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셋 여자 한 분

좋아하는 연예인

아하누가 2024. 7. 8. 00:24


강원도 횡성 집 마당에 잔디를 심었다. 

심은 잔디는 정성이라곤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방치 속에서도 꿋꿋이 잘 자라 

어느 새 짧게 깎아야 할 때가 되었다. 

일일이 노동력을 들여가며 낫으로 한자락씩 자르기엔 내 성의가 너무 부족하여 

그나마 대량으로 벌초가 가능한 기구를 도입했다. 이른바 잔디깎는 기계다. 

동력이 없으니 기계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고, 

단지 바퀴가 달려 있어 밀고 다니면 잔디가 깎이는 도구다. 

이러한 도구를 밀고 다니는 것은 

영화속에서나 볼 수 있는 호사를 누리는 것이어서 내심 기분이 좋아질 듯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잔디를 깎는 도구는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어서 

영화속의 근사한 장면과는 전혀 가깝지 않았고 

이 또한 낫으로 일일이 잔디를 깎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더욱이 익숙하지 않은 기구의 서툰 동작은 몇 배의 힘을 필요로 했으니 

잔디깎는 일이 호사를 누리는 게 아니라 단순 '노가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셈이었다. 

 

잠시 떨어지는 땀을 닦으려 동작을 멈추고 가뿐 숨을 몰라쉬고 있으려니 

옆에서 따라다니며 구경하던 큰 아들 후연이가 보였다. 

 

"아버지, 많이 힘들어요?"

 

당연히 힘들지. 보기에도 힘들텐데 하는 사람은 얼마나 힘들겠나. 

그러자 후연이가 나름대로 좋은 방법을 알려주려는 듯 크지도 않은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아버지, 평소에 좋아하는 연예인 있어요?"

"연예인? 왜?"

"아, 글쎄요. 누군지 말해봐요."

 

다소 생뚱맞은 상황으로 인해 질문의 본질은 잊은 채 물끄러미 녀석을 쳐다봤다. 

그러자 녀석은 뭔가를 눈치챈 듯한 표정으로 바뀌더니 

자신의 귀를 내 얼굴 가까이로 가져다대면서 작은 소리로 되물었다. 

 

"엄마 안 듣게 얼른 말해요."

".......?"

 

초등학교 4학년 후연이는 이제 

엄마가 몰라야 하는 아버지의 사생활까지 배려는 장한 아들로 성장했다. 

더욱이 연예인 한사람으로 인해 야기되는 

가정적 불화까지 고려한 사려깊은 행동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가 좋아하는 연예인 정도는 

평소 TV시청할 때 눈치챘어여 했다. 

그러니 아직 녀석이 어리다는 사실은 틀림없는 사실이기도 하다. 

 

좋아하는 연예인이라면 누굴 말해야 하나. 

요즘 좋아하는 연예인은 왕년의 스타 임예진인데 

분명히 이 이름을 말하면 '엄마가 안 듣게 말하라는' 녀석의 의도와 어긋날 것이다. 

그렇다면 녀석과 내가 공감할만한 여자 연예인이 누가 있을까.

후연이는 평소의 자신 모습은 물론 아이 답지 않은 대범한 자세로 

내 입에서 대답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윤은혜!"

 

그나마 적절한 대상을 찾았다고 흐뭇해했다. 

혹시나 녀석이 '아버지는 힘이 센 여자를 좋아하는구나...' 라고 말할까봐 

잠시 긴장하기도 했지만 

후연이는 이미 계획된 자신의 프로그램대로 진도를 나가기 시작했다. 

 

"그럼요. 윤은혜가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힘이 막 날거예요. 

그럼 힘내서 마저 잔디 깎으면 돼요."

"......!"

 

당연히 아동스러운 마무리였지만 잔디깎는데 별로 큰 도움은 되지 않을 듯했다.

 

 

 * * *

 

 

요즘은 아이들과 함께 TV를 보는 일이 잦다. 

사내 아이들이니 스포츠 중계도 같이 보고 

내셔날 지오그라픽 같은 다큐멘터리 방송도 즐겨본다. 

아이들에게 TV 시청의 제한을 두는 것보다는 

아이들과 함께 TV를 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그래야 공감대가 형성되고 

또 TV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현실과의 차이를 자연스럽게 설명해줄 수 있다. 

아이들의 TV은 무조건 제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함께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그래도 TV의 오락프로그램도 중요한 프로그램이다. 

같은 내용을 보고 함께 웃을 때 세대와 입장의 차이가 줄어들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러다보니 함께 알고 있는 연예인들도 점점 중복되기 시작한다. 

지금은 많이 중복되지만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 쳐다보는 TV속의 인물도 달라질 것이다. 이른바 부모와 자식의 세대차이다. 

그 차이가 크지도 않게 그렇다고 필요 이상으로 너무 가깝지도 않게 

적절한 간격을 유지하는 것이 부모의 의무다. 

뿐만 아니라 부모 자식간에도 세대를 아우르는, 매개가 될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게 무엇인지 찾아내는 것 또한 부모의 몫이다. 

 

 

아이들은 항상 부모의 예상보다 빠르게 자란다.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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