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맛있는 거야, 먹어봐, 맛있어"
아내는 며칠전에 사둔, 그러나 맛이 없어 식구 모두에게 찬밥 대접받고 있는
오징어를 냉장고에서 꺼냈다.
그리고 어려서 말을 못해 반대의사를 표현할 수 없는 둘째 의연이에게
계속 오징어를 주고 있다.
그 오징어라면 넓적한 한 마리의 오징어가 아니라 요리하게 좋게 채로 썰어둔 오징어로
주로 술안주로 쓰이기도 하고 매콤하게 버무려 반찬으로 자주 등장하는 그 오징어였다.
그 오징어는 지난 달 집앞 엄마손마트에서 산 것인데,
나는 맛없어 보인다며 거부한 것을 혼자 고집을 부리며 산 것이었다.
그러나 집안 식구들이 모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며 냉장고에 머무르자
참다못한 아내가 그것을 꺼내 들고 상대적으로 만만해보이는 둘째 의연이에게
오징어를 먹이고 있는중이었다.
김치나 된장찌개를 먹이는 교육은 들어봤어도
오징어를 먹이는 교육은 처음 보는 장면이어서 매우 흥미로웠다.
아내는 온갖 맛있는 표정을 지어가며
의연이에게 오징어의 맛있음을 확인시켜주려 했지만
어쩐 일인지 의연이는 계속 고개를 저으며 어마가 내미는 오징어를 거부했다.
아내는 큰 아들 후연이가 지금 의연이 나이일 때 오징어 다리 하나를 입에 물고
하루종일 질겅질겅 씹고 다니던 장면을 기억했는지
일단 입에만 넣어주면 그 맛이 금방 익숙해질 것이라는 예상을 한 것 같았다.
하지만 의연이는 그러한 엄마의 전술을 이미 간파했는지
입 앞에 가져다 대는 오징어를 계속 피했다.
그럴 때마다 아내는 '이거봐, 정말 맛있어'라고 닭살 돋는 귀여운 표정을 지으며
몇 개를 연달아 집어 먹었다.
녀석이 효자라면 한번쯤 속아줄만큼 아내는 반복적인 시도를 했는데도
의연이는 그러한 눈물겨운 엄마의 노력을 끝내 외면하고 있었다.
"얘는 오징어를 안 좋아 하나봐요."
옆에서 딱한 얼굴에 내가 쳐다보고 있음을 느낀 아내는 혼자말처럼,
그러나 내 귀에 크게 들릴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아이들이 강원도 산골출신 엄마의 특이한 교육으로
아직도 햄버거랑 콜라를 잘 먹지 못한다는 사실에는 매우 기분이 좋다.
하지만 오징어는 그것과 다른 모양이다.
김치도 잘 먹고 된장찌개도 잘먹고 두부도 잘먹으니 그 정도면 됐지
그것들에 비해 별로 좋을 것이 없어 보이는 오징어는 안 먹어도 된다.
그래서 나라도 잘했다고 둘째 의연이 머리를 쓰다듬어주려는데
녀석이 오징어가 담긴 비닐 봉투를 잡았다.
그리고 그 녀석은 오징어에 붙은 아주 조그만 개미들을 하나하나 잡아내고 있었다.
아내가 튼튼한데는 다 이유가 있다.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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