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셋 여자 한 분

용감한 사람이 미인을 얻는다

아하누가 2024. 7. 8. 00:36


  

매우 늦은 밤이었는데, 중학교에 다니는 둘째 아들이 갑자기 기타를 치겠다고 했다. 

서로 죽고 죽이는 게임을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야밤에 물구나무 서겠다는 것도 아니고 

정서함양에 좋고 가족 내력으로 교육시킨 기타를 치겠다는데 이것을 말릴 아버지는 없다. 

치라고 했다. 

12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 아들은 기타를 쳤다. 

치는 자기는 재밌겠지만 옆에서 보는 나는 재미 하나도 없다. 

소리를 죽이고 티비를 틀었다. 

이상한 예능프로그램인 <짝>을 방영하고 있다. 

가끔 화제가 되기도 해서 알고 있는데, 

이거 출연진들이 바보짓하는 것만 같은데도 은근 재미있다. 

 

아들이 기타를 치든 말든 그 따위는 <짝>보다 관심이 없는 나쁜 아버지인 나는 

티비 시청에 열중했다. 

아들녀석은 기타를 치다말고 아버지인 내가 뭘 그리 재미있게 보는지 

티비 화면을 쳐다봤다. 

기타 치는데 방해될까봐 소리를 내지 않고 티비를 볼 만큼 성실한 아버지................는 개뿔, 

그 프로는 그냥 화면만 봐도 되는 방송이었다. 

마침 출연자들이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화면 밑부분에 커다란 자막이 나왔다. 

 

 

<용감한 사람이 미인을 얻는다!>

  

 

기타를 잠시 멈춘 둘째 아들은 그 자막을 보더니 뭔가 궁금하듯 내게 물었다. 

 

 

“저게 무슨 말이에요?”

 

    

항상 궁금증 많고, 알고 싶은 거 많은 둘째는 

자신이 모르는 사실이 발견될 때마다 여지없이 물어보는, 학구열이 대단한 녀석이다. 

 

 

“그건 말이다......”

 

 

이럴 땐 남자끼리라는 게 설명이 도움이 되기도 한다. 

예쁜 여자가 있으면 대부분 남자들이 ‘저 여자는 애인이 있을 거야’라고 생각하거나 

혹은 ‘나같은 사람을 좋아하지 않을 거야’라고 지레 짐작하지 말고 

일단 자신있게 ‘들이대면’ 사귀게 될 확률이 높다는, 매우 현실적인 해석을 했다. 

즉, 쪽팔리다 생각말고 또 쫄지말고 들이대야 예쁜 여자친구를 사귈 수 있다는 결론이었다. 

그리고 그런 게 바로 아까 티비에서 말한 용기라는 것이라는 부연 설명도 잊지 않았다. 

  

 

정갈한 표현과 뛰어난 어휘 선택으로 

중학교 1학년에게 충분히 납득할만한 설명을 해줬다는 뿌듯함이 

대퇴부 근처로 밀려올 즈음 둘째 녀석은 뭔가 주저하듯 어렵게 말을 꺼냈다. 

 

  

“그래서 아버지는......”

 

  

그리고 매우 측은한 얼굴로 쳐다봤다. 

그 측은한 얼굴에는 도저히 자신의 입으로는 다음 문장을 꺼내지 못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도 담겨있었다. 

 

  

결국 성질 급한 내가 녀석의 말을 이었다. 

 

 

“그래, 나 겁쟁이었다! 왜?????”

 

  

녀석은 부정도 긍정도 없는 묘한 표정으로 

조금전까지 진행하던 기타 연주를 이어가고 있었다. 

우리집엔 온통 나쁜 사람뿐이다. 

 

  

 

  

  

 

나중에 너는 얼마나 용기있는지 두고 보자!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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