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오늘은 메뚜기를 잡는다!"
10월 끝자락의 강원도 횡성 별장.
이미 첫서리가 지나간 뒤라 강원도의 들녁은 한기가 흐르는 스산함이 감돌고 있었다.
밤나무 밑에서 밤을 줍는다거나 혹은 고구마 캐기 등
그동안 아내가 아이들의 자연체험 교육의 일환으로 벌어져 오던
일련의 채취 작업이 추운 날씨로 불가능해지자 새로운 카드를 꺼내 들었다.
메뚜기 잡기.
아이들이 자연속에서 뛰놀며 스스로 자연의 섭리를 익히게 하는
고차원적 이념을 담은 숭고한 교육적 의미였다.
아내는빠른 동작으로 옆집 이장님 댁 마당에서 뒹굴고 있던 빈 소주병을 들고 왔다.
"여기 가득 채워온다. 오케이?"
아이 둘을 데리고 빈 소주병을 옆에 든채 아직 추수가 끝나지 않은 논둑길로 향했다.
벼의 색깔이 누렇게 변하자 메뚜기의 색깔도 이와 조화를 이루려는 듯
여름과는 달리 이미 누렇게 변해있었다.
"아버지, 메뚜기가 노래졌어요."
"그게 보호색이라는 거야!"
6살 의연이의 질문에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이미 초등학교 3학년이 된 후연이가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시골에서 메뚜기를 잡는 일은 간단한 것 같지만 아이들에겐 새롭고 신선한 경험이다.
메뚜기 같은 곤충류를 손을 만지지도 못하던 서울 아이들이
강원도에 자주 오가더니 이제는 서슴없이 잡아 채는가 하면
특히 6살 의연이는 이제 신체 발육 및 운동신경이
어느 정도 자신의 의지에 의해 움직이는지
풀숲으로 뛰어다니는 메뚜기를 손으로 척척 잘도 잡았다.
곤충은 다리가 3개씩 두쌍이 있고 날개는 두개씩 두쌍이 있으며
머리와 가슴 그리고 배로 몸통이 구성된다는 기초적인 생물학적 상식은
이제 귀에 못이 박혔는지 차근히 설명하려 해도 들으려 하지 않게 되었다.
주말마다 시골에 오간지 일년만에
아이들은 나름대로 곤충 및 식물의 생태와
계절의 변화에 따른 생과 사를 인식하고 있는 듯했다.
비록 곤충을 통해서지만 생명의 탄생 그리고 삶과 죽음에 대한 개념은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개념을 정립하는데 상당한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강원도에 집을 짓고 주말마다 오간지 일년만에
땅값이 상승한 경제적 가치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교육적 효과가 있었던 셈이다.
보기에는 작아 보이기만 소주병은
손으로 잡은 메뚜기로 채우기엔 상당히 큰 공간을 가지고 있었다.
메뚜기를 잡는 일도 단순한 취미생활이라던가
혹은 아이들에게 체험학습의 효과를 얻기 위한 교육적 차원이라면
그런대로 할만한 일인데,
이렇게 빈 소주병을 가득 채울 만큼 잡아야 하는 수렵의 차원이라면
상당히 고된 노동이다.
메뚜기를 잡는 과정에서 짝짓기를 하고 있는 메뚜기를 잡으며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게 되어 고맙기도 했지만 가끔 미안한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다 메뚜기 팔자다.
힘들게 힘들게 두번의 출정 끝에야 빈 소주병을 대충 채우게 되었다.
"아버지, 이 정도면 다 잡은 거 아니에요?"
이제 메뚜기 잡는 일도 지겨워졌는지 큰 녀석은 지치고 귀찮다는 표정으로
메뚜기로 가득찬 소주병을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 이거 뭐 할거야?"
집에 돌아온 후연이가 잡아온 메뚜기를 쳐다보며 엄마에게 물었다.
아내는 일단 입맛을 다신 후 나름대로 교양이 넘치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먹어야지."
"네?"
후연이는 엄마가 개그콘서트에 나오는 신인개그맨의 과장된 몸짓으로
자신들을 웃기려는 줄 알았다.
그러나 엄마의 흥에 겨운 목소리는
이러한 후연이의 앙증맞은 예상을 무참히 짓밟고 있었다.
"그러니까 일단 날개를 떼어 내는 거야.
그리고 후라이팬에 기름을 넣고 살살 볶는 거야. 그러면 맛있어."
아이들의 표정은 점점 일그러졌다.
메뚜기를 많이 잡으려한다는 의도를 통해
이를 식량으로 활용하려 한다는 의지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것은 단지 아이들의 교육적 과정을 통해 얻은 것을
자신의 독특한 식성을 위해 사용하려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아내의 생각은 나와 달라 메뚜기를 잡는 일련의 과정은 물론
잡은 메뚜기가 요리가 되는 생생한 과정도 교육과정의 연장으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걸 어떻게 먹어요!"
아이들이 볼멘 목소리를 높이자 아내는 한술 더 떠서
어린 시절 메뚜기를 잡아 먹던 자신의 화려하고 폭넓은 경험을 추억삼아
일장 연설을 시작했다. 그러나 아이들의 표정은 별로 밝아지지 않았다.
"참, 메뚜기들이 똥을 한번씩 싸야 해. 그 다음에 날개 떼는 거야...."
점점 더 신이 난 아내의 말이었지만 아이들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져 갔다.
* * *
그날 식탁엔 정말 새까맣게 변한 메뚜기가 한 접시 올라갔다.
신기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아이들의 모습에 고무된 아내는 부지런히 메뚜기를 먹었다.
그나마 모험심 강하고 탐구능력이 뛰어난 작은 아들 의연이만
엄마의 장단에 맞춰 몇마리를 꾸역꾸역 먹었을 뿐이다.
아이들에게 생명의 탄생과 성장 그리고 죽음에 이르는 존엄성을 가르치기 전에
일단 사람이 먹고 사는 식량과의 관계부터 설명해야 할 것이다.
어쩌면 그게 정답일 지 모른다.
아하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