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96

택시 드라이버

제목이 제법 운치 있으나 내용은 별로 밝지 않다.로버트 드 니로의 엽기적 명연기와조디포스터의 싱그러운 모습을 볼 수 있었던칸느 영화제 그랑프리 수상작의 동명 영화 내용이 아니다. 요즘은 어찌된 일인지 돈도 없는 놈이 요즘은 택시를 많이 탄다.움직였다 하면 택시다.여기가 물가가 싸다는 동남아도 아닌데도 열심히 탄다.택시 많이 타기 운동이란 것을 들어본 적 없는데 택시를 탄다.그렇게 택시를 타다 보니택시 기사와 이런 저런 얘기할 기회도 많다. 별별 얘기가 다 나온다. 오후에 들었던 어느 택시 기사 이야기가 아주 재미있다.1969년도부터 택시 운전을 했다나?1969년이면 인간이 달에 착륙하던 해고, 월남전이 한창일 때고,남미의 두 나라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가 축구 때문에 전쟁도 치루던 해며,또한 택시 드라이버..

잘못 배워온 세가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잘못 배워온 것들이 자꾸만 눈에 띈다.배울 때는 분명 그렇게 알고 배웠고 그것이 '진리'라고 생각을 했는데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꾸만 그 진리의 허점이 발견된다.그 허점이란 것은 이미 사회에 젖어버린 순수하지 못한시각의 변화도 이유겠지만진리란 '절대진리'말고는 시대에 따라 변할 수 있다는또 하나의 진실을 알게 되는 것 같다. 그동안 잘못 배워오고 잘못 알고 있는 것에는 3가지가 있다.어찌 단지 3개뿐이랴만우선 머릿속에서 심한 거부감이 오는 것만 생각하니 그렇다.  첫째는 '절제'를 최선의 미덕으로 알고 있다는 점이다.즐거워도 절제, 슬퍼도 절제, 괴로워도 절제.언제나 우리는 절제를 미덕으로 알아왔고기분이 한껏 좋아도 기분을 내지 못하고 한없이 슬퍼도그 이상의 슬픔을 용납하지..

보리음료

1997년 9월의 어느 날 동경의 이름 모를 거리를 걷고 있었다.딱히 목적지도 없어 그냥 걸었지만 사실은 돈이 없어서 걸었다.아니 돈이 없었다기 보다술집에 들어가기엔 물가가 비싸서 그냥 걷기만 했다.동남아에 갔을 때는 80m만 이동해도 택시를 타는 것을 당연히 알았는데일본에 오니 택시는커녕 전철 떨어지기 전에숙소로 돌아갈 일이 급하기만 했다.연인과 데이트하는 것도 아닌데 무작정 걷기만 하니그것도 지겨운 일이어서같이 걷던 일행과 거리의 후미진 곳에 자리잡고 일단 주저 앉았다.그리고 보니 자판기 한 대가 덩그러니 서 있는게 보인다.  "뭐라도 마시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는 일행을 뒤로 하고 얼른 자판기로 다가가동전을 꾸역꾸역 집어 넣고 눈에 익은 코카콜라를 세게 눌렀다.  "넌?"  일행은 자판기에 ..

가만히 생각해보니 '시'라는 걸 쓴 적이 중학교 이후에는 없었던 것 같다.시를 읽는 일에 있어서도결혼 전에 잠깐 시집 몇 권을 사서 읽은 적이 마지막 기억이니직접 쓴 일이야 얼마나 오래 되었을까.그것도 국어시간에 강제로 시킨 것이라던가또는 방학 숙제로 남의 것 베껴간 것이 대부분이었으니시라는 건 내게 있어 너무나 먼나라 얘기다. 흔히들 시에 대해 좋은 문구로 미화시키곤 하는데가끔 보는 몇 편의 경우말고는시라는 것에 그리 큰 매력을 가져 보진 못했다.뿐만 아니라 시에 대한 매력을 가지지 못하게 된 데에는별로 봐줄만한 글이 아닌 글을 '시'라는 이름으로 선보이는,일부 맘에 안 드는 몇 사람 때문에 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것까지야 어디까지나 나만의 생각이 뿐이고.숙제로 쓰던 강제로 시켜서 쓰던 시를 쓰려면항상..

어느 길눈 어두운 사람의 이야기

잘 알고 지내는 주변 사람들 사이에만 재미있게 오가는라는 농담이 있다.참새도 아니요 최불암도 아닌 비유명인이굳이 시리즈 유머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것은선천이면서도 또한 후천적으로몹시 둔한 방향 감각의 소유자라는 점 때문이었다.그 얘기가 다른 사람들에겐 얼마나 재미있는지친구들은 모이기만 하면 ‘김은태 시리즈 다른 얘기 나왔냐?’라는 말을당사자인 내가 있음에도 서슴지 않고 한다.도대체 길을 얼마나 못 찾길래 그런 농담이 나왔을까.  나는 길을 잘 못 찾는다.못 찾는 정도가 아니라 길에 관한 한 ‘바보’라고 놀려도딱히 대꾸할 말이 없을 만큼 길과 방향에 대한 감각은 빵점이다.중학교에 입학했을 때도 며칠간 같은 학교 학생을 보고 뒤를 따라가야학교에 갈 수 있었으며,한달에 두어번씩 가기도 하는 분당 누나집을 아내 ..

영화, 동시상영, 그리고 비디오

누구나 한 때는 영화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는 시기가 있다.그것은 나 또한 마찬가지여서 기성세대의 한켠으로 다가서기 전에는영화에 많은 관심을 가진 적이 있었다.물론 유명한 감독이 되어보겠다는 생각이나 또는멋진 영화 주인공이 되어보겠다는,무리하고도 발칙한 발상은 시작도 한 적이 없었고다만 무언가 멋있는 한편의 영화를 보는 것이 유일한 목적이었을 뿐이었다.돌이켜보면 꽤 오랜 일이다.              *          *          *  군에서 제대하고 얼마되지 않은 무렵, 이른 아침부터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영화보러 가자는 얘기였는데 아침에 가야 500원이라도 싸게 본다는 것이그 친구의 설명이었다.그에 대해 나는 ‘백수가 아침 일찍 하루 일과를 시작하면하루가 무척 길다’는 백수 입장의 의견을 ..

어느 추석 밤에 생긴 일

1추석이다.남들은 귀향이다 관광이다 여러모로 바쁜 때지만친척도 거의 없고 가족들도 먼 나라에 살고 있는 입장에서는그리 분주할 것도 없다.더욱이 유일한 방문지가 될 처가집이라고 해야 바로 위층이니이거야말로 아무 데도 갈 곳이 없는 처량한 신세가 아닌가? 사정이 이렇게 되다 보니 매년 명절이면고향가는 길이 20시간도 넘게 걸렸다는 주위 사람의 얘기가인디아나 존스가 탐험을 하는 듯한 동경의 세계로 들려질 정도여서이게 행복한 건지 아니면 몹시도 불행한 건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정말로 20시간이 걸려 고향에 다녀온 사람이 이 얘기를 듣는다면‘네가 죽든 내가 죽든 한번 집 바꿔서 살아보자’며 눈을 부라리겠지만딱히 잘한 것도 없는 내 입장이니 맞짱을 뜰 수는 없고....  올 추석도 그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집에서..

어느 빵집

오래전 집 근처에 빵집이 하나 생겼다. ‘빠리..’로 시작하는 이 빵집은이름만 들어도 모두들 알만한 꽤 유명한 체인점이었다.빵을 유난히 좋아하는 식성 때문에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 늘 그곳에 들러조금이던 많던 자주 빵을 사곤 했었다.이름에 ‘빠리...’가 들어간다는 비애국적 명칭에 대한 양심적 가책을국제화가 필요하다는발전적 사고로 전환시키며 그 집을 늘 애용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IMF가 터져국가적으로 커다란 경제적 위기에 몰리게 되고갑자기 범사회적으로 국산품을 애용하자는 운동이 일어났으며,또한 각 기업들도애국심에 호소하는 상품들을 앞다퉈 내놓는 분위기가 되었다. 그때 그 빵집에도 눈에 띠는 현수막이 하나 걸려 있었다.하얀 천에 여러가지 빵으로 태극기 모양을 만들어 인쇄한 광고로밑에는 선명하게 ‘빠리..

텅빈 운동장

새 천년 첫 설날 연휴의 마지막 날 아침.마침 일요일이어서 늘 하던대로 축구하러 집을 나섰다.간밤에 눈이 너무 많이 온데다명절기간이어서 상식적으로는 축구하러 가지 못함이당연한데도 무리해서 집을 나선데는 이유가 있다.연휴 2일간 하루 평균 20시간을 방바닥에 누워 있었더니방바닥이 몸인지 몸이 방바닥인지 구분이 가지 않게 되어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 이유로 혹시나 운동장을 찾았지만 예상했던대로 텅빈 운동장은아무도 밟지 않은 설경을 뽐내며 나를 맞아주었다.하긴 어느 미친 놈이 저렇게 많은 눈이 오는 것을 알면서축구하러 나왔겠는가.그래도 혹시나 같은 팀 동료들이 올 지 모른다는 희망 섞인 생각으로눈사람을 만들기 시작했다.잘 쌓여진 눈에 제법 습기마저 적당히 있어 눈사람은 잘 만들어졌다.하지만 그런..

야설

얼마 전 친구 한 녀석이 사무실에 찾아왔다.       친한 친구라 주변 눈치볼 것도 없이 성큼성큼 들어와 한자리 차지하고 앉는다.       그리고는 이번에는 녀석답지 않게 슬금슬금 눈치를 보기       시작하더니 이내 한참이나 참고 있었던 듯한 말문을 연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던 녀석의 얘기는 이렇다.              녀석은 성경험과 관련된 진솔한 얘기를 나누는 사이트에 가입했다고 한다.       일단 거기까지 얘기를 들은 나는 조금의 틈도 없이 대꾸했다.             "주소 불러!"                녀석이 불러준 주소로 간 뒤 로그인을 하니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있었다.       비교적 민망스러운 듯한 내용도 서슴없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