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사무실에 찾아온 친구

아하누가 2024. 7. 7. 00:24



퇴근 무렵 친구가 사무실에 찾아왔다. 

언제나 유쾌한 그 친구의 얘기를 들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항상 신이 난 표정과 말투로 재미있게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친구는 

평소와 다름없이 이런 저런 얘기를 내게 전해주고 있었다. 

이야기 중 한 대목에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먹고...'라는 부분이 나왔을 때 

얼른 내가 물었다. 

 

"어느 회사에서 만든 자판기였어?"

 

친구는 잠시 알 듯 모를 미소를 지었다. 

평소 그를 잘 아는 나였으니 그 잠깐의 변화를 읽을 수 있었지 

아마 다른 사람 같으면 전혀 눈치채지 못할 짧은 순간의 변화였다. 

친구는 얼른 원래의 표정과 말투로 바뀌어 내 물음에 답했다. 

 

"난 삼정전자 자판기에서만 커피 마시는 거 몰라?"

 

커피자판기의 제조회사가 커피 맛의 차이를 내는 영향은 매우 적을 것이다. 

아니, 그것을 가지고 커피 맛에 영향을 미친다고 할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녀석이 그렇게 대답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가끔 그 친구와는 인생의 도움이 전혀 되지 않는 쓸데없는 사안을 가지고 

오랫동안 입씨름을 하곤 했다. 

세계 최초로 도리짓고땡과 섯다와 포카를 섞어 인류 최대의 도박 게임을 함께 만들었던 

바로 그 녀석이고, 젊은 시절 내가 레코드숍에서 아르바이트 할 때 

손님처럼 들어와서 김용모 5집 나왔냐고 내게 묻던 그 녀석이다. 

(김용모는 또 다른 친구 이름이다.)

 

 

어느 날 녀석과 나는 과장과 허풍과 비약으로 범벅된 무협 군대이야기로 

오랜 시간을 소비한 적이 있었다. 

오랜 시간이 필요했던 이유는 사격에 대한 화제에서 내가 사격을 잘하고 못 하는 데에는 

총알이 좋고 나쁜 여부가 매우 중요하다는 신논리를 주장하고 나섰기 때문이었다. 

녀석은 당장 반대논리로 맞섰다. 

사격이 왜 총알이 좋아야 되는가, 사격을 잘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과녁이라는 것이 녀석의 논리였다. 

그날은 치열하게 대립했다. 

녀석과 나는 논리가 논리로 먹혀들지 않고 

주장에 대한 신빙성 있는 자료라곤 하나도 없는 궤변의 대립을 가끔 즐겼다. 

그것이 서로의 상상력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었는지 

조금 더 생생하고 그럴듯하게 보이는 궤변의 만찬을 찾으려고 노력했었다. 

 

그런 사실을 기억하고 있을 녀석이 얘기 중에 내가 불쑥 던진 

커피자동판매기의 제조회사가 카피맛에 영향이 미칠 것이라는 의도가 섞인 질문을 

그냥 넘길 리는 없었다. 

잠시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지만 녀석은 순발력의 귀재답게 바로 대응한 것이다. 

 

"에이, 그래도 자판기는 엘지전자께 맛있어."

 

녀석의 대답에 내가 또 대답하자 녀석은 자세를 바르게 고쳐 앉았다. 

이제 원래 하려던 얘기는 아무 의미가 없어졌고 

삼성전자에서 만든 자판기의 커피가 더 맛있는지, 

엘지전자에서 만든 자판기의 커피 맛이 좋은지에 대한 주제만 존재하게 되었을 뿐이다. 

이런 논쟁은 좋은 점이 있다. 

어차피 근거도 없고 증빙자료도 없으니 어떤 사례를 제시해도 

그 사례의 진위 여부가 중요한 내용이 되진 않는다. 

차라리 누가 더 허풍을 떨되 그 허풍에 리얼리티가 있는 지가(있을 듯한 지가) 

더 중요한 일이었다.

 

녀석은 매우 흥분하여 주장했다. 

녀석이 주장하는 이른바 삼성전자 자판기 우월론의 주요 내용은 

삼성그룹 직원들이 주로 커피를 잘 마신다, 

자신의 주변에 삼성전자 다니는 사람이 있는데 커피를 좋아한다, 

엘지 아이비엠 컴퓨터 본체에 커피를 부으면 금방 망가진다 등이었다. 

반면 엘지전자 자판기 우월론을 주장하던 내 주장의 주요 내용은 

엘지전자도 영어고 커피도 영어다, 

삼성전자 자판기는 보온능력이 약해 전 제품의 78.5%가 건물 내부에 설치되어 있다, 

엘지전자 자판기는 따듯함이 잘 식지 않는다 등이었다. 

이 치열한 논쟁은 꽤 오랫동안 계속되었고 

그러는 동안 두 제품의 우월 여부의 확인보다 더 중요한 귀가 시간이 다가왔고 

담배도 떨어졌기에 하던 얘기는 다음에 계속하기로 하고 서둘러 사무실에서 나왔다. 

 

녀석과 나는 가끔 그런 짓을 많이 해서 그런 쓸모 없을 듯한 이야기가 

두 사람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데 훌륭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잘 안다. 

스무살 시절에도 다방에 앉아 지도를 펴고 놀러갈 계획을 짰었다. 

적게는 30분에서 길게는 3시간이 넘는 치밀하고도 정교한 계획이었다. 

그리고 그 계획이 끝날 무렵에는 언제나 같은 인사를 했다. 

 

"다음에는 울릉도에 가보자구!"

 

아직 녀석과 한번도 놀러간 적은 없다.

 

 

 

대화를 할 때는 이왕이면 주제에 충실하는 게 좋다. 

그것이 결론을 얻기 위한 것이라면 그러한 대로, 

시간을 보내기 위한 것이라면 또 그런대로, 

그리고 앙증맞은 발상의 경쟁이 중요한 것이라면 또 그런대로 그 점에 충실하여 

대화를 하면 된다. 

이렇게 쉽고도 간단한 일 같지만 가끔 대화를 하다보면 주제파악을 못하고 

엉뚱한 소리를 하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엉뚱한 대화가 주제일 때 누군가 정상적인 대화를 하는 것도 참 엉뚱한 일이니까. 

그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혹시 내가 어디 가서 분위기 파악도 못하고 

엉뚱한 소리하게 될까 늘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분위기 파악을 못하고 엉뚱한 소리를 하는 사람은 주로 센스가 없거나 

순발력이 남보다 한발 떨어지는 경우다. 

사람마다 살아가는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각자 다를 테지만 

나는 순발력이 떨어지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그것이 언어적인 순발력이든 행동적인 순발력이든 

무언가 답답하고 매끄럽지 못한 일들이 싫다. 

사람들은 저마다 사고가 다르니 남의 그러한 모습을 가리켜 좋고 싫다 할 수는 없고 

다만 내가 그렇지 못하면, 아니 그런 감각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매우 씁쓸할 것 같아 그렇지 않기 위해서 책도 읽고 신문도 보고 

많은 정보도 알려 하고 월요일마다 쩔뚝거리면서도 일요일에 축구도 하며 바둥거린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것이 어떤 절실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고 

다만 내가 즐겁자고 하는 것들이라 강박관념에 의한 스트레스는 없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순발력 좋은 그 친구는 항상 내게 좋은 이야기 상대가 되어준다. 

어쩌면 그래서 좋은 친구가 되었는지도 모르지만.

 

 

* * *

 

 

사무실에서 나오자마자 친구는 편의점으로 향한다. 담배를 사려는 모양이다. 

 

"야, 여기도 담배가게 있어!"

 

가까운 곳에 있던 식품점을 그냥 지나치는 친구를 보고 내가 말하자 

친구는 나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아까의 그 모습처럼 아주 짧은 시간동안 음흉한 미소를 짓더니 

내게 큰 소리로 말했다.

 

 

"담배는 편의점에서 산 담배가 더 맛있는 거 몰라?"

 

 

 

귀가시간은 매우 늦어졌다.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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