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아파?”
지난 주말부터 아내가 배가 아프다면 구토와 설사를 반복했다.
조금 걱정 되었지만 그래도 다이어트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에
발달된 현대의학의 힘을 빌리는 것을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그래도 심한 정도는 아니었는지 아내는 제 할 일 다 해가며 지내고 있었다.
현대의학보다는 시간이 약이라는 전통방식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더니 그날 아침 병원에 다녀온 아내는 장염이라는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증상이 심하진 않고 며칠 견디면 나을 거라고 했다는 의사의 말을 전하면서
별 거 아닐 거라며 애써 담담해 하고 있었다.
그리고 병원에서 주사 한방 맞았더니 조금 나아졌다고 한다.
이게 그날 오전에 통화한 내용이다.
그리고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장염이라는 것은 일종의 세균에 의한 것인데,
그 세균은 음식물을 통해 전달될 것이니 주말은 물론 평상시 거의 같은 음식을 먹는
나 역시 장염에 걸릴 확률이 상당히 높아진다는, 놀라운 추리였다.
그리고 오후가 되면서부터 정말 나도 배가 살살 아프기 시작했다.
몸이 배배 꼬이며 가만히 앉아 있기도 힘들다는 그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점심 때 먹은, 도봉구에 있는 유명한 설렁탕집도 생각났다.
이영돈의 먹거리 X파일 설렁탕 편이 오버랩되기 시작했다.
점심때 먹은 설렁탕의 국물 색깔이 이상했던 기억이 떠오르면서
배는 점점 아파오기 시작했다. 아마도 나 역시 장염이 시작되는 듯했다.
하긴 아내와 같은 음식을 먹고 사는데 나라고 멀쩡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퇴근시간이 되었는데도 퇴근을 못했다.
혹시나 이 상태로 집에 가다가 예고 없이 찾아오는 화장실 신호는
상당히 난감하게 될 거라 생각했다.
특히 오늘은 아내가 큰맘 먹고 타운젠트 매장에서 큰돈 써가며 사준
자켓과 바지로 도회적 코디를 한 상태라
길거리에서 구토를 하거나 설사라도 하면 스타일 구기는 상황이었다.
더욱이 마을버스에 예쁜 아가씨가 차비가 없어 쩔쩔매면 여유있는 목소리와 포스로
차비를 대신 내줘야 하는데 이런 상태로는 옆집 아저씨 스타일된다.
그래서 일단 화장실에 갔다. 쌌다. 많이도 쌌다.
이런 생생한 현장을 보여드릴 수 없는 게 매우 안타깝다.
그리고 났더니 이상하게 아프던 배가 멀쩡해지고 컨디션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글도 쓰는 게 가능하게 되었다.
그렇다.
나는 장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냥 똥마려운 것이었다.
그리고 화장실에서 나와 장염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하던 순간,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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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도대체 마누라는 나 몰래 뭘 먹은 거야?
분명히 뭔가 몰래 맛있는 거 먹었을 것이다.
아하누가
2013년. 아직 추위가 남아 있전 이른 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