고에서 겨우 찾은 저 음식들은 허기를 채우기보다는
입을 즐겁게 해주는데 더 가까운 음식들이다.
물론 이것들을 배가 부를 때까지 먹는다면 허기를 채울 수도 있겠지만
그럴 경우엔 배가 부르기 전에 입으로 다시 튀어나오는 일이 생길 수 있다.
이 음식들이 허기를 채우기에는 부적절한 음식이지만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어
초코파이를 우유와 함께 먹고 오징어를 디저트 삼아 먹으면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초코파이 포장을 뜯다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이 세 가지 음식을 약간 조리하여 전혀 새로운 음식으로 만들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아, 이 얼마나 대단한 발상인가.
이 생각을 해낸 이후 나는 배고픔의 고통도 잠시 잊은 채
새로운 음식에의 도전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래서 새로운 음식으로 만들어 내고자 생각한 음식은 다음과 같다.
<음식 1>
우선 오징어채를 우유에 넣고 끓인 뒤 라면처럼 만들고
그 위에 초코파이를 부셔 만든 가루를 뿌려 먹는 방법이다.
끓인 우유의 고소한 맛이 짭짜름한 오징어와 어울리고
거기에 가끔 느껴지는 초코렛의 달콤함이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게 될 것이다.
<음식 2>
오징어를 물에 푹 삶아 퉁퉁 불게 한 뒤 잘 꺼낸다.
그리고 초코파이를 넓은 쪽으로 2등분하여 중간에 끼워 넣는다.
이른바 햄버거 스타일의 음식이다.
이 오징어버거를 우유와 함께 먹는다. 이 맛도 아마 환상적일 것이다.
<음식 3>
우유에 오징어를 담아 물기가 줄어들 때까지 졸인다.
그리고 물기가 조금 남았을 때 초코파이 2개를 으깨듯 부셔 섞은 뒤 반죽을 한다.
잘 반죽이 되면 그것을 후라이판에 튀긴다. 일종의 부침개다.
오징어가 있으니 해물파전에 가깝다. 정확한 명칭은 해물초코전이다.
* * *
하지만 아쉽게도 세 가지 방법을 하나도 실행하지 못했다.
조리에 걸리는 시간이 너무 많고 그 시간을 참아가면서 기다릴 만큼
여유가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설령 조리를 한다 하더라도 완성된 음식물에 대한 음식으로서의 가치가
쉽게 예상되지 않아 그 뛰어난 계획은 훗날의 실험으로 미루기로 했다.
그리고 나서 초코파이를 우유와 함께 먹고 디저트로 오징어를 먹었다. 맛있다.
세상을 잘 살아가는 방법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단순하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대부분의 경우는 처음에 생각한 것이 맞기 때문이다.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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