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라구요?”
“60만원!”
“헐.......”
기타 한 대가 60만 원이라는 말에 아내는
마치 조국을 일본에 강탈당한 조선의 백성처럼 혼절했다.
혼절 약 1초간은 잠시 당황했으나 2초부터는
그냥 일어나지 않는 것도 괜찮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아주 잠시, 아주 약간 했다.
그러나 아내는 나의 바람을 무시하고 불과 혼절 3초만에 일어나더니
최만리 훈민정음 반대급 레벨로 ‘不可’를 외쳤다.
그것도 내 입장에서는 욕심을 많이 줄여서 얘기한 편이다.
하지만 반대의 정도가 아직 4대강 삽질 반대급이 아니라는 점에서
다소 희망을 가지게 되긴 했다.
기타, 가족 그리고 음악
문득 기타가 사고 싶어졌다.
기타가 치고 싶어진 게 아니라 단지 새 기타가 사고 싶어졌다.
지금 치고 있는 기타는 1984년 여름에 구입한 것으로, 들국화와 거의 같은 나이다.
당시 한 달 아르바이트 월급 전액인 15만원이라는 거금을 투자해서 구입한 것으로,
좋은 소리와 명장의 손길이 담겨있긴 하지만
시간의 벽마저 넘을 수는 없는 일이어서 그저 추억만 간직하고 있다.
이것 말고도 몇 대의 기타가 더 있긴 하지만
그것은 단지 인터넷에서 최저가로 구입한 장난감 같은 기타다.
어차피 잘 치지도 못하고 잘 치지도 않으니
인테리어 소품 기능밖에 못하는데 뭔 상관이겠냐는 마음으로 구입했지만,
막상 사람의 마음이란 게 이왕이면 더 좋은 걸 가지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다.
“아이들 방학 때 뭐라도 보내야겠어요. 맨날 컴퓨터 게임만 하니......”
“......!”
기타를 사기 위해서 고민할 즈음 아내는 아이들에 대해 불만을 표시했다.
그리고 방학 중에는 반드시 뭔가를 시켜야겠다는 아내의 굳은 다짐을
바닥 걸레질 하는 아내 오른손의 굵은 힘줄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었다.
“기타 학원 보내요. 악기 하나 연주할 줄 알면 좋지 뭐......”
“그럴까요?”
혹시나 해서 던진 말인데 아내는 의외로 순수하게 받아들였다.
대부분 엄마들이란 조금이라도 공부에 관련된 무언가를 시키는 것을 좋아해야
현대 사회 엄마의 정상적 모습이어서 이러한 아내의 반응이 약간은 의외였지만
어쨌든 내가 새로운 기타를 구입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단계가
순조롭게 진행 중이었다.
일단 아이들이 기타를 배우기 시작해야
내가 아이들 때문에 기타를 새로 사야한다는 당위성이 생기는 셈이다.
자식들 앞세워야 대화가 가능하지 내 단독으로는 말도 안 되는 제안이다.
그렇게 아이들이 가까운 기타 학원을 다니기 시작한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을 때
나는 아내에게 새로운 기타의 필요성을 설명했고,
아내는 그런 설명의 당위성을 쉽게 이해하는 듯했다.
그러다가 그만 기타 가격에서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무슨 기타가 60만원이나 해요?”
현재 물가를 봐도 그렇고, 현대 경제사회의 화폐가치를 봐도 그렇지,
60만원이 비싼 건 아니다. 차라리 싼 편이다.
기타 중에는 당연히 100만 원 짜리도 있고 300만 원 짜리도 있으며,
600만 원 짜리 알함브라라는 스페인산 수입품도 있다.
당장 작은 누나 집에만 가 봐도 집에 누워있는 기타가
테일러라는 250만 원 짜리 기타라는 걸 아내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물론 그보다 더 비싼 기타도 줄 서 있으며
소더비 경매에 등장하는, 비틀즈가 사용하던 기타는 당연히 더 비쌀 것이다.
아내는 그 가격이 매우 비싸다고 생각했고
자신이 생각하는 적정가는 약 10만원인 듯 보였지만,
아내 역시 현실물가를 고려하지 않은 자신의 의견이 자칫 잘못하면
박인희 아줌마 모닥불 피우던 시절이라는
현대경제론적 역공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는지 잠시 고민하는 듯했다.
며칠 뒤 예약해둔 서울 강남의 한 공방에 갔다.
현재 서울 변두리에 사는 강원도 산골 출신 아줌마는
강남이라는 브랜드에 일단 만족했고,
모든 장인들이 그렇듯 자신의 작품에 대한 솔직함과 순수함,
그리고 알 듯 모르게 풍겨오는 포스의 설명은 아내를 흡족하게 했다.
기타 제작의 명인인 엄선생은 연습용이라는 단어가 악기에서는 적용되지 않는다며,
처음부터 바른 악기, 맑은 소리, 고운 음색이 필요하다고 했고
아내는 이 논리가 매우 적절하다며 흔쾌히 수용했다.
고맙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명인께서 설명한 내용이나
내가 아내를 설득하기 위해 했던 내용이 토씨만 틀리고 모두 일치하는 내용이었음에도
아내는 내 얘기 정도는 누군가가 <주가지수 3000>을 공약하는 정도로
시덥잖게 귀로 흘려보내고 명인의 설명만 받아들였다는 점이 생각났다.
하지만 그것은 배부른 나만의 투정이었고,
이후 아내는 통 크게도 60만 원 짜리가 아닌 100만 원 짜리를 눈앞에서 구입했다.
뿐만 아니라 그것도 모자라 60만 원 짜리 한 대를 더 주문하고 돌아왔다.
이 정도 상황이면 마누라가 이뻐서 번쩍 안아줘야 정상이지만
자칫 무리했다가 체급의 차이에서 벌어지는 필연적 사고로 인한 골절 및 타박상으로,
주문한 기타를 병실에서 받을 수도 있다는 냉정한 판단으로 애써 자제했다.
그렇게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른 기타 두 대가 생겼다.
* * *
예상했던 대로 큰 녀석은 한 달도 안 되어
따분한 어쿠스틱 사운드로는 도저히 만들어내지 못하는
디지털의 다이나믹을 즐기는 것을 더 좋아해서,
기타보다는 사이버 세상에서 자신만의 진지를 구축하고 아이템을 모으는 일에 매진했다.
자식들에게 악기 연주를 통해 음악의 순수함을 알려주어
정서적 만족과 심성을 올곧음을 가르치는 것 따위에는 그 다지 관심이 없는
몹쓸 아버지인 나는 녀석의 개성과 취향을 존중해주는 방식으로
교육정책을 순식간에 바꾸었다.
그나마 형보다는 인내력이 강한 동생이 드문드문 기타를 치곤해서
비싼 기타를 쓸데없이 샀다는 아내의 잔소리는 피할 수 있었다.
어느날 작은 녀석이 기타를 치고 있었다.
녀석은 100만 원 짜리는 아버지 것으로, 60만 원 짜리는 자신의 것으로 생각했는지
늘 같은 기타만 쳤다.
당시 초등학교 5학년인 작은 아들.
녀석이 기타치는 모습을 보며 문득 좋은 생각이 났다.
큰 아들을 불렀다.
“예전에 피아노 친 적 있지 않느냐?”
‘있느냐?’, ‘없느냐’는, 아들에게 ‘있냐?’, ‘있지?’, ‘있어?’ 등의 어투가
웬지 아버지스럽지 않다는 생각으로 내가 늘 아들에게 말하는 어투다.
듣는 사람은 조금도 고려치 않고 자신만의 취향만 고려한, 이 또한 몹쓸 말투다.
녀석은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아버지, 그건 한국축구 월드컵 4강 가던 시절인데요?”
“......?”
나름대로 유머를 구사했지만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실패!!!!
“요즘 동생이 치는 기타 곡이 있는데, 거기 관악기 부분이 있느니라.
그거 좀 피아노로 쳐보거라. 한 손으로 멜로디만 짚으면 되느니라.”
“악보는요?”
“그런 거 없다. 내가 채보해줄 수도 있지만 너의 음악성을 믿는다.”
채보라는 숭고한 단어는 단지 단어의 의미만 알고 있을 뿐이지
내게 그런 능력이라곤 조금도 없다.
그리고 녀석을 피아노에 앉히고 연주를 시작했다.
나는 안하고 둘만 시키니까 몹쓸 아버지는 편하고 좋다.
두 아들 녀석의 어색한 연주
그러다가 또 좋은 생각이 났다.
“얘들아, 이제 우리 셋이 하자꾸나......”
“아버지는 연습도 안하잖아요?”
“아버지는 원래 그런 거 없다!”
아이들 연주는 그냥 멜로디 하나, 베이스 하나 있으면 반주 개념으로 코드만 잡으면 된다.
그러다가 잘 모르겠으면 ‘여기까지 하고 그만’하고 일방적인 중단 선언을 하면 된다.
필요할 때는 시키고 곤란할 땐 중지시키는 것, 그게 바로 몹쓸 아버지 정신이다.
그렇게 세 부자가 연주를 시작했다.
아버지와 두 아들
연주자들의 무대의상이 매우 선정적이다.
하지만 이 연주는 그저 내가 심심할 때,
그리고 아내가 비싼 돈 주고 샀다고 생각하는 기타의 효용가치를 증명하기 위해서
간혹 연주할 뿐 녀석들은 아직 연주를 통한 음악의 접근과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편이다.
그래도 안 해 본 것보단 나을 거라는 생각으로 간혹 과제물을 준다.
사실, 연주를 자주 못하는 진짜 이유는 내가 내 파트 연습하는 게 귀찮기 때문이다.
쉽게 편곡된 옛날 팝송 중 <Yesterday once More>, <Stand by Me>,
<La Bamba> 등으로 연주를 즐기고 있다.
● * * *
TV에 탑밴드2가 시작됐다.
아들 두 녀석과 재밌게 보는 프로그램인데,
큰 녀석은 음악적 접근보다는 오히려 출전 팀들의 그룹 이름에 더 관심이 많았다.
출전하는 밴드 이름을 들을 때 마다 왠지 어색하고 유치하다며 혀를 끌끌찼다.
그러더니 문득 질문을 했다.
“아버지 우리가 밴드 만들면 이름을 뭘로 하실 거예요?”
“우리?......”
그런 거 생각해본 적 없지만
이럴 땐 뭔가 그럴 듯하게 대답해야 가장으로서 권위도 생기는 상황이다.
“<덜국화>로 하지”
“......?”
아이들의 표정은 실망으로 가득했다.
덜국화란 이름은 들국화를 표방하되 아직 실력이 덜 완성되었다는 의미와
향후 wanna be 들국화를 지향한다는 뜻깊은 의미,
그리고 들국화도 3명으로 시작했다는 친절하고도 심오한 나의 부연설명이
시작되기도 전에 녀석의 표정에는
감히 직계존속에게 할 수 없는 패륜성 짙은 실망감이 나타났다.
얼른 말을 바꿔서 설명했다.
“그래도 <뜰국화>보단 낫지 않느냐?”
“헐.......”
아이들은 내가 그 자리에서 급조한 이름으로 생각하여 단호하게 대꾸했다.
“세상에 누가 그런 유치한 이름을 쓰나요?”
“......!”
큰 녀석이 그랬다. 너 분명히 유치하다고 했다.
녀석은 머지않아 큰 곤욕을 치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전인권 아저씨도 없잖아요?”
녀석은 팀에 보컬리스트가 없는 것을 말하는 듯했다.
보컬이야 나중에 구해도 되고 없으면 없는대로 음악을 연주하면 되는 것인데,
녀석들은 갖출 것 다 갖추려는 엄마식 욕심을 부리는 듯했다.
잠깐의 해프닝이었지만 불행히도 <덜국화>는 끝내 결성되지 않았다.
끝까지 자신이 노래를 부르겠다고 나서는 마누라만 아니었어도 뭔가 이뤘을지 모른다.
* * *
“축구나 시켜요. 작은 녀석은 축구교실 보내고 큰 놈은 클럽에 가입시키고.....”
“그럴까요?”
아이들의 여름방학이 다가 왔다.
아내는 방학 기간 중 내내 하루종일 집안에서 컴퓨터 게임을 하고 있을
두 아들 녀석들을 생각하니 짜증이 나기 시작한 듯했다.
뭔가 시켜야 하지 않겠냐며 내게 물었다.
축구나 시키라는 말에 제법 흡족했는지 아내는 물끄러미 나를 쳐다봤다.
아내는 눈엔 내 모습이 가끔 쓸 데도 있다는 눈빛이었다.
뭘 하는지 평소엔 그다지 능력없는 남편이지만
아들 둘을 키우는 엄마 입장에서 볼 때 남자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을
아버지로서 잘 해내고 있다고 보는 듯했다.
가끔 아내는 내게 불만을 가지다가도 아들하고 놀아주는 것을 보거나
혹은 다른 주부들이 자신의 남편이 아이들에게 아버지의 역할을 제대로 못한다는
불평을 들을 때 가끔 만족스러운 얼굴로 나를 쳐다보곤 했다.
이번에 축구나 시키라는 말도 그렇게 받아들였던 모양이다.
하지만 난 그런 거 잘 모른다.
나는 그저 새 축구화가 필요했을 뿐이다.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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