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셋 여자 한 분

맛있는 치약, 맛없는 치약

아하누가 2024. 7. 8. 00:20


어느덧 큰아들 후연이는 우리 나이로 열살이 되었다. 초등학교 3학년. 

이제 옷도 갈아입을 줄 알고 혼자서 여기저기 잘 돌아다닐만한 나이다. 

어느날 밤, 잠자리에 들기전 양치질하러 간다던 녀석이 화난 얼굴로 돌아왔다. 

 

"이거 레몬맛 이상해요. 토할 것 같아요!"

 

손에 들고 있는 걸 보니 어린이용 치약이다. 보통때 쓰던 딸기맛이 아니었고 새로 산 연두색 레몬 맛이다. 

 

"이런 맛도 있고 저런 맛도 있으니 이번엔 레몬맛으로 해보렴"

"싫어요. 맛이 이상하단 말이에요."

 

아이들은 원래 자신이 쓰던 것에 대한 애착이 유난히 강하다. 

설령 그것보다 더 낫고 좋은 게 있을지라도 일단 고집을 부리게 마련이다. 

이 늦은 시간에 다시 빨간색 딸기맛 치약을 사다줄 수는 없는 일이고, 

무엇보다 아이가 그리 중요하지 않은 일에 애착을 가지고 고집을 부려서도 곤란하다. 

 

"그럼, 아버지 치약으로 닦을래?"

"네?"

 

경우의 수를 두가지로 줄였다. 

네 치약으로 하던, 아니면 아버지 치약으로 하던 둘중에 하나를 고르라는 의미다. 

이렇게 되면 녀석의 상상력은 단순하게 줄어 최선보다는 차악을 선택하게 되어있고 

다른 경우의 수는 생각하지 못하게 된다. 그건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그럼 아버지 걸로 닦죠 뭐."

 

녀석은 다시 욕실로 돌어갔다. 

하지만 아버지 치약으로 양치질 하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부터 약 2년전. 어린이용 치약이 떨어져 내 치약을 쓰라고 한 적이 있었다. 

몇번 양치질을 하던 녀석은 무슨 치약이 이리 맵냐며 연신 징얼거렸다. 

너무 매워서 양치질을 못하겠다며, 조금 심하다 싶은 오버액션을 취하곤 했다. 

아이들의 관점과 느낌으로 충분히 그럴만한 일이기도 했다. 

문득 그 생각이 떠오르면서 투덜거리며 다시 방으로 돌아올 녀석의 모습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잠시후 후연이는 입맛을 다시며 방으로 돌아왔다. 

 

"이게 더 맛있어요. 더 시원한 것 같구요."

"그래?"

 

녀석은 계속 이게 더 맛있다며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치약이 맛있어야 얼마나 맛있겠냐만 녀석은 예전에 자신이 맛본 그 매운 맛에 비해 

달라진 새로운 맛을 한번 더 음미하는 모양이었다. 

 

 

 * * *

 

 

후연이도 나이를 먹는다. 

한해 두해 시간이 지나면서 무작정 한살씩 먹는게 아니라 그때그때마다 주변 환경과  적당하게 어울리며 변해간다. 

조금씩 커간다는 사실에 우리가 느껴야할 서글픔은 있을 수 없다. 

사람은 누구나 나이를 먹고 또 적당히 변해가는 것이 정상이다. 

나이가 많은 사람도 또는 나이가 어린 사람도 한살씩 먹어가는 나이에 대해 

작은 슬픔과 서글픔을 느껴서는 안될 것이다. 

한살씩 나이가 들어가고 조금씩 변해가는 후연이를 보며 

나이가 들었다는 감상보다 아이가 세월의 섭리에 자연스럽게 순응하고 있음이 다행스럽다. 

 

잠시후 둘째 아들 의연이가 칫솔을 든 채 울먹이며 나타났다. 

형따라 양치질하다 치약이 매웠는지 계속 울먹이며 누가 달래주길 바라는 표정으로 문앞에 서있다. 

둘째 녀석도 세월의 섭리에 잘 순응하는 중이다.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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