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센 마누라는 여자보다 아름답다

로또복권

아하누가 2024. 7. 6. 02:16



“참? 당신 복권 샀어요?”

 

 

토요일 저녁, 뉴스가 끝나고 TV화면에 로또복권 추첨 장면이 나오자 

아내는 잠시 잊고 있었던 중요한 사실을 기억해 낸 듯 다짜고짜 물었다.

 

“아니?”

 

아내는 경찰서 강력계 형사가 전과 24범을 취조하듯 큰소리를 치며 

왜 로또 복권을 구입하지 않은 이유를 물었다.

 

“왜는 무슨 왜, 안맞을 게 뻔하니 안샀지.”

 

기대했던 것보다 그 이유가 대수롭지 않으니 아내는 더 화가 나는 듯했다. 

 

얼마전 아내가 꿈속에서 숫자가 씌여진 공들이 날아다는 꿈을 꾸었다며 

이번주에 반드시 로또 복권을 구입해달라는 얘기를 했었다. 

꿈에서 보았다는 번호는 0과 1, 그리고 8이었다. 

꿈을 꾸려면 제대로 꾸던가 아니면 숫자를 보려면 끝까지 다 봐야지 

세 가지 숫자만 달랑 기억한다니 이게 뭐 도움이나 되는 얘긴가. 

그리고 세 숫자도 제대로 된 숫자를 봤어야지 

0이라는 건 상관도 없는 숫자니 사실은 두 가지 숫자만 본 셈이다. 

그 두 숫자 모두 당연히 보장되지 않은 숫자다. 

그러나 그런 억지 숫자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다년간의 금융업 종사의 경험에서 얻은 

탁월한 숫자감각으로 로또 숫자를 무려 4가지로 만들었다. 

꿈속에서 보았다는 세 가지 숫자에서 1과 10, 그리고 8과 18의 네 가지 숫자를 찾아냈다. 

이렇게 신비로운 숫자관리 능력에 잠시 탄복했지만 그것은 잠시 뿐이었고, 

그 네 가지 숫자가 당첨번호와 일치한다는 보장 또한 없었기에 

그리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아내 또한 그 숫자가 당첨번호라는 확신은 없었지만 

복권 추첨 시간이 다가와 복권을 사지 않았다는 말을 들으면서부터 

그 숫자의 기대가 커지고 그 기대는 불안으로 바뀌고 

그 불안은 내게 신경질적인 반응으로 나타내는 중이었다. 

그렇게 아쉬우면 자신이 직접 가서 사면 될 것이지. 

 

TV에서 당첨 번호를 발표하고 있다. 

다행히도 아내가 꿈속에서 계시 받았다는 숫자와 그 숫자로 조합된 숫자가 

하나도 등장하지 않았다. 

아내는 금방 쑥스러운 표정으로 바뀌었고 

되도록이면 그 화제로 이야기가 번지는 것을 원치 않았는지 

애꿎은 옆집 아줌마를 흉보는 얘기로 대화의 화제를 바꾸고 있었다. 

이럴 땐 새로 바뀐 그 화제에 순순히 응해야지 

꿈 얘기를 들먹이며 조롱 섞인 목소리 톤으로 복권 얘기를 꺼내면 

숫자가 쓰여진 공을 내게 던질지도 모른다. 

숫자가 쓰여진 공이라면 포켓볼에 쓰는 당구공이나 볼링장에 있는 볼링공뿐인데 

두 가지 모두 신체적 타격이 클 것이다. 

 

결국 로또 복권과 꿈속의 숫자에 관한 일은 살면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작은 해프닝으로 끝났다. 

공짜로 많은 돈이 생긴다는 것, 그리고 그 주인공이 자신일 수도 있다는 

앙증맞은 상상은 매우 허황된 것으로 주로 허무함을 낳게 마련이지만 

그래도 그런 상상이 없다면 아마 우리의 삶은 더욱 각박해질 지도 모른다. 

상상이야 무슨 잘못이 있나. 

 

다음주 월요일, 400억원이 넘는 로또 복권 당첨금이 한사람에게 돌아갔다는 뉴스를 들었다. 

사무실에서 그 이야기가 화제가 되자 주말에 있었던 아내의 꿈과 

복권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특히 조합에 의해 네 가지 숫자가 만들어진 과정을 

중점적으로 직장 동료에게 얘기했다. 

그러나 그 이야기가 재미있었던 것은 오직 나 혼자 뿐이었고 

오히려 직장동료로부터 황당한 소리만 들었다.

 

“그거 꿈속에서 누군가 자네 집사람에게 핸드폰 번호 불러준 것 같은데?”

“......!”

 

 

* * *

 

 

저녁에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그 얘기를 하니 아내는 잔뜩 오바된 말투와 행동으로 

자신의 흥분 정도를 표현하고 있었다. 

당첨자는 행복해서 입이 찢어지고 있겠다는 둥 자신이 당첨자라면 얼마나 좋겠냐는 둥 

흔히 복권 이야기가 화제가 될 때 보편적으로 등장하는 

잦은 빈도의 희망사항을 계속 얘기하고 있었다. 

한풀 꺾인 줄 알았던 복권에 대한 기대가 또 생겨나기 시작한 것 같아 걱정이 앞선다. 

저러다 매일 꿈만 꾸겠다고 하루종일 잠만 잘까 걱정이다. 

하지만 아내만의 단순한 성격은 그러한 나의 걱정이 정말 부질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또 확인시켜 주었다. 

 

“근데 당첨된 사람이 어느 동네 사람이래요?”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났는지 아내가 물었다.

 

“신문 보니까 강원도 춘천이라던 것 같은데?”

 

내 말을 들은 아내는 알 듯 모를 한숨을 내쉬며 조그만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어차피 나는 안 되는 거였구나.”

“......!”

 

 

그리고 나는 또 많은 생각에 잠긴다. 

성격이 단순할수록 삶의 도움이 되는 점이 더 많은 가보다.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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