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셋 여자 한 분

후연이의 앙케이트

아하누가 2024. 7. 8. 00:29


뭔가 읽을만한 것이 없는지 책꽂이를 살펴보다 

조금은 특별한 책 한권을 찾아냈다. 

지금 초등학교 5학년인 큰아들 후연이가 

4학년 시절을 보낸, 학생들의 생활을 담은 책이다. 

4학년을 마치고 지난 시간을 회상하는, 

일종의 추억록 같은 책인데 다양한 내용이 담겨 있다. 

 

첫장을 넘기니 <그 사람이 알고 싶다>는 제목이 나오고 

이어 학생 한사람 한사람이 

똑같은 설문 내용에 답을 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질문을 보진 않았지만 학생들의 답변을 보니 

그 내용은 쉽게 짐작이 가능했다. 

하고 싶은 일, 이상형, 미래의 꿈 등 

초등학생에게 물어보기 적당한 질문들이었던 모양이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이와 비슷한 내용의 질문을 많이 듣곤 했지만 

이렇게 잘 꾸며진 책으로 나온 적은 당연히 없었다. 

그저 간혹 어떤 수업시간을 이용해서 

차례대로 돌아가며 정해진 질문에 한마디씩 대답을 하는 

시간만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매우 그 시간을 싫어했었다. 

주로 앞으로 무엇이 되고 싶냐는 '희망사항'이 질문의 핵심이었는데

이와 비슷한 내용의 질문은 학년이 바뀌어도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럴 때마다 참 난감하기도 한 것이,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하는지 특별히 떠오르는 생각은 없는데 

대답은 자꾸 강요하니 더욱 곤란했었다. 

 

무엇이 되고 싶냐는 이 막연한 질문, 비록 초등학생이었지만 

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은 할 수 있었지만 

그것이 과연 평생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일인지, 

혹은 그것이 되는 과정엔 어떠한 어려움이 있는지 알 수는 없는 일이라는 것이 

초등학생 답지 않은 사악한 핑계였다. 

 

세월이 훨씬 지나 20대를 넘기고 또 30대를 넘기고 

40대를 맞아도 뭐가 되고 싶다는 명확한 설정을 못한 것을 보면 

당시에 난감할 수밖에 없었던 사실에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것이 확실해진 듯하다. 

그러니 선생님과 눈을 마주친 자리에서 

나중에 어른이 되면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는 선생님의 질문에 

버르장머리 없이 그걸 어떻게 지금 말할 수 있냐고 

대답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앞서 말한 친구들의 답변중 선생님이 따로 그 이유를 묻지 않고 지나간 

가장 특징없는 것을 하나 선정하고 

더 이상 묻지 말아달라는 의미가 담긴 조용한 목소리로 얼버무리듯 대답을 하곤 했다.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내겐 귀찮고도 곤혹스러운 시간이었다. 

 

 

책장을 몇장 더 펼치니 아들 후연이 페이지가 나왔다. 

녀석은 뭐라고 적었을까 궁금한 마음으로 열어보니 

이 녀석의 대답이 가관이다. 

 

잠시 공통된 질문과 녀석의 대답을 보자. 

 

 

1. 내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은?

---> 내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은 없습니다.

 

2. 내가 가장 고마왔던 때는?

---> 내가 가장 고마왔던 때는 없습니다. 

 

3.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온라인 게임입니다. 

 

4. 나를 가장 화나게 하는 것은? 

---> 나를 가장 화나게 하는 것은 동생입니다. 

 

5. 우리집에서 나는 어떤 사람인가?

---> 우리집에서 나는 어떤 사람인지 잘 모릅니다.

 

6. 내가 이세상에 태어난 이유는?

---> 그냥....

 

7. 내가 좋아하는 이상형은?

---> 내가 좋아하는 이상형은 없습니다. 

 

 

매우 심플하고 또한 단호하다. 

질문의 내용으로 봐도 몇가지 질문은 당시 초등학생이던 내가 그랬듯 

초등학생에게 딱히 대답할만한 가치가 없는 질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아내는 걱정인 모양이다. 

이것은 질문에 대답하는 성의가 전혀 보이지 않았고, 

혹은 선생님의 의도에 정면으로 반대의견을 나타내는 일종의 

태업으로도 생각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녀석을 금방 이해한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녀석도 아마 

그런 질문들이 다 부질없는 것 쯤으로 생각했었을 것이다. 

다만 나는 녀석이 나보다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나는 상당히 비굴한 자세로 피해가는 방법을 썼는데, 

녀석은 나름대로 당당하게 정면돌파로 자신의 의견을 표현했으니 

아버지보다 훨씬 나은 셈이다. 

 

이 앙케이트를 보면서 녀석이 창의력이 부족하다거나 

응용력이 모자란다거나 또는 주변머리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 내가 그랬던 것처럼 녀석도 같은 생각을 했을 거라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확신할 수 있었던 이유 또 한가지는, 

질문 틈에 보인 또 하나의 같은 생각 때문이었다. 

 

질문  중 이런 질문이 있었다. 

 

"내가 가장 무서운 것은?"

 

그리고 이어지는 녀석의 대답.

 

"내가 가장 무서운 것은 엄마의 잔소리입니다."

 

 

 

나랑 똑같다.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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