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셋 여자 한 분

질문

아하누가 2024. 7. 8. 00:26



"아버지, 솔직하게 얘기해주세요!"

 

 

저녁에 집에 들어와 입고 나갈 옷을 다리는 중이었다. 

아내도 직장에 다니니 나 역시 내옷은 거의 내가 다린다. 

처음엔 귀찮기도 했지만 이것도 하다보니 나름대로 재미가 있다. 

혼자 멍청히 다른 생각하기도 좋고, 

구겨진 옷들이 깔끔하게 펴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그리 나쁜 일만은 아닌 듯싶다. 

가끔 이른 저녁에 귀가했거나 혹은 주말 저녁이면 다림질을 하곤 하는데 

이날 따라 큰 녀석 후연이가 다림질하는 내게 다가와 진지한 질문을 던지는 중이었다. 

 

아이들이 질문할 때 사용하는 의문문이 저 정도 심각한 문장의 구성이라면 

이어 나올 질문의 내용 또한 심각할 것이다. 

하지만 초등학교 4학년 어린이가 할 수 있는 심각한 질문은 과연 무엇일까? 

내 기억을 거슬러 올라 가자면, 내가 초등학교 4학년일 때 나는 

어떻게 해야 옆 줄에 앉은 영란이랑 짝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정도의 고민이 

초등학교 4학년 시절의 가장 큰 고민이자 인생문제였다. 

그러나 그러한 문제는 자칫 부모를 포함한 어른들에게 상의할 수 없는 문제였다. 

인생 상담한다고 진지한 얼굴로 이런 고민을 말해봐야 

공부나 열심히 하라는 소리를 들을 것이 뻔하다는 사실을 나는 영악하게도 알고 있었다. 

따라서 내 경우를 비교해보더라도 

초등학교 4학년 어린이의 심각한 질문은 없는 것이며 

있다고 해도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하는, 혼자만의 고민이어야만 했다. 

 

"아버지! 엄마하고 아버지하고 ...."

 

여기까지 듣고 나는 이 녀석이 자신의 출생의 비밀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질문이 끝나고 녀석의 표정과 말투의 심각성을 판단한 후 

농담으로 대답할 것인지 아니면 진지하게 성교육을 시작할 것인지 결정하고자 했다. 

하지만 녀석의 질문 내용은 나의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누가 더 다림질을 잘해요?"

"......?"

 

 

과연 이 녀석은 이 질문을 하려고 저리도 비장한 말투로 질문을 꺼냈단 말인가? 

 

 

* * *

 

 

아이들이 점점 커갈 때 궁금증을 느끼는 인생의 여러 문제점들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특히 초등학교 4학년 어린이라면 그들만의 세상에서 오가는 인생의 주요 쟁점은 

세상의 모든 것드을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그런 면에서 지금 후연이가 느끼는 인생의 문제점은 구분과 우열이다. 

남자와 여자를 비롯한 세상의 상대적인 것은 분명히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또 그런 구분이 생길 때 과연 그들의 우열관계는 어떤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현재 후연이가 가지는 가장 중요하고도 커다란 문제점이다. 

지금 후연이는 남자가 하는 일과 여자가 하는 일이 분명히 다르다고 생각할 것이다. 

피아노 학원을 보내도 피아노 치는 일에 시큰둥한 것도 

어딘선가 들은, 피아노는 여자만 하는 것이라는 

친구들과의 대화가 그 모티브가 된 것이며 

빨간 색 옷을 입기 싫어하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특히 구분을 한 뒤 우열을 가름하고자하는 욕구는 

내가 어렸을 때와는 달리 더 심화되었다. 

내가 어렸을 때에 가늠하고자 했던 우열은 호랑이와 사자의 싸움, 

알리와 이노끼의 승부 등이 고작이었지만 

요즘의 어린이들에게 인기있는 컴퓨터 게임 방식은 모두 일대일 승부를 하는 것이라 

이러한 궁금증을 더욱 발전시켰고 

따라서 승부의 결과와 비교우위는 아이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생의 주요 쟁점이 되었다. 

이로 인해 아버지가 다림징을 한다는 것도 이상했을 것이고 

그런 아버지가 엄마보다 다림질을 더 잘 할 수 있 있는지 없는지의  문제는 

녀석의 나이에서 가장 중요한 궁금증일 것이다. 

 

 

"엄마는 아버지가 더 잘한다던데요?"

 

아니나 다를까. 녀석은 이미 엄마에게도 물어본 모양이었다. 

세상의 여러 현상을 구분지을 수는 있겠지만 

그 성향이 다른 구분을 가지고 비교우위를 결정할 수는 없다. 

성격이 다르면 비교하기도 힘든 것이 또한 인생의 섭리요 진리다. 

아내가 다리미의 무게와 이를 위에서 누르는 힘을 바탕으로 구겨진 옷을 편다면, 

나는 다리미의 뜨거운 열과 구석구석 꼼꼼하게 다리는 나름대로의 기술로 다림질할 뿐이다. 

그것이 어떤 방법이든 옷이 펴진다는 똑같은 결과물을 얻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복잡한 설명은 아이를 이해시키기 힘들 것이다. 

 

"자, 잘봐. 아버지는 이렇게 요령으로 다림질하지? 그런데 엄마는 힘으로 다림질 하지? 

그러니까 각자 다림질 하는 방법이 다를 뿐이지 누가 더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는 없어."

 

하지만 내말을 들은 후연이는 선뜻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이렇게 설명해서는 아무런 효과가 없겠다 싶어 다른 예를 들었다. 

 

"봐, 축구로 말하면 아버지는 브라질이고 엄마는 독일이야......"

 

녀석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열성 축구팬 가정에서 자란 아이답게 쉽게 이해하는 얼굴이었다. 

축구를 제일 잘할 것 같은 브라질이 

지난 월드컵에서 8강까지 못갔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더 이해가 빠를 것이다. 

 

 

녀석은 이렇게 또 한번 더 성장한다. 

앞으로 녀석이 가지는 인생의 궁금증과 중요한 판단기준은 

날이 갈수록 새로운 것으로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그 기준을 내가 이해못할 즈음 녀석은 어른이 되어 있을 것이다.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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