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후연이가 이따가 들어올 때 케익 사오래요~"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갑자기 케익을 먹고 싶다는 후연이 얘기를 꺼낸 점이 어째 심상치 않았다.
"후연이가 왜 갑자기 케익을 먹겠대?"
내 질문에 아내는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엄마 생일이라고 케익 먹고 싶대~"
"......?"
오늘이 아내 생일인가보다. 마누라 생일도 모른다는 단순한 사실은 남들이 볼 때
무척 무심하고 한심한 남자처럼 느껴질 수 있겠지만 아내의 생일은 좀 복잡하다.
시골에서 자란 탓에 주민등록 번호는 한참 뒤에 올려져 있고,
그 숫자에 나온 생일은 당연히 실제 생일과 다르며,
실제 생일도 음력으로 계산해야 답이 나오기 때문에
음력에 둔감한 나는 잘 계산하지 못한다.
정확한 날짜만 기억해도 조금은 그 과정이 쉬워지겠지만 한번 외우기 힘들어 진 숫자는
무던히도 외워지지 않아 결국 그 간단한 날짜 외우기를 포기했다.
대한민국의 남편치고 매우 용감하게 아내의 생일을 싹 잊어버릴 수 있는
용기가 생긴 이유는 생일을 정확히 기억하지 않아도 생일이 있는 달이 되면
아내는 방안의 달력에 있는 자신의 생일에 해당하는 날짜에 시뻘건 매직으로
커다란 동그라미를 쳐두고 그것도 모자라 화살표로 길게 늘어뜨린 뒤 '내 생일'이라고
표시하기 때문이다.
한두번 모르고 지나갔더니 그전엔 빨간 볼펜이나 플러스펜 정도의 펜으로 표시하다
이제는 어디서 구했는지 매우 오래전에 교실 환경미화 작업할 때나 쓰던
매직펜을 구해와서 달력에 표시하기 시작했다. 그 매직펜은 일년에 딱 한번 사용하면서도
집안 어딘가에 소중히 보관해두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일일이 아내의 생일을 기억하지 않아도 된다.
뿐만 아니라 우리집 가풍은 '생일을 통한 축하'는 매우 파렴치한 행위로 인정하는
특이한 학습을 하는 집안이라 그 습성이 몸에 밴 나는 내 생일이든 아들 생일이든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는다.
아니 의도적으로라도 철저히 모른 척 넘어 간다.
단지 태어난 날이라는 이유만으로 축하를 받아서는 안된다는 것이
우리 집안의 오랜 가풍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그 가풍은 어렸을 때 다들 경제적으로
어려워 궁여지책으로 만든 가풍이라는 것이라는 의심이 조금씩 생기는 중이긴 하다.)
나의 그런 성향을 아는 아내는 그래서 자신의 생일이라는 사실을 케익 사오라는 말로
조심스레 전해주고 있었다.
일단 생일에 대한 내 관념과 성향을 존중해주며 의사전달을 하는데
나 역시 케익 하나 사다 주는게 어려울 것은 없다.
* * *
"초는 몇 개 드릴까요?"
집 앞 제과점에서 적당한 케익을 고르고 값을 치루려는데 종업원이 불쑥 말을 건넨다.
제과점에서 케익을 살 때 당연히 벌어지는 이 자연스러운 대화에 내가 놀란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우선 아내가 케익을 살 때 무조건 케익의 주인공이 59살이라고 한다는 사실이 떠올랐고,
또한 예전에 아내가 31살 되었을 때 케익을 사오며 초를 31개만 받아왔다고 잔소리했던
두 가지 일이 기억났다.
59살이라고 말하는 것은 케익을 받는 주인공의 나이로는 가장 초를 많이 받을 수 있는
나이라는 이유 때문이었고, 31살이면서도 39살로 말해야 한다는 것 또한
초를 몇 개 더 받아올 수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었다.
이 두가지 예전 기억이 떠오르면서 나는 또 두가지 불가사의한 점이 떠올랐다.
우선 결국 바로 버리게 될 필요도 없는 초를 몇 개 더 받아야
아무데도 쓸데가 없다는 사실을 아내도 분명 알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었고
또 한가지는 그렇게 공짜를 밝히는 아내인데 왜 머리는 내가 빠져야 하는지
도무지 과학의 힘으로는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였다.
"39개 주세요."
케익을 포장하는 종업원에게 말했다.
아내는 36살이다. 아마 36개 딱 맞춰가는 것보다 39개 가져가는 것이 그나마 다행일 것이다.
집에 들어가 케익을 펼치고 초를 케익에 꼽던 아내가 물었다.
"왠 초를 이렇게 많이 가져왔대요?"
"응, 그냥. 서른아홉이라 그랬지 뭐"
"......!"
매우 흡족해 할 줄 알았던 아내는 대노했다.
금방이라도 케익을 들어 외국의 코믹 비디오에 자주 나오는 장면처럼
내 얼굴을 케익에 있는 크림으로 범벅을 만들 것 같았다.
아이가 입으로 불어 끌 초에 불을 붙이면서도 (그것도 3개만 꽂아두고)
연신 잔소리를 해댔다.
내가 아직 서른아홉이 되려면 멀었다는둥 제과점 아가씨가 앞으로 자신을 서른아홉으로
볼 거라는둥 마흔 되면 어쩌냐는둥 같은 내용으로 이루어진 다양한 표현을
무려 45분간이나 계속했다.
마침 그때 어느 케이블TV에서 하는 축구 중계를 보고 있었으니
아내가 45분간 잔소리를 한 것으로 알고 있지
그것이 축구중계가 아니고 마라톤 중계였으면 어느 누가 세계신기록을 내더라도
아내의 잔소리가 2시간을 넘고 있음을 나는 알았을 것이다.
그동안에 보아오던 것과 달리 아내는 새로운 모습을 보였다.
새로운 모습이라고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도 처음 알게 되었다.
* * *
아내도 나이를 먹는다. 먹기 싫어도 먹고 원하지 않아도 저절로 먹는다.
아이들이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커가면 당연히 엄마랑 아빠는 조금씩 늙어간다.
그리고 또 우리의 어르신들은 조금씩 더 늙어간다.
하긴 여자가 30에서 40으로 넘어가게 되면 그게 뭐 반가운 일이겠냐만
그렇다고 슬퍼할 일도 아닐텐데 아내는 그냥 무작정 슬픈 모양이다.
아주 오래전에 아내와 양희은 콘서트에 간적이 있다.
그때 양희은이 <내 나이 마흔살에는>이란 곡을 발표할 즈음이었는데
무대에서 그 노래를 부르기 전에 공연치고는 제법 긴 이야기를 했었다.
노래의 가사처럼 양희은 본인은 20대에는 서른이 되고 싶었고
30대가 되니 마흔이 되고 싶더라고 했다.
그리고 마흔이 되었으니 이제 쉬흔이 좋아질 것이 분명하다고 말한 것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단지 연예인으로서 그리고 그를 보러온 팬들 앞이어서
입바른 소리를 하려 한 것 같지는 않았고 그저 스스로 느끼던 감상을
소탈하게 얘기하고 있는 것으로 느껴졌고 돌이켜본 지금의 기분도 그렇다.
그때의 그 얘기를 당시 공연을 함께 지켜본 아내가 기억해주면 얼마나 좋으련만
그런 것은 쓸 데 없이 사소한 거나 잘 기억하는 내게나 적당한 말이지
지금 아내에게 그런 탁월한 기억력을 요구할 순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내가 나이를 먹는 동안 그저 아이들이 별 일 없이 잘 크고 있고
주변에 별 문제 없이 조용히 넘어가고 있는 것을 보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해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아내가 스스로 나이를 먹는 일이 슬프거나 불행한 일은 아니라는 사실을
느꼈으면 한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 또한 나의 일방적인 생각인 것 같다.
그렇겠지.
설마 아내가 그런 것도 모를까.
그저 더 늦기 전에 부려보는 나이에 대한 앙탈이었겠지.
일부러 아쉽게 생각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아쉬운 걸
일부러 아쉽지 않은 척할 이유도 없다.
나이를 먹으며 느껴지는 아쉬움. 그 아쉬움은 다른 아쉬움에 비해
매우 행복한 아쉬움이라는 것을 아내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게다.
그리고 적당히 아쉬워하는 게 더 세상사는 데 자연스럽다는 사실도 알고 있을 게다.
그런 아쉬움의 하루가 또 이렇게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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