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라? 이건 또 뭐야?"
저녁에 집에 들어오니 아이들이 물통 하나씩을 들고 다니고 있다.
뭐기에 그리 재미있는 표정으로 다니는지 궁금해서 들여다보니
1.5리터 짜리 페트병을 잘라 만든 물통 안에 미꾸라지가 3마리가 놀고 있었다.
"아이들이 좋아해서 넣었지요. 그러다 그냥 키우면 되고..."
궁금한 내 표정을 질문으로 읽은 아내는 별 대수롭지 않은 듯 담담히 얘기하고 있다.
세상에 많은 물고기 중에 하필이면 집에서 미꾸라지를 키우나.
굳이 뽀뽀하기 좋아하는 키싱구라미나 색깔 좋은 네온 테트라가 아니라도
주변에 쉽게 찾아보면 금붕어도 있고 조금만 민물고기도 있는데 하필이면 왜 미꾸라지인가.
빛깔 좋은 열대어나 금붕어가 아니라면 비무장지대의 맑디맑은 물에서 산다는
쉬리도 좋고, 모 개그맨이 영화를 만들어 쫄딱 망했다는 납자루도 있는데
왜 하필이면 우리집 관상어는 미꾸라지인가.
물론 그 미꾸라지의 정체가 저녁에 추어탕 끓이다 남은 미꾸라지라는 것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지만
그래도 그걸 물에 담아 집안에서 기르겠다는 발상이 기이하기만 느껴지고 있었다.
* * *
하루만에, 아니 몇 시간만에 아이들은 그 미꾸라지에 싫증을 느꼈다.
장난감처럼 기능도 없고 강아지처럼 움직임도 다양하지 않으니 그럴 수밖에.
그렇게 아이들의 관심 밖에서 멀어진 미꾸라지는
며칠째 싱크대 위 페트병 안에서 왔다갔다를 반복하고 있다.
보아하니 먹을 걸 주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죽지도 않고 잘 살아있다.
"이거 버릴 거 아니면 밥이라도 주지 그래?"
하루는 답답해서 그런 소릴 했더니 그 다음날 페트병 안에는
삶은 감자가 한알씩 들어있었다.
미꾸라지가 삶은 감자를 먹는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지만
그렇다고 미꾸라지 뭘 먹고사는 지에 대해서도 아는바가 없어 그냥 두었다.
배고프면 감자라도 먹을 테지.
하지만 그 미꾸라지가 며칠 동안 마음에 걸렸다.
혹시 죽지나 않았는지, 그리고 버린다면 쓰레기통에 버려야 하는데
마른 멸치도 아니고, 국물 우려내고 건져낸 멸치도 아닌 멀쩡히 살아있는 생물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리는 것도 영 개운치가 않다.
분명히 미꾸라지가 비실거리기 시작하면 나보고 버리라고 할 테니 더 심각해진다.
오늘 아침엔 반이 뚝 잘리워진 채 어항 역할을 하던 페트병 두 개를
한곳으로 모으고 이것을 들고 출근길에 나섰다.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동네 개천에 내려가 개천 기슭에 앉아
여섯 마리 미꾸라지를 개천에 풀어주었다.
아주 옛날에는 수영도 하던 개천인데 그 뒤로 오염이 심해져서
수영은커녕 악취만 풍기는 곳이었다.
그러나 2년전인가 3년전인가 자연수 개천으로 만들어 월드컵 경기장까지
흐르게 하겠다고 복개작업을 하더니 얼마전부터는 정말 물이 맑아졌다.
물고기를 보았다는 사람도 생겨날 정도였다.
그러나 월드컵이 끝나고 또 지저분해지기 시작했고
가뭄이어서 물도 하나도 없어진 채 개천의 흔적만 남았다가
며칠 동안 내린 많은 비로 제법 강처럼 모양새를 갖추게 된 곳이다.
기슭에 앉아 여섯 마리 모두를 풀어주었는데 4마리는 물에 쏟아내자마자
눈에서 벗어났고 두 마리 중 한 마리는 내가 보는데서 물줄기를 타고 강물로 내려갔다.
그런데 나머지 한 마리는 기슭에서 계속 헤엄만 치고 있다.
힘이 없는지 아니면 물이 나쁜지 기운이 하나도 없어 보인다.
저놈이 얼른 헤엄쳐 나가 내 눈에서 사라지길 기다렸는데
그놈은 계속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다.
마냥 지켜볼 수만은 없어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들 유치원 데려다주고
내 갈 길을 찾아 나섰다.
* * *
"미꾸라지 다 죽었던가요?"
저녁에 집에 오니 아내가 묻는다.
"아니, 아침에 라면 끓일 때 같이 넣어서 끓여 먹었어."
아내는 입을 삐죽 내민다.
갑자기 아침의 미꾸라지가 생각난다. 이놈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궁금해진다.
그냥 단순히 궁금하기만 한 게 아니라 죽었을까봐 마음이 아프다.
이거 원 기르던 강아지도 아니고 집에 날아온, 다리 부러진 제비를
치료해서 날려준 것도 아닌데 왜 이리 기분이 뭉클하담.
미꾸라지가 어떻게 살던 무슨 상관이 있겠냐만 정말 꼭 살았으면 하는 생각이다.
지가 제비가 아니라 미꾸라지인 이상 박씨를 물고 내 앞으로 나타날 수는 없을 테니
엉뚱한 보상심리 때문만은 아닌 모양이다.
정말 그 미꾸라지가 살았을까?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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