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르르릉"
비교적 조용하던 집안에 전화벨이 울린다.
얼굴에 심술이 가득찬 아내가 방청소를 하다
몹시 기분이 안좋은 듯한 얼굴로 수화기를 든다.
"잘못 걸었어요. 뚝!"
그리고는 퉁명스럽게 전화를 끊는다. 아마 잘못 걸린 전화인 모양이다.
하지만 잠시후 또 전화벨이 울린다.
조금전보다 더 빠른 걸음으로 성큼 전화기로 다가간 아내가 전화를 받는다.
그리고는 화가 잔뜩 난 목소리로 말한다.
"여기 세탁소 아니라니깐요! 딸깍"
그리고 조금전의 그 동작보다 조금 더 단호하고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린다.
"뭔데 그래?"
TV를 보고 있던 내가 물으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잔뜩 골이 난 아내가
여전히 신경질적인 말투로 말한다.
"같은 사람이 자꾸 '세탁소에요?'하고 묻자나요.
두 번이나 걸었으면 자기도 잘못 건줄 알아야지."
전화를 잘못 걸면 두번쯤은 잘못 할 수도 있다.
처음에 건 번호가 혹시 잘못 눌려졌을 지도 모르는 일이고
또 전화국의 혼선으로 인해
원하지 않는 곳으로 전화가 걸려질 수도 있는 경우도 있으니
두 번 정도는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몹시 짜증 섞인 표정을 하고 있는 아내는 특유의 급한 성미로
퉁명스럽게 전화를 받고는 할말만 하고 끊어 버리고 있었다.
하긴 그것도 그럴 수 있다.
전화통화도 일종의 에티켓인데
상대가 예의를 지키지 않았다고 생각되면 그럴 수도 있는 일이다.
그냥 이대로 끝나버리면 이런 정도의 작은 일은
기억 속에서 머무를 틈도 없이 순간적으로 사라져 버리는 일이다.
그러나 일진이 그러지 못했는지 그 일이 기억속에서 사라져버리기도 전에
전화벨은 또 울리고 있었다.
아내가 받으니 불행히도 '세탁소에요?'라고 상대방이 말을 하는 또 그 전화였다.
"아니, 글세. 여기는 세탁소가 아니라니까 그래요. 벌써 몇 번을 하시는 거예욧! 쾅!"
아내는 광분했다.
똑같은 전화를 3번이나 실수한다는 것은 이미 성희롱을 능가하는
정신적 피해를 주었다고 생각한 듯했다.
계속 작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누군지도 모를 상대의 실수를 씹어대고 있었다.
가만히 생각하니 이상한 일이다.
왜 전화의 상대방은 3번이나 똑같은 실수를 했을까?
장난전화라면 '세탁소'를 주제로 장난을 하진 않는다.
장난 전화를 하는 사람이 3,40대라면 '거기 중국집이죠?'라고 말하거나
또는 '정신병원이죠?'라는 투로 황당한 장소를 말하며 시작한다.
그리고 20대의 장난기 많은 청년이 장난전화를 했다면
'거기 이순신 장군댁인가요? 여기 강감찬 장군인데요.'라는 식으로 장난전화를 한다.
따라서 일단 기발함에서 떨어지는 장소인 '세탁소'를 들먹여 장난전화를 할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따라서 정난전화는 아니다.
그렇다면 아내가 세탁소와 특별한 악연을 가지고 있나?
설령 그렇다고 해도 그거야 전화를 받는 아내 생각이지
우리집에 전화해서 세탁소를 찾는 사람과는 관련이 없다.
혹시 내게 그 이유가 있는 걸까?
내가 고등학교 때 세탁소집 딸 경숙이가 내게 관심이 많았는데
나는 경숙이보다 이쁘고 공부 잘하는 빵집 딸 영란이를 더 좋아했었다.
공부 잘하고 이쁜 것만으로 경쟁력이 높은데
부친의 직업이 내게 주는 이익의 경쟁력으로 봐도
내가 세탁소집 딸 경숙이를 좋아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그 일에 대해 경숙이가 20년간 원한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집으로 걸려오는 '세탁소에요?'라는 전화와 아무 관련이 없다.
여태까지 아무런 일이 없었으니 갑자기 경숙이가 없던 원한이 생길 리는 없다.
그러니 우리집에 '세탁소에요?'라고 묻는 전화는 분명 잘못 걸린 전화임이 확실하다.
그런데 잘못 걸린 전화가 왜 3번씩이나 오는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는 중에 또 전화벨이 울린다.
전화벨 소리가 가지는 진동으로 보나 앞선 3번이나 울린 전화벨 소리와의 간격으로 보나
이 전화는 또 '세탁소에요?'라고 묻는 전화임이 확실했다.
전화벨의 울림에서부터 아내는 흥분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아내가 전화를 받는다면 전화를 부숴버리거나 아니면 답답함을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대상자인 나를 창밖으로 던질지도 모른다.
그 두 가지 모두 내게는 손해가 막심한 일이라 얼른 내가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세탁소에요?'라고 묻는 전화가 맞다면
나는 그 이유를 반드시 물어서라도 알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예상대로 역시 그 전화였다.
그러나 나는 아내가 들은 것과 똑같은 상대방의 첫마디에
그 전화가 잘못된 전화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잘못된 것은 전화가 아니라 성질 급한 아내다.
전화기 저편에서는 몹시 짜증스러워 하는 상대방의 말이 들려왔다.
"여기 세탁소에요...... 에구 벌써 몇 번째야 이거...."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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