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셋 여자 한 분

나뭇가지의 교훈

아하누가 2024. 7. 8. 00:21


강원도 횡성에 집을 짓고 주말마다 찾은 생활을 한지도 어느덧 일년이 지났다. 

횡성에 가서 하는 일이란 계절마다 다르지만, 

가장 많이 하는 일은 겨울에 난로에 지필 땔감을 준비하는 일이다. 

간단한 것 같아도 몇 가지 과정이 있고 또 그것은 일일이 사람의 손으로 해야 하니 

결과물에 비해 작업량과 작업시간이 상당히 필요한 일이다. 

 

산에서 주워온 나무를 쌓아두고 

작은 가지는 작은 가지대로, 

큰 나무는 톱으로 썰어 난로에 들어갈 크기로 맞추고 있었다. 

밖에서 뛰어 놀던 두 아들이 다가와 묻는다. 

 

"아버지, 그거 재미있어요?"

 

질문의 내용으로 보면 상당히 효자같지만 조금만 유심히 생각하면 

마치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다는 비아냥으로 들린다. 

하긴 아이들 눈에 이런 일이 뭐가 재미있으랴. 

그러니 아이들이 이렇게 묻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재미도 있지만 중요한 의미도 있지."

"뭐가 중요한데요?"

 

나무를 잘라 난로에 땔 수 있는 크기로 자르는 단순한 작업이지만, 

아이들이 호기심을 가지고 물었다면 

반드시 이에 따르는 적당한 교훈을 주어야 하는 것이 아버지의 도리다. 

 

"자, 잘봐라. 여기 나뭇가지가 있지?"

"예."

 

그리고 적당한 곳을 잡고 힘을 주어 나뭇가지를 부러뜨렸다. 

 

"아버지가 힘을 주면 이렇게 부러지지?"

"예."

 

그리고 이번엔 비슷한 나뭇가지 세개를 꺼내 들었다. 

 

"자, 이번엔 세개다. 이것은 이렇게 하면...."

 

세개가 한개와 비슷한 모습으로 부러졌다. 

 

"자, 이번엔 다섯개를 해보자. 어떻게 될까?"

"부러져요."

"그럴까? 자, 잘봐라."

 

 

뚝!

 

정말 부러졌다. 

스토리의 진행이 나뭇가지 다섯개에 다달을 정도면 

이놈의 나뭇가지들이 부러질 듯 안 부러져야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뒷 부분 하이라이트의 교훈이 효과적으로 먹힐텐데, 

그렇게 많이 주지도 않은 힘에 다섯개의 나뭇가지가 모두 부러져버렸다. 

의도적으로 안부러지게 할 수도 있었지만 

아이들에게 많은 힘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연출하려다 

이미 예상치 못한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이 상황에서 이번에는 열개를 부러트린다며 2차 시도를 하기엔 

이미 아이들은 지루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분위기를 보나 기승전결의 진행과정으로 보나 어떻게든 결론을 지어야 할 상황이다. 

 

"거봐요. 내 말이 맞죠?"

 

큰 녀석은 둘중의 하나의 답이 있는, 매우 높은 확률의 로또를 하고선 

자신의 예상이 맞았다는 사실에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사실 이럴 땐 난감하다. 

결론을 지어서 무언가 교훈을 남기려는 의도가 

그 과정에서부터 문제를 일으키고 있으니 스스로 생각해도 이 상황이 매우 애처롭다. 

수습이 어렵다는 농담성 표현이 이렇게 적당하게 들어맞는 상황도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이럴 때도 아이들에게 뭔가 교훈을 주어야 한다. 

 

"자 봤지?"

"......?"

 

그리고 나름대로의 교훈으로 해프닝 짙은 이 일련의 교육과정을 마무리했다. 

 

 

"빌빌한 놈들은 여럿이 모여봐야 아무 것도 아니야. 알겠니?"

".......?"

 

 

아이들은 이해못할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 표정엔 그 다음에 또 무언가 주어질 교훈이 아직 남아있을 거라는 

궁금증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그러한 아이들의 호기심 어린 표정을 애써 무시하고 하던 일을 계속했다. 

숲속에 오래 방치되어 바짝 마르거나 썩은 나뭇가지는 여전히 잘 부러지고 있다. 

 

아버지의 자리는 참 힘든 자리다.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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