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셋 여자 한 분 58

둘째 녀석의 기타

"오늘 기타 쳤느냐?""공부하느라 못쳤어요.""아니, 이 녀석이 공부하지말고 기타치라니까 말을 안들어?""헐~~~" 실제 우리집 일요일 상황이다.고등학교에 진학한 둘째녀석이 공부하느라 바쁘단다. 공부하란 말 아무도 안했는데... 어렸을 때부터 기타에 흥미를 느끼고 제법 열심히 쳐서 기특했다. 기특하기도 했지만 집안에서 들려오는 둘째의 기타소리가 참 듣기 좋았다. 주파수 높은 목소리로 숨넘어가는 억지 웃음을 웃는 티비 예능 방송도 아니었고, 별 것도 아닌 일에 준엄한 배경음악이 깔리며 비장한 분위기를 만드는 드라마도 아니었다. 자연이 만들어 낸 다음으로 아름다운 소리였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 둘째는 공부하느라 바빠 기타를 치는 일이 소홀해졌다. 나는 녀석이 집에서 공부하는 모습보다 기타 소리..

용감한 사람이 미인을 얻는다

매우 늦은 밤이었는데, 중학교에 다니는 둘째 아들이 갑자기 기타를 치겠다고 했다. 서로 죽고 죽이는 게임을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야밤에 물구나무 서겠다는 것도 아니고 정서함양에 좋고 가족 내력으로 교육시킨 기타를 치겠다는데 이것을 말릴 아버지는 없다. 치라고 했다. 12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 아들은 기타를 쳤다. 치는 자기는 재밌겠지만 옆에서 보는 나는 재미 하나도 없다. 소리를 죽이고 티비를 틀었다. 이상한 예능프로그램인 을 방영하고 있다. 가끔 화제가 되기도 해서 알고 있는데, 이거 출연진들이 바보짓하는 것만 같은데도 은근 재미있다.  아들이 기타를 치든 말든 그 따위는 보다 관심이 없는 나쁜 아버지인 나는 티비 시청에 열중했다. 아들녀석은 기타를 치다말고 아버지인 내가 뭘 그리 재미있게 보는지 ..

오래전 그 맛

“아버지, 정말 옛날에 먹던 그 맛 맞아요?”   큰 아들과 시내에 돌아다니다 식사 때가 되어 이라는 간판이 달린 식당에 들어가 음식을 주문했다. 식당입구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 볼 수 있도록 연탄불 위해 지글거리며 구워지는 돼지불고기가 주 메뉴인 식당이었다. 가끔씩 내게 옛날이야기 듣는 것을 즐거워하는 아들 녀석은 내가 돼지 불고기 한 젓가락을 밥 위에 얹어 맛갈스럽게 한입을 먹는 장면을 보고 그 맛이 정말 옛날 맛인지 궁금한 듯 내게 물었다.    “그 맛이 말이다......”  내 대답을 듣고 싶어하는 아들 녀석에게 뭐라고 얘기를 할까 망설이듯 말문을 열었다. 그 순간 내게 있었던 작은 기억 하나가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 * *  대략 5~6년전 일이었다. 미국에 살고 계신, 실향민 아버지를..

기타, 가족 그리고 음악

“얼마라구요?”“60만원!”“헐.......”  기타 한 대가 60만 원이라는 말에 아내는 마치 조국을 일본에 강탈당한 조선의 백성처럼 혼절했다. 혼절 약 1초간은 잠시 당황했으나 2초부터는 그냥 일어나지 않는 것도 괜찮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아주 잠시, 아주 약간 했다. 그러나 아내는 나의 바람을 무시하고 불과 혼절 3초만에 일어나더니 최만리 훈민정음 반대급 레벨로 ‘不可’를 외쳤다. 그것도 내 입장에서는 욕심을 많이 줄여서 얘기한 편이다. 하지만 반대의 정도가 아직 4대강 삽질 반대급이 아니라는 점에서 다소 희망을 가지게 되긴 했다.     기타, 가족 그리고 음악   문득 기타가 사고 싶어졌다. 기타가 치고 싶어진 게 아니라 단지 새 기타가 사고 싶어졌다. 지금 치고 있는 기타는 1984년 여름에 구..

이제는 훌쩍 커버린 아이들

처음 집안 얘기를 소재로 글을 쓸 때는 대부분이 아내 얘기가 주요한 소재였다. 그러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점점 자라면서 글을 주제는 아이들로 옮겨지게 되었고, 이것은 아마도 사람이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과정의 전형적인 현상일 것이다. 그렇게 어린 티를 팍팍 내면서 어른들의 흐뭇한 미소를 만들던 후연이 의연이 두 아들이 조금씩 커가더니 이제는 대부분의 화제를 공통적으로 나눌 정도의 나이가 되어버렸다. 세월의 무상함이지만 또한 자연의 섭리인 것이다.  점점 자라고 있는 두 녀석은 이미 중학교 3학년과 초등학교 5학년이다.     1. 엄마와 아내 휴일 저녁 가족들이 한가롭게 TV를 보고 있었다. 아내는 운동용으로 제작된 커다란 공 위에 앉아 균형을 맞춰가며 운동처럼 보이는 해괴한 행동을 한 채 TV를 시청하..

애독자

홈페이지에 소개되어 있어 이곳에 오는 분들은 모두 알겠지만내게는 그다지 자랑할만하지 않은 3권의 저서가 있다. 그래도 저서가 있다는 것이 자랑거리이긴 하다. 이미 오래전에 출간되었고 서점에서는 더 이상 볼 수 없는 책들이지만 아직도 책으로의 형태는 남아 있으니 책은 책인 셈이다.  세권의 책 중에 제일 먼저 출간된 '힘센 마누라는 여자보다 아름답다'라는 책이 있다.이 세상에서 이 책을 가장 많이 읽은 사람은 누굴까?당연히 출판하면서 가장 많이 봤을 테니 내가 제일 많이 봤을 게다.하지만 그 다음엔 누가 많이 봤을까 하는 파렴치한 생각은 평소에 하지 않는다.그런 생각이 머리에 떠오를 일도 없다.   큰 아들 후연이가 중학생이 되어 문장을 읽고 내용을 파악하는 수준이 초등학생 수준을 넘어서자 그 책을 보기 ..

후연이의 앙케이트

뭔가 읽을만한 것이 없는지 책꽂이를 살펴보다 조금은 특별한 책 한권을 찾아냈다. 지금 초등학교 5학년인 큰아들 후연이가 4학년 시절을 보낸, 학생들의 생활을 담은 책이다. 4학년을 마치고 지난 시간을 회상하는, 일종의 추억록 같은 책인데 다양한 내용이 담겨 있다.  첫장을 넘기니 는 제목이 나오고 이어 학생 한사람 한사람이 똑같은 설문 내용에 답을 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질문을 보진 않았지만 학생들의 답변을 보니 그 내용은 쉽게 짐작이 가능했다. 하고 싶은 일, 이상형, 미래의 꿈 등 초등학생에게 물어보기 적당한 질문들이었던 모양이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이와 비슷한 내용의 질문을 많이 듣곤 했지만 이렇게 잘 꾸며진 책으로 나온 적은 당연히 없었다. 그저 간혹 어떤 수업시간을 이용해서..

지랄 쌩쑈

"이건 정말 지랄 쌩쑈를 하는 거야!"  집에서 동생과 딱지놀이를 하던 후연이가 어느 대목에서 흥분했는지 상스런 소리를 서슴없이 했다.  "그게 무슨 말투야! 너 학교에서도 그러지?""학교에서는 안 그런단 말이에요!" 아내가 다그치자 후연이는 더 화를 내면서 아니라는 말을 몇번씩 되풀이했다. 이 말투로 본다면 녀석은 문제가 있다. 현재 녀석과 함께 학교에서 많은 시간을 생활하는 친구들이 평균적으로 이런 말투를 쓰거나 혹은 더 심한 말투를 쓸 수도 있지만 이런 경우는 상대적인 경우보다 절대적인 경우를 우선으로 생각향 하는 상황이다. 더욱이 요즘 들어 학교에서 돌아와서 하는 말이 친구가 없다거나 축구할 때 골키퍼만 시킨다면서 어린이 답지 않은 하소연을 하는 것을 몇번 본적이 있어 이런 부분일수록 철저하게 교..

팬티만 입은 아이들

"아버지, 꼭 팬티만 입고 가야 해요?"  강원도 횡성. 물놀이 가려고 아이들을 팬티만 입히고 냇가로 걸어가려 하는 순간에 자신의 복장에 불만이 생긴 작은 아들 의연이가 물었다. 녀석은 자신이 가장 잘 짓는 표정인 불만의 표현과 동정의 유발을 요구하는 묘한 얼굴로 난처한 자신의 심정을 말하고 있었다.  한 여름철, 강원도에 국한된 얘기지만 아이들을 팬티만 입히고 지내게 하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 * * 강원도 횡성에 집을 짓고 주말을 보내기로 한 이상 반드시 해야 하는 몇가지 일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것은 아이들 교육에 관한 것이고, 특히 시골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경험을 통해 도시에서 느끼지 못한 정서적 함양을 하는 것이 시골생활에서 반드시 해야 할 나의 숙제다.  냇가에서 물..

질문

"아버지, 솔직하게 얘기해주세요!"  저녁에 집에 들어와 입고 나갈 옷을 다리는 중이었다. 아내도 직장에 다니니 나 역시 내옷은 거의 내가 다린다. 처음엔 귀찮기도 했지만 이것도 하다보니 나름대로 재미가 있다. 혼자 멍청히 다른 생각하기도 좋고, 구겨진 옷들이 깔끔하게 펴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그리 나쁜 일만은 아닌 듯싶다. 가끔 이른 저녁에 귀가했거나 혹은 주말 저녁이면 다림질을 하곤 하는데 이날 따라 큰 녀석 후연이가 다림질하는 내게 다가와 진지한 질문을 던지는 중이었다.  아이들이 질문할 때 사용하는 의문문이 저 정도 심각한 문장의 구성이라면 이어 나올 질문의 내용 또한 심각할 것이다. 하지만 초등학교 4학년 어린이가 할 수 있는 심각한 질문은 과연 무엇일까? 내 기억을 거슬러 올라 가자면,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