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집안 얘기를 소재로 글을 쓸 때는 대부분이 아내 얘기가 주요한 소재였다.
그러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점점 자라면서 글을 주제는 아이들로 옮겨지게 되었고,
이것은 아마도 사람이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과정의 전형적인 현상일 것이다.
그렇게 어린 티를 팍팍 내면서 어른들의 흐뭇한 미소를 만들던 후연이 의연이 두 아들이
조금씩 커가더니 이제는 대부분의 화제를 공통적으로 나눌 정도의 나이가 되어버렸다.
세월의 무상함이지만 또한 자연의 섭리인 것이다.
점점 자라고 있는 두 녀석은 이미 중학교 3학년과 초등학교 5학년이다.
1. 엄마와 아내
휴일 저녁 가족들이 한가롭게 TV를 보고 있었다.
아내는 운동용으로 제작된 커다란 공 위에 앉아 균형을 맞춰가며
운동처럼 보이는 해괴한 행동을 한 채 TV를 시청하고 있었다.
날씨가 더운 계절이어서 아내의 옷은 매우 간단했고,
위 아래로 들썩거려야만 효과가 있는 운동이어서
아내는 그 복장으로 공 위에 앉아 계속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셔츠 아래로 보이는 뱃살 또한
몸의 움직임에 맞춰 심하게 출렁거리기 시작했다.
나의 시각으로 본다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고,
그리 흉하게 보이는 장면은 아니어서 애써 외면하고 TV시청에 집중하려고 하는데,
같은 장면을 보고 있던 큰 아들 후연이 눈에는 그 장면이 계속 신경이 쓰였던 모양이다.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한마디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들었지만
이어 벌어질 상황에 대한 불길한 예감이 있었는지 엄마에게 직접 말을 하지 못하고
우연히 눈이 마주친 내게 하소연하듯 물었다.
“아버지, 엄마 뱃살이 너무 심한 거 아니에요?”
녀석은 나의 동조를 바라는 절실한 눈길로 내 반응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녀석이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지
짧은 시간의 생각을 마치고 녀석에게 대답했다.
“너한테는 엄마지만 나한테는 부인이란다.”
녀석은 고개를 끄덕이면 대꾸했다.
“아, 그렇군요.....”
만약 녀석이 나의 대답을 ‘남편인 나는 오죽하겠니?’로 해석했다면
이제 아들하고도 아내 흉을 봐도 되는 때가 되었다는 사실일 것이다.
2. 오후의 낮잠
일요일 오후, 아내는 저녁 식사를 준비한다며 작은 아들 의연이를 데리고 시장에 갔다.
큰 아들 후연이와 둘이 방안에 빈둥거리며 누워 TV를 이곳저곳 돌리는 데
마땅한 방송이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 드라마의 재방송이나 웃고 떠드는 오락프로그램이다.
아들하고 둘이서 함께 하는 한가로운 일요의 오후의 TV시청이니
적당한 교훈이 담긴 명작 영화나, 잘 만들어진 다큐멘터리 방송이 있으면 참 좋겠지만
그런 방송은 보이지 않았다.
관심을 끌만한 스포츠 중계라도 있으면 좋겠지만 스포츠 비수기여서 그랬는지
적당한 스포츠 중계도 보이지 않았다.
녀석은 내가 내 입맛에 맞는 방송을 찾으려고
채널을 이곳저곳 찾아보고 있는 중이라 생각했는지
조용히 옆에서 어느 곳이든 채널이 한 군데로 정착되기만을 기다리는 듯했다.
하지만 열심히 찾아보아도 좋은 방송은 쉽게 나타나지 않았고
어느 덧 한가로운 오후에 알맞은 낮잠이 솔솔 찾아오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후연아, 아버지 그냥 한숨 자야겠다. 네가 채널 돌리다가 재밌는 방송 나오면 깨우거라.”
“네, 아버지”
녀석은 내가 엎드려 찜질방 스타일로 자세를 취한 뒤
몇 번 뒤척일 때까지 채널을 돌리고 있었다.
그리고 막 잠에 빠져들기도 전에 녀석의 환희에 찬 발견의 흥분이 담긴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녀석은 내 입맛에 딱 맞는 방송을 찾아냈을 것이다.
“아버지, 소녀시대 나와요.....”
3. 뽀뽀
아침이 되면 우리집은 상당히 분주해진다.
출근하는 어른 두 명, 등교하는 학생 두 명이 저마다 서둘러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몹시 바빠진다.
그 시간은 각자 주어진 시간 안에 공통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화장실 사용 등에
혼선이 생기면 곤란해지고, 그런 시간을 중심으로 비어있는 시간에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생리현상 해결, 화장, 코디 등을 해야 한다.
그리고 식사도 주어진 밥상에서 알아서 각자 먹을 만큼 먹고
모든 마무리는 훗날을 기약하며 서둘러 각자의 길을 가야 하는 시간이다.
주로 아내와 후연이가 먼저 집을 나서고 뒤이어 나와 의연이가 집을 나서게 되는 패턴이다.
어느 날 아침은 회사일로 가장 먼저 집을 나서야 하는 아내가
기분이 좋았는지 나와 두 아들에게 돌아가면서 뽀뽀를 날린다.
나름대로 각자의 상황에 알맞은 적당한 인사와 함께
정신없이, 번갯불에 콩볶듯 세 남자에게 뽀뽀를 날렸다.
그러면서 아내는 자신이 유일한 집안의 여자라는 점을 강조하듯 혼잣말로,
그러나 누구라도 다 들으라는 큰 목소리로 말했다.
“이거 원 여자라고 하나밖에 없으니 뽀뽀해주는 것도 힘드네....”
아내가 그 말을 마칠 순간 막내 의연이와 내가 눈이 마주쳤다.
그 말에 대해 어떤 반박이라도 나와야 적당할 순간이었고
의연이와 내가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바로 그 순간에
의연이가 내게 동의를 구하는 말을 건넸다.
“우린 이게 좋은 줄 아나봐요......”
그리고 아들과 함께 살짝 웃었다.
이런 말을 크게 해서 엄마가 들어봐야 그다지 좋을 게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걸보니
이제 막내 의연이도 세상을 조금 알아가는 모양이다.
아하누가
'남자 셋 여자 한 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래전 그 맛 (0) | 2024.07.08 |
---|---|
기타, 가족 그리고 음악 (0) | 2024.07.08 |
애독자 (0) | 2024.07.08 |
후연이의 앙케이트 (0) | 2024.07.08 |
지랄 쌩쑈 (0) | 2024.07.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