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센 마누라는 여자보다 아름답다

삐걱거리는 욕실 문

아하누가 2024. 7. 6. 02:12


   

   "아니, 이 문 정말 안 고칠 거예요?"

   

   

   집에 들어서자마자 아내는 빚 독촉하는 사람처럼 날카로운 목소리로 재촉하기 시작했다.    

   욕실 문이 고장이 났는지 며칠전부터 삐걱거리는 소리가 심하게 나기 시작했다.    

   좁은 집이어서 삐걱거리는 욕실문의 여닫는 소리는    

   집안 식구들 모두의 교감신경과 청세포의 기능을 마비시킬 것만 같은    

   음산하고 날카로운 괴성이었다.    

   더욱이 모두들 잠들어 조용한 밤에 한번 욕실을 들락거리려면 

   그 날카로운 소음에 온 집안이 진동할 것만 같았다. 

         

   "알았어. 어디 한번 보고."      

   

   며칠전부터 고쳐야한다고 앵무새처럼 말했지만    

   그런 걸 고칠만한 능력이나 의지 따위는 진작부터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런 것은 고치기 이전에 인내력으로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오랜 삶의 철학이었으며 또한 미덕이었다.    

   그러니 집안 분위기도 가장의 이러한 특징을 가풍으로 삼아 인내력과 집념으로    

   극복해야할진대 아내는 계속 문을 고쳐야 한다며 옆에서 보채고 있었다. 

         

   문을 몇 번 여닫으며 살펴보니 뭐가 문제인지 잘 모르겠다.    

   욕실 특유의 습기 때문에 경첩이 녹이 슨 이유일 수도 있겠고,    

   계절이 바뀌면서 문을 이루는 나무가 뒤틀려    

   서로 아귀가 맞아 떨어지지 않는 이유일 수도 있다. 

   아니면 가끔 그런 소리가 나다가 저절로 없어지는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도 있다.       

   

   "왜 그런 거 같아요?"      

   

   문을 살펴보는 척하면서 왜 그런가에 대한 쓸데없는 생각만 하고 있으니    

   옆에 있던 아내가 궁금한 얼굴로 묻는다.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가지 경우의 수 중에 욕실 문의 보수 및 수선에 걸리는    

   난이도가 가장 높은 경우를 들어 그 이유로 말하기로 했다.       

   

   "문이 뒤틀렸거든. 아마 지진 같은 이유로 지축이 흔들린 것 같아."      

   

   아내는 나를 쳐다봤다.    

   불행히도 그 눈빛은 존경스러움이 가득한 눈빛이 아니었고    

   홍은동 4거리를 브라자 차림으로 돌아다니는 우리 동네 광녀를 쳐다보는 눈빛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별 수 없다.       

   

   "경첩에 녹이 슨 거 아니에요?"   

   "아냐. 문이 통채로 뒤틀린 거야."      

   

   아무리 생각해도 경첩에 녹이 슨 것보다 지축이 흔들린 것이    

   내가 직접 이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데 도움이 된다.    

   지축이 흔들린 이유라면 나는 이 일을 하지 않아도 다음과 같은 변명을 할 수 있게 된다.    

   

   '천재지변으로 생긴 일인데 난들 어쩌란 말이냐.'   

   

   아내는 그럼 무슨 방법으로 저 소리가 나지 않게 하느냐고 묻는다. 조심스럽게 말했다.     

   

   "주전자 뚜껑 좀 가져와봐."   

   "그거면 돼요?" 

      

   아내는 이제 문 삐걱거리는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했는지    

   몹시 신이 난 얼굴로 주전자 뚜껑을 가져오고 있었다.       

   

   "음. 이걸로 유리창을 박박 긁는 거야. 그럼 소리 죽이지?    

    그런 소리에 비하면 문 삐걱거리는 소리는 아름다운 음악으로 들릴 거야."     

   

   아내는 나를 쳐다보았는데 이번에도 존경의 눈빛은 아니었다.    

   그 눈빛에서 존경의 눈빛은 차마 발견할 수가 없었고    

   집 앞에서 똥을 싸고 있는 동네 강아지를 쳐다보는 듯했다.    

   아내는 그때 그 강아지를 힘껏 발로 찼었다.    

   그리고 모든 걸 포기했는지 눈길을 TV드라마로 돌린다.       

   

   나는 별로 그런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좋아하지 않는다기 보다는 별로 하기가 싫다.    

   그래도 군대도 제대로 갔다왔는데 망치나 톱을 못 잡을까.    

   집안 일은 자신이 잘 하는 것으로 도우면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문이야 잘 못 고치지만 아이들 사진 찍어 관리하지, 동요 가르치지,    

   축구 가르치지, 축구장 꼬박꼬박 데려가지....    

   모자란 점이야 얼마든지 있겠지만 그저 잘하고 있는 부분만 봐주었으면 좋겠는데    

   여자의 바램이란게 어디 또 그런가. 잘하면 잘할수록 얼마든지 좋은게지.    

   어쨌거나 문을 고치는 일은 이제 내가 안해도 될 것 같다.    

   아내가 동네 보일러 수선집에 부탁을 하던 처남들 시키던 알아서 할 것이다.    

   아니, 손재주 많으신 장인어른이 계시니 더더욱 걱정없다. 

   

   

   * * *

   

   

   그리고 며칠이 지난 어느날.    

   밤늦은 시간에 집에 들어오니 모두들 자고 있다.    

   소리가 안나게 조심스레 욕실문을 열었다.    

   삐걱거리는 욕실문은 아무리 조심해서 열어도 소리가 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이 들어갈 만큼 문을 열었는데도 그 기괴한 소리가 나지 않는다.    

   문이 고쳐진 것이다.    

   아내가 사람을 시켜 문을 고쳤거나, 아니면 저절로 고쳐졌거나    

   그것도 아니면 지각변동으로 인해 다시 원상태로 돌아온 것임에 틀림없었다.    

   몇 번 열고 닫아도 소리가 안나는 것이 재밌어 몇 번 번복하다보니    

   누가 고쳤는지 이내 궁금해졌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내는 자고 있다.    

   옆으로 78도의 각도로 비스듬히 누워있고 얼굴은 흉하게 위로 젖혀있는 걸로 보아    

   몹시 깊이 잠든 상태다.    

   저런 경우에 괜히 잠을 깨우면 주전자 뚜껑으로 내 얼굴을 박박 문질러버릴지 모른다.    

   하지만 궁금한 건 참을 수 없는 일. 아내를 흔들어 깨우며 물었다.   

   

   "욕실문에서 소리가 안나네? 어떻게 고쳤어?"   

   

   내가 궁금해하는 욕구만큼 아내는 잠에서 깨고 싶지 않은 욕구가 강하게 작용하는 듯했다.    

   자세가 약간 뒤틀리는 걸로 보아 내 얘기를 분명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잠에서 깨지 않으려는 노력이 역력했다.    

   이럴 때 대답을 하면 대답을 하는 동안에 잠에서 깨게 되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을    

   아내는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이에 대응하는 듯했다.    

   

   "욕실문 어떻게 고쳤냐구?"   

   

   내가 또 묻자 아내는 내가 계속 집요하게 물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는지    

   대답을 하기 시작했다. 그 대답은 잠에서 깨지 않는 범위에서 가능하도록    

   가장 간단하고 명료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어쩌면 세상의 일이란 가장 단순한 것이 가장 정확한 것일 지도 모른다.    

   그리고 세상의 이론이란 것도 실천하기 전엔 그 존재의 의미가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희미하게 말하는 아내의 대답에서 나는 이런 것들은 느낀다.    

      

   잠에서 깨지 않으려고 필사의 노력을 기울이던 아내는    

   가장 간단하고 명쾌한 대답으로 나의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으...... 참...기.....름......"

   

   

 

 

 

아하누가

 

 



'힘센 마누라는 여자보다 아름답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갈등의 반복  (0) 2024.07.06
오징어  (0) 2024.07.06
미꾸라지  (0) 2024.07.06
세탁소  (0) 2024.07.06
신용사회, 신용카드  (0) 2024.0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