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알고 지내는 주변 사람들 사이에만 재미있게 오가는
<김은태 시리즈>라는 농담이 있다.
참새도 아니요 최불암도 아닌 비유명인이
굳이 시리즈 유머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것은
선천이면서도 또한 후천적으로
몹시 둔한 방향 감각의 소유자라는 점 때문이었다.
그 얘기가 다른 사람들에겐 얼마나 재미있는지
친구들은 모이기만 하면 ‘김은태 시리즈 다른 얘기 나왔냐?’라는 말을
당사자인 내가 있음에도 서슴지 않고 한다.
도대체 길을 얼마나 못 찾길래 그런 농담이 나왔을까.
나는 길을 잘 못 찾는다.
못 찾는 정도가 아니라 길에 관한 한 ‘바보’라고 놀려도
딱히 대꾸할 말이 없을 만큼 길과 방향에 대한 감각은 빵점이다.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도 며칠간 같은 학교 학생을 보고 뒤를 따라가야
학교에 갈 수 있었으며,
한달에 두어번씩 가기도 하는 분당 누나집을 아내 없으면 아직도
못 찾아가니 심각해도 이만저만 심각한 상태가 아니다.
뿐만 아니라 군대에 있을 때도 가야할 초소를 찾지 못해
호된 기합을 받은 적도 있으니 실제로 겪는 나는 오죽 답답하랴.
이렇게 길눈이 어두워 생긴 이야기인
소위 <김은태 시리즈>의 일부를 소개한다.
소개된 내용보다 훨씬 황당한 사건이 있지만
가문의 명예와 개인의 체면을 생각하여
그중에서 정도가 심하지 않은 것만 골랐음을 미리 밝힌다.
1.
자동차를 직접 운전해서 가든 대중교통을 이용하든 어딘가를 가야할 때면
매우 힘들게 간다.
차를 길가에 세우고 지나가는 택시기사에게 물어보는 건 다반사고
괜히 주유소에 들러 넣지 않아도 되는 휘발유 넣고 길을 묻기도 한다.
요즘은 핸드폰이 있어 가야할 곳에 전화로 묻기도 하지만
묻는다고 쉽게 찾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올 때는 항상 실수없이 오는데
갔던 길을 외워서 그대로 돌아오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 정도 감각이 있으면
길도 잃지 않는다.
비교적 쉽게 돌아오는 이유는 바로 ‘시청’ 또는 ‘서울역’이란
표지판 때문이다. 서울 외곽에는 고맙게도 그런 표지판이 항상 있기 때문에
그 표지판만 보고 오면 서울역이나 시청이 나오기 마련이고
그러면 거기서부터는 누구보다 자신만만하게 운전을 할줄 안다.
자신만만한 정도가 아니라 카레이서처럼 운전하며 온다.
그러던 어느날 평촌에 사는 선배를 데려다주고 늘 하던식으로 표지판을 보며
집으로 돌아오는데 막상 도착한 곳은 ‘안양시청’이었다.
2.
집에 가기 위해 항상 내리는 전철역에서도
나는 마을버스가 있는 곳으로 나가는 출구를 쉽게 찾지 못한다.
승강장에서 한번 올라오면 그때부터는 안내문이 있으니 금방 알지만
승강장에서 한 단계 위로 올라갈 때 항상 그 방향을 찾지 못해
나가야 하는 출구보다 먼 쪽 출구로 올라가곤 한다.
수학적 확률은 정확히 2분의 1인데도 나의 방향감각은 늘 타조 대가리처럼
대부분 반대로 향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좋은 방법을 찾았다.
그 방법은 내린 전철을 지켜보고 전철이 가는 방향말고
반대 방향 출구를 찾아 올라가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 뒤로 나는 정확하게 나가야 하는 출구로 올라갈 수 있었지만
아쉽게도 그러기까지는 무려 10년이 걸렸다. 이 말은 아직도 아무도 믿지 않는다.
3.
을지로 3가역에 도착해서 지하철 밖으로 나올 때도 항상 헷갈린다.
3호선을 타고 올 때가 있고 때로는 2호선을 타고 같은 역에 도착할 때가 있다.
주로 3호선을 타니 2호선을 타고 올 경우에는 2호선에서 내려 출구로 나가지 않고
3호선 갈아타는 곳을 통해 3호선 승강장까지 가서 그때부터 정신차리고
마음 굳게 먹고 다시 시작해야 내가 원하는 출구로 나갈 수 있다.
지금도 그렇게 나온다.
4.
강남 제일생명 사거리에 사무실이 있을 때 자동차를 운전하며 한남대교를 건너
생각없이 쭉 가다가 어느 건물 옥상에 ‘쉐프라인’이라는 커다란 입간판이 보이면
우회전을 했다.
그러면 그곳이 내가 가야 하는 곳이었다. 그것도 누군가 가르켜준 방법이다.
그러던 어느날 쉐프라인 광고 사인보드는 다른 것으로 바뀌었고
나는 그날 성남에 가야 했다.
5.
사무실로 친구들이 찾아와 가끔 가는 삼계탕집에 가려고 앞장섰다.
어딘가에 갈 때면 주로 남의 뒤만 쫓았지 앞장서본 일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니어서
쉽게 찾을 것 같던 사무실 앞 삼계탕집이 보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사무실로 전화해서 삼계탕집을 가르켜 달라 하니
길에 대한 나의 능력을 익히 알고 있는 사무실 사람들이 내게 말했다.
“그 옆에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테니 바꿔봐. 그게 빨라”
6.
충무로 사무실에서 워커힐호텔 방향으로 갈 일이 생겼다.
사무실 사람들은 나를 걱정한 나머지 가장 쉬운 방법이라며
을지로 3가에서 4가 방면으로 가는 길로 계속 가라고 알려줬다.
마음 변하지 말고 계속 가면 호텔이 나올 거라는 설명이었다.
생각없이 하라는대로 가는데
중간에 어떤 공사가 있어 표지판대로 잠깐 우회해서 가다보니
임진각이었다. 물론 중간에 뭐가 잘못되어 간다는 사실은 충분히 느꼈지만
그래도 가다보면 다시 나올지 몰라 계속 갔다.
내가 가끔 멀리까지 가게 되는건 주로 그 이유 때문이다.
아마 길에 밝은 사람들은 조금만 생각하면 내가 어떻게 거길 가겠되었는지 알 것이다.
하지만 난 아직도 모른다. 그날 나는 의지와는 달리
통일전망대에서 통일을 기원하고 있었다.
현재 남북 관계가 좋아진 것도 그때 내가 절실히 기원했기 때문이다.
7.
신촌, 불광, 일산 방면으로 갈 때 홍제동 집을 거점으로 차의 방향을 잡아 출발한다.
시내 및 분당, 강남 등의 방향으로 갈 때는 충무로 사무실까지 와서
사무실 앞에서 다시 시작한다.
어디 가려고 집을 나서면 아내는 항상 같은 말을 한다.
“또 사무실 가서 다시 시작할거지?”
8.
각자 자신의 자동차가 있는 사람들이 단체로 다른 장소로 이동한 적이 있었다.
서울 동대문구에서 등촌동 KBS 체육관으로 이동하는 길이었고
나는 은색 소나타를 쫓아가고 있었는데 몇시간후 혼자 여의도에서 벚꽃을 구경하고 있었다.
9.
아내가 둘째 아들을 낳고 산후조리원으로 갔다.
다음날 필요한 물품을 챙겨 서교동에 있는 산후 조리원을 향해 홍제동 집에서 출발했는데
잠시후 나는 일산에 있었다. 왜 안 오냐는 성화에 다시 집으로 가서 재출발했는데
이번에는 목동 아파트 단지에 있었다.
그것도 뱅글뱅글 돌다보니 그곳이었지 가고 싶어 간 곳은 아니다.
4시간 만에 도착하니 아내는 자주 겪는 일이어서 그런지 모든 걸 포기한 듯한 얼굴로
혀를 차고 있었다. 우리집에서 서교동은 15분도 안 걸린다.
10.
운전하고 가다 오른쪽이든 왼쪽이던 차들이 길게 늘어져 있으면
일단 뒤에 가서 행렬의 꽁무니에 차를 붙이고 서 있는다.
그리고 꽤 오랜 시간이 걸려 앞에 가서야 이정표를 확인하고
내가 가야할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면 그때 다른 길로 간다.
그래도 거기 줄 서 있는게 다른 곳 헤매다 돌아오는 것보다 빠르다는 경험에서다.
11.
하던 사업이 잘 안 풀려서
주변 사람들에게 택시운전을 하면 어떻겠냐고 물은 적이 있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답을 해주었다.
“너는 마을버스가 체질이야”
* * *
길눈이 어둡다는 것, 그리고 방향감각이 둔하다는 것이
생활에 불편한 일은 없다.
가끔 주변 사람들이 불편한 모양인데 당사자인 나는 늘 그렇게 다녔으니
그것이 불편하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셈이다.
사람마다 각기 잘 외우는 일이 있고 잘 외우지 못하는 일이 있다.
또한 잘 기억하는 일이 있고 잘 기억하지 못하는 일이 있으며
머리가 잘 돌아가는 일이 있고 그렇지 않은 일이 있게 마련이다.
자신의 능력을 정확히 알고
자신의 장점을 어떻게 활용하는가가 더 중요한 일임이 분명하다.
나도 방향감각은 둔하지만 둔한 방향 감각 때문에 생긴 사건들을
자세히 기억하고 있는 걸 보니 아주 나쁜 머리는 아닌가 보다.
아하누가
이런 나를 불쌍히 여겨 세상은 내게 네비게이션이라는 선물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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