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셋 여자 한 분

팬티만 입은 아이들

아하누가 2024. 7. 8. 00:28



"아버지, 꼭 팬티만 입고 가야 해요?"

 

 

강원도 횡성. 

물놀이 가려고 아이들을 팬티만 입히고 냇가로 걸어가려 하는 순간에 

자신의 복장에 불만이 생긴 작은 아들 의연이가 물었다. 

녀석은 자신이 가장 잘 짓는 표정인 

불만의 표현과 동정의 유발을 요구하는 묘한 얼굴로 

난처한 자신의 심정을 말하고 있었다.  

한 여름철, 강원도에 국한된 얘기지만 

아이들을 팬티만 입히고 지내게 하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 * *

 

강원도 횡성에 집을 짓고 주말을 보내기로 한 이상 

반드시 해야 하는 몇가지 일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것은 아이들 교육에 관한 것이고, 

특히 시골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경험을 통해 

도시에서 느끼지 못한 정서적 함양을 하는 것이 

시골생활에서 반드시 해야 할 나의 숙제다. 

 

냇가에서 물고기를 잡는 것도 좋고 풀밭에서 메뚜기를 잡는 것도 좋다. 

또 고구마를 캐서 구워먹는 것도 좋고 

추운 겨울에 모닥불 피우며 끝말잇기 하는 것도 좋다. 

그러나 그렇게 정제된 교육적 프로그램보다는 

아이들이 주변 상황과 분위기에 맞게 스스로 어울리게 되는 것이 

더 중요한 교육의 목적이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시골까지 와서 굳이 인터넷을 하겠다던가, 

피자나 치킨을 주문해서 먹겠다고 우겨서는 안된다는 것과 일맥상통한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한 여름 시골에서 아이들은 팬티만 입고 다는 것도 것도 괜찮다. 

특히 요즘은 아이들 팬티도 트렁크형으로 나오니 

반바지 같기도 해서 별로 흉할 것도 없다. 

녀석들이 잘 하는, 훌렁 벗고 알몸으로 물에 풍덩 빠지기에도 적절한 복장이니 

편리성도 상당히 확보된 셈이다. 

그렇게 잘 지내던 생활이었는데 뜬금없이 작은 녀석이 

복장에 대한 항의를 하고 나선 꼴이 되었다. 

 

"왜? 챙피해서?"

 

녀석은 대답 대신 눈만 껌뻑거리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이제 의연이 나이는 7살. 

사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해야 하는 나이지만 워낙 생일이 늦어 한해 입학을 늦췄다. 

냉정히 생각해보면 작년까지만 해도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지내던 녀석이 

갑작스레 팬티만 입은 자신의 모습에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도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은 나이와는 관계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 표현이 부족한 것 뿐이지 아마 태어나면서부터 부끄러움을 느낄 상황이면 

누구나 다 부끄러움을 느낄 것이다. 

지금의 의연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면 교육의 효과라는 개인적 욕심은 포기하고 

자기가 만족할 코디네이션을 갖춰 주어야 하는 것이 

어쩌면 이 상황에서는 더 바람직한 일일 수도 있다. 

 

그러다 문득 옆에 있는 큰 아들 후연이의 모습이 보였다. 

녀석 또한 다름없이 팬티만 당랑 한장 입고 냇가에 갈 준비를 하고 있다. 

후연이는 지금 초등학교 4학년. 

부끄러움을 느낀다면 이 녀석이 더 느껴야 하는 나이다. 

그리고 보니 후연이는 지금까지 여름철 복장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낀다거나 또는 

복장에 대해 불만을 표현한 적이 없었다. 이것도 참 이상한 일이다. 

첫째랑 둘째가 생각의 차이가 있는 걸까 

아니면 작은 듯하지만 그들 사이에도 알듯 모를 세대차이가 존재하는 것일까? 

더 이상 깊게 생각할 상황이 아니어서 의연이를 잘 설득하기로 했다. 

 

"형을 봐, 형도 저렇게 입고 냇가에 가잖니. 그렇지?"

 

의연이는 형을 쳐다 봤고 같은 복장으로 냇가에 갈 준비를 하던 후연이도 

부모의 입장을 도우려는 듯 의연이에게 특별한 코디를 고집부리지 말 것을 권했다. 

 

"의연아, 그냥 이렇게 입고 가면 돼."

 

그리고 후연이는 그렇게 복장을갖춰야 하는 이유를 

매우 당당한 목소리로 의연이에게 설명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자식 교육은 부모가 원한다고 이뤄지는 것이 절대 아니라는, 

너무도 상식적인 생각을 다시금 떠올려야 했다. 

 

후연이는 의연이에게 자신있게 말했다. 

 

 

 

"야, 나는 뭐 이렇게 입고 싶어서 입는 줄 아니?"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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