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96

나이를 먹었다는 증거

요즘 유난히 즐겨 먹는 음식이 있는데 바로 곶감이다.       달짝지근하면서도 알듯모를 끈적거림에 기분 마저 좋아져 자꾸만 손이 가게 된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남에게 하자니 한가지 부담되는 게 있다.       그건 바로 '곶감'이라는 음식이 가지는 보수성과 진부함이다.       할아버지 할머니께서나 좋아할 만한 음식이라는 선입견이 걱정이고       또 그것이 선입견이라고 남에게 주장한다면 듣는 사람들에게는       이미 낡은 이미지로 보일 것 같다는 생각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의 개성과 취향을 자신있게 얘기하는 데       아무 문제도 없을 것이라고 다짐을 해보지만       정작 그 말을 꺼내려하면 처음의 고민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더라는 것이다.       그..

100억원 짜리 복권

신문에서 TV에서 55억 원 짜리 복권에 맞았다는 사람 얘기가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화제였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 요즘은 100억원짜리 복권이 화제다. 이달말이 추첨이고 곧 마감이라나? 그래서 언젠가 복권 판매대를 지날 때 그 생각이 떠올라주면 한두장 사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          *          *  저녁에 퇴근하고 지하철을 타려고 계단을 내려가 모퉁이를 도는 순간 복권 판매대가 나타났고 그 순간에 100억원짜리 복권이 생각났다. 100억원. 이런 돈이 생기면 난 무엇을 할까. 우선 각종 세금과 공과금, 각 시민단체나 자선단체 등 준조세 성격을 띤 기부금을 감안하면 약 60억원 가량이 손에 쥐어질 것이다. 그래도 혹시 모를 지출을 가정해도 적어도 5..

늦은 귀가 길

간밤엔 늦은 시간에 집에 들어왔다. 마지막 버스에 겨우 몸을 싣고 동네 어귀의 지하철역에 도착하니 이미 마을버스는 운행을 중지된 시간. 아직도 집에 가는 길은 남아 있다. 멀지만 그리 멀리 않은, 가깝지만 그리 가깝지 않은 집까지 걸어가자니 이것도 무척 괴로운 일이지만 이를 어쩌랴. 다른 방법이 없는 걸. 굳은 맘 먹고 심호흡을 깊게 한번 하고 걷기 시작했다.  재미로 또는 운동 삼아 걸었다면 상쾌할 수도 있던 밤공기가 차갑게 양볼을 스치운다. 얼른 고개를 숙여 되도록 바람을 피하며 종종 걸음으로 집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가려고 큰길이 아닌 작은 샛길로 들어서는데 봉고차 한 대가 옆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운전석 창문이 열리더리 운전자가 고개를 삐죽 내밀고 큰소리로 내게 묻는다...

양말과 슬리퍼

TV에 나오는 연예인들에게 한가지 바라는 것이 있다. 패션을 리드하는 연예인의 특수한 입장에서 앞으로 두 개가 서로 다른 양말을 신고 TV에 나왔으면 좋겠다. 그것이 실수로, 또는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냥 멋으로, 개성으로, 당당하게 나왔으면 좋겠다. 이 생각은 내가 10여 년 전부터 하던 생각으로 양말을 짝짝이로 신고 다니는 게 흉이 안된다면 얼마나 양말 관리가 쉬울 것이며 또한 이는 경제적으로 얼마나 이익이겠냐는 점이다.  내가 신문기자였다면 인구수 X 일년간 양말 수 등을 계산하여 이 방식이 유행하면 연간 얼마의 돈이 절약된다는 기사를 썼을텐데 기자가 아니니 그런 기사를 쓸 필요는 없다. 하지만 대략 계산해도 전국적으로 어마어마한 돈이 절약될 것이다. 그러나 그 경제적인 잇점 ..

저녁에 '일요일 일요일밤에'을 보고 집 앞에 있는 마트에 다녀왔다. 아이들 우유며 세탁할 때 쓰는 피죤이며 나 먹고 싶은 거 대충 고르고 있는데 갑자기 귤 3,000원 어치 사오라던 아내의 말이 생각이 났다. 서둘러 귤이 잔뜩 널려있는 청과물 코너에 가니 귤이 100g에 155원이라던가? 도무지 내 머리로는 3,000원어치를 맞출 자신이 없었지만 비닐 봉투에 하나하나 담아야 하는 방식이어서 하는 수 없이 귤을 하나하나 담고 있었다. 이미 누군가에 의해 잔뜩 쌓아둔 상품도 있었지만 껍질이 얇은 걸로 하나하나 골라 담아 오라는 아내의 말이 떠올랐다. 대한민국에서 '남편'이라는 자격을 가진 사람 중에 마누라가 껍질 얇은 귤을 3천원 어치 사오라는데 두다리 뻗고 '니가 갔다와!'라고 할 사람은 불행히도 많지 않..

그 여자는 나쁘다!

다른 사람과 다른 나만의 생활 습관 하나. 일요일이 평일보다 더 일찍 일어난다. 왜? 아침에 축구해야 하니까. 그럼 평일은? 조금 출근하고 그냥 욕먹지 뭐. 평일은 보통 10시쯤 일어나는데 일요일 아침은 8시에 일어나니 대단한 정신력인 셈이다. 그리고 토요일 밤엔 다른 계획없이 일찍 잔다. 요즘은 나이도 많아진데다 팀의 주전 경쟁도 치열해서 비실거리는 몸으로 나갔다간 축구팀에 민폐만 끼치고 동료들에게 욕만 바가지로 먹는다. 그래서 토요일은 유독 자중하고 자제해야 한다. 그런데 오늘은 사고가 생겼다. 내일 축구하는데 문제가 생긴 것이다. 바로 문제의 그 여자 때문이다.                *          *          *  토요일 밤에 SBS-TV에서 하는 한 오락프로그램에 요가라는 묘한 ..

지하철의 계단

매일 전철을 타고 집에 들어 가다보니 몇번째 칸의 몇번째 문에서 타야 내가 내리는 전철역의 출구 계단과 바로 만나는지 알고 있다. 지하철이 생기기전부터 이 동네에 살았으니 모르는 게 더 이상한 일이다.  나는 매일 그 자리에서 지하철을 탄다. 그리고 내가 내리는 역에 지하철이 멈추고 문이 열리기 무섭게 100미터 달리기 선수들의 출발처럼 힘차게 지하철 문을 박차고 나와 계단을 뛰어 올라간다. 준비된 선수는 누구보다 빠르다. 누가 시킨 적도 없는 이 일을 나는 매일 반복한다. 하지만 그렇게 빨리 뛰어 올라가는데도 건너편 계단에선 누군가 나보다 먼저 마지막 계단을 오르고 있다. 아무리 빨리 뛰어 올라가도 건너편 계단에선 누군가 그렇게 나보다 한발 먼저 뛰어 올라온다. 그 누군가를 이기기 위해 어느 날부터는 ..

오타

요즘처럼 글을 쓸 때 펜으로 쓰는 경우보다 타이핑으로 하는 경우가 많은 상황이다 보니 원하지 않아도 필연적으로 오타가 생기게 된다. 오타로 인해 있었던 어느 우스꽝스러운 이야기 하나가 생각난다. 어느 사람이 인터넷을 통해 채팅을 하다가 어느 여자에게 '저녁 먹었어요?'라고 묻는다는 것이 그만 오타가 나고 말아 이렇게 모니터에 올라왔다.  "저 년 먹었어요?"   * * *   오타 이야기를 하니 생각나는 일이 또 하나 있는데, 내가 예전에 어느 게시판에 오타없이 글을 쓰자고 한껏 너스레를 떤 다음 맨 마지막 문장에 이렇게 쓴 적이 있다.  "위의 글에 오타가 발견되면 하겠습니다"  그리곤 무수히 많은 메일을 받은 기억이 난다. 대부분의 메일 내용은 이러했다.  "앞으로 어떻게 살래?"   * * *  ..

지하철 예술무대

사무실을 오갈 때 매일 이용하는 지하철역에서는 가끔 지하철 예술무대라는 이름으로 공연을 한다. 유명 가수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다양한 레파토리가 있는 공연도 아니다. 오직 한 팀이 나와서 공연을 하는데 아주 이채롭다.  에콰도르 출신의 5~6인조 밴드인 SISAY라는 그룹인데 자그마한 체구나 그 생긴 모습이 남미의 인디오 그대로이고, 주로 연주하고 노래하는 곡들은 이라는 그들의 타이틀처럼 상당히 이국적이면서 또한 그리 낯설지 않은 분위기다. 나는 그 공연을 무척 좋아한다. 언제 어떤 시간에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자주 오가는 지하철역이기 때문에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한번은 아주 중요한 일 때문에 지하철로 황급히 내려가다 그들의 공연을 보고 약속시간보다 한시간이나 늦게 간 적도 있고, 또 한..

교와 냐뇨비 데스까?

오래전에 전자수첩이란 걸 산적이 있다. 한참 유행일 때였으니 얼마나 신기했는지 아는 사람의 전화번호란 전화번호는 모두 입력해 두기로 했다. 많은 사람의 이름을 입력하려니 시간도 많이 걸리겠지만 그 재미 또한 상대적으로 대단한 것이라 얼른 작업에 들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에 따르는 시간도 만만치 않을 것 같아 그 달콤한 유혹을 꾹 참아 두었다가 국가에서 실시하는 민방위훈련 시간을 이용했으니 그러한 재미를 그 때까지 참을 줄 아는 나의 절제된 인내력에 스스로 대견해 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전자수첩에는 또 하나의 기능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영어와 일어에 대한 회화였다. 하필이면 그 당시에 일본에 잠시 다녀올 일이 있어서 전자수첩에 일어회화까지 있다는 사실을 보며 현대과학의 혜택을 누리게 됨을 비로소 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