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셋 여자 한 분

애독자

아하누가 2024. 7. 8. 00:30



홈페이지에 소개되어 있어 이곳에 오는 분들은 모두 알겠지만

내게는 그다지 자랑할만하지 않은 3권의 저서가 있다. 

그래도 저서가 있다는 것이 자랑거리이긴 하다. 

이미 오래전에 출간되었고 서점에서는 더 이상 볼 수 없는 책들이지만 

아직도 책으로의 형태는 남아 있으니 책은 책인 셈이다. 

 

세권의 책 중에 제일 먼저 출간된 '힘센 마누라는 여자보다 아름답다'라는 책이 있다.

이 세상에서 이 책을 가장 많이 읽은 사람은 누굴까?

당연히 출판하면서 가장 많이 봤을 테니 내가 제일 많이 봤을 게다.

하지만 그 다음엔 누가 많이 봤을까 하는 파렴치한 생각은 평소에 하지 않는다.

그런 생각이 머리에 떠오를 일도 없다. 

 

 

큰 아들 후연이가 중학생이 되어 문장을 읽고 내용을 파악하는 수준이 

초등학생 수준을 넘어서자 그 책을 보기 시작했다. 

스토리의 주인공이 자신의 엄마이고 글을 쓴 사람은 아버지며

간혹 자신의 얘기도 조금씩 등장하니 제법 흥미로웠던 모양이다. 

녀석은 지나치다싶게 그 책을 탐독했다,.

교과서를 그렇게 열심히 봤다면 엉덩이라도 두들겨주며 격려했을텐데

안봐도 되는 책을 그렇게도 열심히 보고 있으니 

엉덩이라도 한대 때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리고 한번 봤으면 대충웃고 넘기면 되는 일이지, 

같은 책을 도대체 몇번을 보는지 셀 수 없을 지경이다. 

이왕이면 삶에 있어 도움이 되는 철학이 담긴 내용이라든가 

혹은 알아두면 손해볼 게 없는 일반상식에 관한 내용도 아닌데 

그렇게 열심히 보니 답답하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한 상황이었다. 

 

 

그렇게 그 책을 열심히 본 탓인지 녀석은 일기를 쓰거나 다른 감상문을 쓸 때면 

글을 풀어가는 구성이나 표현하는 문체가 '힘센 마누라는 여자보다 아름답다'식이다. 

이걸 잘했다고 해야 할지 못했다고 해야 할지 부모로서도 참 갑갑한 일이다. 

일기를 쓰면서도 나름대로 마지막 마무리에 포인트를 준답시고 

'기대하시라, 다음에 계속'이라는 문장을 넣고 있다. 

얼핏 생각하면 재기 발랄하고 유머감각이 있는 듯하나 

문제는 이것이 매일매일 써야 하는 일기라는 것이니, 

방학동안 밀린 일기를 한번에 몰아서 쓴다는 고백밖에 되지 않는 내용이다. 

그래도 녀석은 그 표현이 나름대로 신선하다고 생각했는지 

아버지인 나의 지적에도 계속 즐거운 표정이다. 

그리고도 아직도 지겹지 않은지 여전히 시간만 나면 

'힘센 마누라는 여자보다 아름답다'를 읽고 있다. 

 

 

*     *     *

 

 

얼마전 아내의 생일이었다. 큰 아들 후연이에게는 엄마 생신인 셈이다. 

서둘러 집에 들어오니 아내가 큰 아들 후연이와 작은 아들 의연이가 써왔다며 

생일 카드를 보여주었다. 

작은 아들 의연이는 이제 초등학교 4학년이니 

창의력과 문장표현의 개성 발휘보다는 기본에 충실한 문장어서 

그다지 얘깃거리가 없는데, 큰아들 후연이 녀석의 생일 카드가 걸작이었다. 

녀석의 생일 카드속 축하 인사는 이렇게 시작했다. 

 

 

"엄마의 첫 작품인 큰 아들입니다."

 

 

 

 

중학생이 되더니 키가 쑥쑥 자라 엄마를 넘어섰고 

이제 나와 비슷해진 큰아들 후연이. 

공부 하기 싫어하고 공부 못하는 것만 나를 닮은 후연이가 이제 

내게 있어 가장 열성인 독자가 된 셈이다. 

 

조금 있으면 이 게시판 찾아와 인사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쳐다보기에 조금 민망함을 느낄 만큼 

나는 세상 물을 더 먹었을 것이다. 

억울할 것도 놀랄 것도 없다 . 어쩌면 그게 인생이니까.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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