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센 마누라는 여자보다 아름답다 76

장염

“아직도 아파?”    지난 주말부터 아내가 배가 아프다면 구토와 설사를 반복했다. 조금 걱정 되었지만 그래도 다이어트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에 발달된 현대의학의 힘을 빌리는 것을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그래도 심한 정도는 아니었는지 아내는 제 할 일 다 해가며 지내고 있었다. 현대의학보다는 시간이 약이라는 전통방식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더니 그날 아침 병원에 다녀온 아내는 장염이라는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증상이 심하진 않고 며칠 견디면 나을 거라고 했다는 의사의 말을 전하면서 별 거 아닐 거라며 애써 담담해 하고 있었다.  그리고 병원에서 주사 한방 맞았더니 조금 나아졌다고 한다. 이게 그날 오전에 통화한 내용이다.  그리고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장염이라는 것은 일종의..

화장실 변기 뚜껑

“화장실 변기 물 내릴 때 변기 뚜껑 좀 닫고 내려욧!!!!!”     또 마누라의 잔소리가 시작됐다. 화장실에서 볼 일 보고 변기 물 내릴 때 변기 뚜껑을 반드시 닫고 내리라는 얘기다. 어디서 봤는지, 어디서 들었는지 모를 얘기지만 마누라는 얼마 전부터 집요하게 그 부분을 강조했다. 이후로 우리 집안에 핵심준수사항이 생겼다.    아직 기승전결의 도입 부분도 진행하지 않았는데, 벌써 나쁜 마누라가 갖춰야 할 핵심덕목을 이미 갖추고 있는, 정말 나쁜 마누라라는 사실이 느껴지지 않은가? 당연하게도, 그럴 때 마다 마누라의 목소리는 다음 정류장을 안내하는 지하철 방송의 간드러진 목소리가 아니고 김치찌개가 끓어 넘쳐 가스렌지에 불꽃을 일으키는 상황에서야 들을 수 있는 높은 대역의 파장을 가진 목소리였다.   ..

야쿠르트

“출근하자마자 야쿠르트 꼭 드셔요~”   아침에 회사가려고 집을 나서는데 아내가 야쿠르트 얘기를 꺼냈다. 전날 가방에 넣어준 건데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냉장고에 넣어두었었다. 그리고 사무실에서 일하다보니 냉장고에 넣어둔 야쿠르트는 깜빡 잊고 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저녁에 집에 들어와 아침에 준 야쿠르트 먹었냐고 아내가 물어볼 때가 되어서야 나는 그것이 그대로 냉장고에서 잠자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아내가 출근할 때 먹을 걸 싸주는데 그 스케일이 보통의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상식 이상이다. 웬만한 한 부서 사원들 회식을 해도 될 만큼의 분량을 바라바리 챙겨주는데, 항상 그 날은 자동차를 가지고 출근을 해야 한다.  그런 아내가 조금 무식해 보이는 듯하지만 그래도 조금씩 앙증맞게 챙겨주는 것보..

아내와 가방

“이거 너무 비싼 거 같은데?”  아내가 출퇴근용 가방을 하나 사왔다. 이름만 대면 대부분 알고 있는 유명 브랜드의 신사용 서류가방이다. 밝아보이지만 왠지 무게감있는 코발트 블루 색상에, 좌우상하 라인이 폼나게 살아있는 세련된 디자인의 가방이다. 이런 가방은 늘씬하게 잘 빠진 모던 세미정장에, 뱃살 나오지 않고 키가 크고 후리후리한 몸매의 훈남스타일을 가진 젊은 직장인에게 잘 어울릴 듯싶다.  그러나 불행히도, 정말 불행히도 나는 그런 스타일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다. 더욱이 내가 늘 입고 다니는 복장이란, 손으로 드는 서류가방보다는 어깨에 메는, 더 정확히 얘기하면 등에 메는 배낭 스타일이 제격인 복장이 거의 대부분이다. 그러니 이렇게 세련된 스타일의 가방은 태생적으로 나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주인을..

계란후라이

"정말 저런 방법이 있네?"  어느 주말 저녁, 아이들과 TV를 보다 어느 지식 프로그램에서 보여주는 생활 상식 한가지를 접하곤 무릎을 탁 치고 말았다. 계란 한개로 후라이 너댓개를 만드는 내용인데 그 방법과 발상이 아주 참신하다. 일반적인 계란후라이의 모양은 계란의 흰부분이 넓게 자리잡고 가운데 부분에 노란 색 반구(半球)모양이 자리잡은 모습이다. 따라서 계란 한개로 이런 전형적 모양에 변형을 일으키지 않고 여러개를 만드는 이 방법은 참으로 신선하고 기발한 셈이다.  우선 달걀을 냉동실에서 얼린다. 얼린 달걀의 껍을 벗기고 달걀을 눕힌 채 4등분 또는 5등분으로 나눈다. 그리고 각각의 조각을 후라이팬에 올린 뒤 익히면 모양은 다소 작아지나 거의 완벽한 계란후라이가 조각의 숫자만큼 만들어진다. 물론 이것..

메뚜기

"그렇다면 오늘은 메뚜기를 잡는다!"  10월 끝자락의 강원도 횡성 별장. 이미 첫서리가 지나간 뒤라 강원도의 들녁은 한기가 흐르는 스산함이 감돌고 있었다. 밤나무 밑에서 밤을 줍는다거나 혹은 고구마 캐기 등 그동안 아내가 아이들의 자연체험 교육의 일환으로 벌어져 오던 일련의 채취 작업이 추운 날씨로 불가능해지자 새로운 카드를 꺼내 들었다. 메뚜기 잡기.아이들이 자연속에서 뛰놀며 스스로 자연의 섭리를 익히게 하는 고차원적 이념을 담은 숭고한 교육적 의미였다. 아내는빠른 동작으로  옆집 이장님 댁 마당에서 뒹굴고 있던 빈 소주병을 들고 왔다.  "여기 가득 채워온다. 오케이?" 아이 둘을 데리고 빈 소주병을 옆에 든채 아직 추수가 끝나지 않은 논둑길로 향했다. 벼의 색깔이 누렇게 변하자 메뚜기의 색깔도 이..

막빵

"빵은 역시 막빵이 최고여~""막빵?"  빵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배고픔을 표현하는 눈물의 빵이 있고, 단지 끼니 및 식사를 뜻하는 철학적 의미의 빵이 있다. 그런가 하면 인상적인 발음의 뉘앙스로 인해 주먹빵, 담배빵, 생일빵 등 다른 명사 뒤에 붙어 또 다른 의미를 만들기도 한다. 어디 그뿐인가? 오붓한 공간을 의미하는, 방으로 끝나는 낱말을 유난히 강조함으로써 그 장소를 폄훼하는 수단으로도 쓰인다. 감빵, 여관빵 등.하지만 빵의 대표적 의미는 단순히 먹는 빵이다. 그런 빵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고급스럽게 포장된 제과점 빵에 대응한 구멍가게에서 파는 빵을 막빵이라 칭한다.이 놀라운 작명은 1990년대 초반 하나 뿐인 여동생에 의해 발견되고 그 표현의 적절함에 감동하여 발견 이후 무려 10여년이 지난..

로또복권

“참? 당신 복권 샀어요?”  토요일 저녁, 뉴스가 끝나고 TV화면에 로또복권 추첨 장면이 나오자 아내는 잠시 잊고 있었던 중요한 사실을 기억해 낸 듯 다짜고짜 물었다. “아니?” 아내는 경찰서 강력계 형사가 전과 24범을 취조하듯 큰소리를 치며 왜 로또 복권을 구입하지 않은 이유를 물었다. “왜는 무슨 왜, 안맞을 게 뻔하니 안샀지.” 기대했던 것보다 그 이유가 대수롭지 않으니 아내는 더 화가 나는 듯했다.  얼마전 아내가 꿈속에서 숫자가 씌여진 공들이 날아다는 꿈을 꾸었다며 이번주에 반드시 로또 복권을 구입해달라는 얘기를 했었다. 꿈에서 보았다는 번호는 0과 1, 그리고 8이었다. 꿈을 꾸려면 제대로 꾸던가 아니면 숫자를 보려면 끝까지 다 봐야지 세 가지 숫자만 달랑 기억한다니 이게 뭐 도움이나 되는..

갈등의 반복

"어머, 너무 예쁘다!~""그냥 행사장에서 만원 하기에 사온 거야."  주말을 이용해 분당 누나댁에 들렀더니 누나가 후연이와 의연이 입히라며 겨울파커 두 개를 꺼낸다. 짙은 카키색 파커가 앙증맞으면서도 고급스러워 보인다.  "이거 정말 만원이래요?" 아내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몇 번이나 뒤집어 보더니 큰 아이 후연이에게 입혀 본다. 그리고 매우 기분이 좋았는지 작은 아들 의연이도 부른다. 옷을 입히려고 비닐 포장을 뜯으니 앞 지퍼 부분에 예리한 도구에 의해 옷이 약간 찢어져 있었다. 아마도 포장 과정에서 일어난 실수인 것 같았다. 잔뜩 기분을 내던 누나는 곧 표정이 어두워졌다. 나와 아내는 그 정도 상처는 대충 꿰매어 입으면 된다며 얼른 분위기를 업(UP)시키려 했으나 힘들게 옷을 사온 누나 입장에서는 ..

오징어

"이거 맛있는 거야, 먹어봐, 맛있어"  아내는 며칠전에 사둔, 그러나 맛이 없어 식구 모두에게 찬밥 대접받고 있는 오징어를 냉장고에서 꺼냈다. 그리고 어려서 말을 못해 반대의사를 표현할 수 없는 둘째 의연이에게 계속 오징어를 주고 있다. 그 오징어라면 넓적한 한 마리의 오징어가 아니라 요리하게 좋게 채로 썰어둔 오징어로 주로 술안주로 쓰이기도 하고 매콤하게 버무려 반찬으로 자주 등장하는 그 오징어였다. 그 오징어는 지난 달 집앞 엄마손마트에서 산 것인데, 나는 맛없어 보인다며 거부한 것을 혼자 고집을 부리며 산 것이었다. 그러나 집안 식구들이 모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며 냉장고에 머무르자 참다못한 아내가 그것을 꺼내 들고 상대적으로 만만해보이는 둘째 의연이에게 오징어를 먹이고 있는중이었다. 김치나 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