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마취

아하누가 2024. 7. 7. 00:22


   

어느 날 아침 양치질을 하는데 이가 시큰거린다. 

입을 잔뜩 벌려 거울에 들여다보니 그전부터 썩어가던 송곳니 윗부분이 

까맣게 변해 있었다. 

아니, 까맣게 변한 것은 그전부터 알고 있었고 

이가 시큰거리니 그 까만 부분이 더 진하고 크게 보인 것일 뿐이다. 

오래 전에 그것 때문에 치과를 찾았지만 환자가 많아 오후에 오라는 간호사의 말을 

아직 치료하지 않아도 된다는 하늘의 뜻으로 확대 해석한 것이 어느덧 오늘에 이르렀다. 

이왕 머리 속에서 치과를 생각해내고 

또 치과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한번 상상했으니 

이러한 아름답지 않은 상상이 두 번 반복되지 않도록 내친김에 치과를 찾았다. 

  

 

"모르셨어요?"

 

 

치과의사는 왼쪽 송곳니 윗부분만 썩은 게 아니라 오른쪽 송곳니의 똑같은 부위도 

마찬가지로 썩었다며 커다란 손거울을 코앞에 들이밀었다. 

쳐다보니 왼쪽보다는 아직 덜 썩었지만 그 자리는 공교롭게도 앞니를 기준으로 

정확히 선대칭을 이루는 똑같은 위치였다. 

마취를 해야 하니 한번에 한쪽밖에 치료할 수밖에 없다며 다른 한쪽은 다음에 오란다. 

일부러 다시 생각하기에 별로 좋은 기분이 아니니 치료과정은 생략하고. 

아무튼 치료는 끝났다. 아직 다른 한쪽이 남아 있지만 그래도 개운하다.

 

 

 * * *

 

 

점심식사를 하는데 문득 왼쪽 입술이 매우 두툼해져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식당아줌마에게 거울을 달래서 들여다보니 아무렇지도 않다. 

그런데 왜 윗입술이 평소보다 두 배의 두께로 느껴졌을까. 

그것은 마취 때문이었다. 

이 치료를 위해 마취했던 부위가 아직 채 풀리지 않아 

몹시 심한 무감각의 현상이 생긴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 다시 식탁으로 시선을 옮기니 점심 식사로 나온 

김치찌개 속의 두부가 보인다.  

 

 

뜨거운 두부 -

 

나는 이놈을 잘 안다. 

보글보글 끓는 찌개 속에 먹음직스럽게 보이는 저 두부를 

멋모르고 입에 넣었다간 입천장과 혓바닥이 뜨거워 얼른 삼키게 된다. 

그러면 비로소 문제가 발생한다. 

아직 식지 않은 두부는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 음식물이 거쳐가는 

일련의 소화기관들을 두루 지나가게 되는데 

그 길목길목마다 진한 뜨거움이 전해지게 된다. 

그때는 비명도 안나오고 마치 심장병 질환이 있는 사람처럼 

손으로 가슴을 움켜쥐게 되며, 그때 옆에서 무슨 일이냐고 묻는 사람에게 

설명을 하려 해도 입에서 말이 떨어지지 않는다. 

바로 이 무서운 두부를 수저에 담고 윗입술에 대보았다. 

마취의 영향으로 하나도 안 뜨겁다. 

이 공포의 두부로부터 뜨거움을 느낄 수 없다는 사실이 묘한 쾌감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갑자기 이 변태적인 행위가 매우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또 식탁을 보니 반쯤 먹다만 생선에 커다란 가시가 튀어나와 있다.

 

 

생선가시 -

 

이놈 또한 무서운 놈이라는 걸 나는 안다. 

지느러미 부분에 있는 잔가시라면 그냥 꿀꺽 삼켜도 아무 일이 없지만 

등줄기에 중심을 이루는 커다란 뼈의 줄기처럼 뛰어나온 가시는 매우 날카롭다. 

이놈을 잘못 먹다가 목구멍에 걸리기라도 하는 날이면 

물을 열컵 정도 마셔야 하고 반찬도 없는 맨밥을 숟가락에 잔뜩 얹어 

서너번씩 꿀꺽 삼켜야 한다. 

맨밥을 삼키는 일은 씹은 것도 없는데 배가 부르니 억울하고 곤혹스러운 일이다. 

그나마 가시가 내려가 준다면 다행인데 그렇지 않으면 

하루종일 말할 때마다 켁켁거리는 행위를 반복해야 하며 

또한 하루종일 누군가 목을 찌르고 있는 것 같은 불쾌함에 젖어 있어야 한다. 

 

바로 그 무서운 생선가시 하나를 집어들고 입술에 찔러 보았다. 

날카롭기만 한 생선 가시에도 전혀 통증이 없다. 

조금 더 세게 찔러보았다. 역시 안 아프다. 아랫입술을 찔러보았다. 우와, 무지 아프다. 

다시 윗입술을 찔렀다. 하나도 안 아프다. 

조금 더 힘을 주었다. 입술을 찔렀다. 피가 나온다. 

 

 

피 -

 

나는 이 놈 또한 어떤 놈인지 잘 안다. 

통증의 정도를 가장 확실하게 규정해주는 기준이 되는 이 놈은 

어린 시절 동네 아이들과 싸움이 벌어질 때 아주 중요한 심판관의 역할을 했다. 

싸움에선 피를 먼저 흘린 사람이 지는 것이고, 

아픔이란 것도 피를 동반하느냐 안 하느냐, 그리고 피를 얼마나 많이 흘렸느냐로 

그 정도를 결정하곤 했던 무서움과 공포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그런 무서운 피가 입술에서 나오고 있는데도 아프지 않다. 

아, 이 얼마나 놀라운 마취의 힘인가? 

연신 탄성을 질렀다. 

의술이, 그리고 마취의 힘이 보여줄 수 있는 기적 같은 신비에 계속 감탄하고 있었다. 

그런 감탄의 순간에서도 옆 사무실의 스무살 아가씨가 뽀뽀라도 해주겠다면 

무척 손해일 것 같은 생각도 하고 있었다. 

  

 * * *

  

그러나 불행히도 마취는 영원하지 않았다. 

영원할 것 같은 마취의 힘은 오후가 되자 곧 풀려버렸고 

화상 증세와 찰과상 증세가 한번에 나타나 복합적으로 괴로운 오후가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옆 사무실 아가씨가 뽀뽀 해주겠다며 찾아오는 일도 없었다. 

아, 이 간사한 마취의 힘이여....

 

 

세상에 영원한 마취는 없다. 

잠시 잊게 해주었을 뿐이지 영원히 잊혀지게 할 수는 없다.

그게 세상의 이치요 순리다. 

고통으로부터 잊게 해주는 것은 마취가 아니다. 

 

어쩌면 내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은 고통을 잊어버리게 해주는 마취가 아니라 

고통을 참을 수 있게 해주는 정신력일 게다.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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