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녀석 후연이는 지금 여름방학중이다.
이미 어른이 된 사람들도 학창시절을 돌아본다면
방학이 주는 즐거움을 새삼스레 떠오르게 되듯
학생들에게 있어 방학이 전해주는 즐거움은 당시 인생의 최고 기쁨일 수도 있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의 학생이나 지금의 학생들이나 방학은 좋은 것이다.
그런 후연이는 아침부터 컴퓨터를 하기 시작해서 밤 늦은 시간까지 컴퓨터에 매달린다.
중간에 잠깐 학원도 가고 TV도 보는 것 같지만 주력놀이가 되는 것은 역시 컴퓨터다.
얼핏얼핏 어깨 너머로 들여다보니 게임도 하는 것 같고 동영상도 보고,
요즘 또래들 틈에서 유행하는 것 같은 엽기송이나 허무송류의 유머도 보는 모양이다.
나 역시 인터넷하기 시작하면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으니
달리 꾸짖을 만한 입장이 안되지만
이를 지켜보는 아이 엄마나 할머니의 눈에는 그게 곱게 보일 리가 없다.
야단도 많이 맞은 듯 엄마나 할머니가 오면 슬그머니 모니터를 끈다.
아이는 아이인지라 모니터만 꺼두면
마치 컴퓨터를 하지 않은 듯한 상황으로 잠시 순간을 모면하는 아동적 위장전술이다.
컴퓨터를 하지 말라고 해도 엄마 아빠가 출근하고 나서는
누구의 간섭도 제재도 없는 상황이라
스스로의 자제력만으로 컴퓨터 하는 시간을 조절한다는 것 또한
그 나이에는 무리일 듯 싶다.
앞으로 평생 컴퓨터하고 함께 지낼 세대니 그냥 놔두려고 하지만
그것보다 아이 엄마나 할머니 등의 잔소리가 만만치 않다.
하루는 자율관리가 불가능하다고 판단되어 곰곰이 생각하다
컴퓨터에 연결되어 있는 마우스를 빼서 가방에 넣고 집을 나섰다.
아마 녀석은 상당히 당황했을 것이다.
마우스가 없다면 키보드를 조작해서 인터넷을 여는 방법을 녀석이 알고 있다해도
고작 글을 읽고 쓰는 정도일 것이다.
녀석이 내 생각보다 조금 더 컸다면 따로 비상용 마우스를 장만했을 것이다.
아무튼 컴퓨터에 마우스가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만으로도
녀석의 컴퓨터 사용은 엄청난 지장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아이들 뿐만 아니라 어른들이어도 마찬가지일 테니까.
* * *
저녁에 집에 들어왔더니 녀석이 컴퓨터를 했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약간 치졸하지만 이틀에 한번씩 마우스를 뽑아 들고 나가는 것도
제법 괜찮을 방법일 듯싶다.
"일기는 썼니?"
"네......"
아침에 집을 나서며 방학숙제도 있으니 일기를 꼭 쓰라고 했고
아울러 비가 많이 오니까 비에 대한 동시 한편을 써두라고 말한 기억이 떠올랐다.
녀석은 초등학교 4학년인데 일기를 잘 쓴다.
수려한 문장도 없고 드라마틱한 구성도 없지만
한가지 주제에 입각해서 요연하게 정리하는 글이다.
주제 밖으로 벗어나지도 않고 아침부터 잠잘 때까지 이루어지는 일상을 기록하지도 않은,
선생님들이 딱 좋아하는 일기다.
그런 녀석의 일기를 들여다보는 것도
가정을 이루며 사는 한 가정이 누릴 수 있는 작은 기쁨일 것이다.
이날 일기는 주제는 역시 컴퓨터 마우스였다. 녀석에게는 제일 큰 사건이었을테니까.
'아버지가 컴퓨터 마우스를 가지고 나가서 게임을 못했다. 우이쒸!.....'
이렇게 진행되는 녀석의 일기를 보니 이것도 할만한 일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어쩌겠나. 부모 입장에서는 나름대로는 최선의 방법인데.
당분간 녀석은 이틀에 한번 마우스 없는 컴퓨터를 이용해야 할 것이다.
컴퓨터의 기능은 마우스 없이도 사용이 가능하니
이 기회에 녀석이 컴퓨터의 매카니즘을 파악하여 키보드만으로 마우스를 사용하는
효과를 발휘하게 된다면 그것도 좋은 성과일 것이다.
다음날 아침에 컴퓨터에 마우스를 꼽아두고 집을 나섰다.
그리고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인터넷에 접속하여 아이들이 잘 가는 몇군데를 둘러봤다.
혹시나 아들 녀석이 또래들이 모이는 게시판에
우리 아버지는 마우스 훔쳐서 나간다며 집안 망신 시키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다행이 그런 글은 없다.
아직 녀석은 인터넷에 그런 하소연을 주절주절 늘어놓기엔 할 일이 많은 녀석일 테니까.
현대의 첨단과학시대로 접어든 요즘,
자식교육과 컴퓨터의 복잡한 함수관계에서 느끼는 부모의 갈등은 나만의 일은 아닐 게다.
컴퓨터가 인간에게 가져다주는 대표적인 불편이다.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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