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어느 추석 밤에 생긴 일

아하누가 2024. 6. 20. 00:21


1

추석이다.
남들은 귀향이다 관광이다 여러모로 바쁜 때지만
친척도 거의 없고 가족들도 먼 나라에 살고 있는 입장에서는

그리 분주할 것도 없다.
더욱이 유일한 방문지가 될 처가집이라고 해야 바로 위층이니

이거야말로 아무 데도 갈 곳이 없는 처량한 신세가 아닌가?

 

사정이 이렇게 되다 보니 매년 명절이면

고향가는 길이 20시간도 넘게 걸렸다는 주위 사람의 얘기가

인디아나 존스가 탐험을 하는 듯한 동경의 세계로 들려질 정도여서
이게 행복한 건지 아니면 몹시도 불행한 건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정말로 20시간이 걸려 고향에 다녀온 사람이 이 얘기를 듣는다면

‘네가 죽든 내가 죽든 한번 집 바꿔서 살아보자’며 눈을 부라리겠지만

딱히 잘한 것도 없는 내 입장이니 맞짱을 뜰 수는 없고....

 

 

올 추석도 그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집에서 빈둥거리며

TV보고 만화보며 즐기게 되었다.
동네 책 대여점 아줌마가 날 보며 ‘명절에만 오시네요...’라며 하는 인사가
‘이 새끼는 어째 명절에만 만화보나?’ 라고 들리는 걸 보니
정말 명절이란 것은 내게 있어 참으로 귀찮은 일인것 같은

실로 배부른 생각도 들었다.
아무튼 하루종일 집에 있는 것도 못할 짓이다.

 

 

 

2

며칠을 집에서 보낸 어느날

제법 어둠이 짙게 깔릴 때쯤 되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바람도 쐴 겸 아들 후연이 손을 잡고 놀이터에나 가려고 집을 나섰다.
후연이도 답답했는지 놀이터 간다니까

알아 듣지도 못할 짐승 우는 소리를 내며
얼른 신발을 챙겨 신는다.
녀석의 짐승 울음 소리는 가끔은 늑대 소리로,

가끔은 사슴이 우는 소리로 들리기도 해서
그때그때의 기분을 동물 형상에 맞춰 구분하는 방법을 연구하던중이었다.
혹시나 나중에 논문이라도 쓰게 되면 논문의 제목을
<아이의 감정표현과 동물의 울음소리와의 역학적 관계가

2차적 인격 형성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분석적 연구>라고 지어야 겠다는

생각을 그 짧은 틈에서 그리고 있었다.

 

 

 

            *          *          *

 

 

 

놀이터에 가니 분위기가 보통 때와는 다르다.

추석이면 쉽게 볼 수 있는 밤의 모습처럼 온통 화약놀이 일색이다.
어린 아이가 있어 조금 위험스럽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가끔씩 멋진 불꽃이 일어나는 종류의 폭약 때문에

아들 후연이가 좋아하기도 해서 그런대로 재미있게 지켜볼 만 했다.

그 놀이터는 개천가에 자리잡은 놀이터로,

한쪽 구석에 산책로와 자전거길을 만들어 두었는데
대부분의 화약놀이가 그 개천 기슭에서

반대편 축대쪽으로 발사하는 식으로 벌어지고 있었다.

주된 화약의 종류는 요란한 휘파람 소리를 내며 날다가
공중에서 폭파음을 내는 로켓식 폭음탄이 대부분이었다.

 

사람들은 그런 폭탄을 개천 건너편으로 발사하는

놀이를 계속하고 있었는데
잠시후 건너편에도 같은 종류의 폭약을 준비한 무리들이 나타났다.
목표 지점에 불쑥 사람들이 나타나자 잠시 고민하던 이쪽편 사람들은
방향을 조금씩 다른 곳으로 향하기 시작했고
건너편에서도 조금 다른 방향으로 로켓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몇번을 그렇게 평화로운 폭탄 발사가 되는 듯 싶더니

건너편에서 오발탄이 하나 날라와 상대편 진영에서 폭발하고 말았다.
대충 이런 경우엔 한쪽이 무서워서 피하거나 또

는 실수로 그런 것이라 생각하며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는 것이 보통인데

그것은 다른 동네 사람들 얘기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호전적인 우리 동네 사람들은

이를 가만히 놔둘 인내력이나 자제심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어서

바로 반격에 나섰다.

 


이 동네 사람들은 자동차를 주차할 때도
평소에 못보던 차가 자신이 자주 차를 주차하는 곳에 서있으면

가차없이 바퀴에 펑크를 내거나 유리창문을 짱돌로 부숴버리는

테러를 감행한다.
심지어 내차는 핸들이 뽑힌 적도 있어

아직도 크락션 부분에 고무줄을 감고 다닌다.
그래야 그 부분이 고정된다.

 


이렇게 호전적이고 도전정신 강한 이 동네 사람들이

그런 싸움의 기회를 놓칠 리 없었고
당연히 개천 건너편으로 응징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이제는 공중으로 쏘아 올리며

발사의 쾌락을 즐기던 차원은 이미 넘어섰고
바로 목표물을 향해서, 아니 적군을 향해서 직격탄을 날리고 있었다.

개천 건너 있던 무리들도 이에 즉각적인 응전태세로 들어가

화력을 집중하며 상대방을 향해 직격탄을 날리고 있었다.
내가 자리한 쪽에는 놀이터가 있어 많은 사람들이 구경하고 있지만

건너편은 그저 축대 밑이어서 너댓명의 무리가 전부였다.
그러니 내가 있는 편에서 구경하는 사람들이 가진 위험도는 훨씬 높은데
상대방은 아랑곳하지 않고 직격탄을 계속 쏘아댄다.


하지만 이를 구경하는 사람의 반응도 가관이다.
자기 폭탄도 아니면서 조준대로 쓰이는 벽돌 받침대를

이리저리 옮겨주는 사람,
상대방 진영에 폭음탄 하나가 제대로 날아가면 박수치는 사람,
그 틈에 집에 전화해서 마누라보고 구경 나오라는 사람....
급기야 몇사람이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중학생들로 보이는 학생들에게
화력을 지원해 올 것을 주문했고

이에 신난 중학생들은 이게 웬 구경거리냐는 듯
100미터 달리기 선수처럼 빠른 발걸음으로 문방구로 달려가

화력을 지원했다.

 


이제 화력에서 앞선 그팀은 무지막지한 화력을 뿜어대기 시작했고
다연발 바주카포처럼 쏘아대는 화력에 신이 났는지

동네 사람들은 말릴 생각도 하지 않고
계속 환호섞인 환성과 박수로 전방 부대를 응원하고 있었다.
호전적인 성향의 동네 사람들답게

상당히 메조키스트적인 취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나 또한 이런 동네에 살고 있다는 것이 자부심으로 변환되는

변태적 기질이 발휘되어
되도록 우리 편의 승리를 빌며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또한 직접 참여하진 않았더라도 내가 가까이에 있는 팀이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특유의 승부욕이 살아나

심적으로나마 강한 응원의 힘을 불어주고 있었다.

 


결국 화력과 인력에서 앞선 이쪽편 사람들이 일방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화력과 전투력에서 밀린 건너편 진영은 곧 와해되었고

저마다 뿔뿔이 흩어지고 있었다.
흩어지는 모습으로 보아 곧 재정비하거나 또

는 지원군의 협조 요청을 할 것 같은 모습이 아니어서

우리 쪽 사람들도 섭섭한 표정을 지으며 곧 해산하기에 이르렀다.

 

 


며칠간 답답했다가 모처럼 흥미진진한 구경거리를 보았다는 생각에

기분이 조금 좋아졌다.
다만 아들 후연이가 어디서 오줌을 바지에 한바가지 싸고 오는 바람에
하체만 누드인채 동네 방네를 활개치며 집안 망신을 시켰다는 사실말고는
그럭저럭 재미있는 밤이었다.

 

 

 

3

이상하게도 활발한 성격이 아닌 나는 승부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승부를 좋아한다는 것은 남에게 지기 싫어한다는 사실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승부에 지고 기분 나빠하는 정도 보다

조금 더 기분 나빠한다.
그렇다고 다음 기회를 위해 이를 악문다거나 또는
와신상담으로 다음에는 반드시 이기겠다는 노력을 하는 것도 아니면서
그저 단순히 졌다는 사실에 대해서만 기분 나빠하는 것이다.


더욱이 중요하지도 않은 일에서는 더 승부욕이 발휘되어

실속도 이득도 없는 일에
목숨걸 듯 매달려 집요하게 승부욕을 펼친다.
조금전의 폭음탄으로 전쟁을 치룬 사람들처럼 말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참으로 쓸데없고 발전성 없는 승부욕이다.
이런 승부욕은 차라리 없느니만 못할게다.

 

 

            *          *          *

 

 

추석 연휴가 끝난 바로 그날 저녁 한국과 일본의 축구 경기에서
우리나라가 아주 맥빠지게 지고 말았다.

승부를 좋아하고 남에게 지는 것을 싫어하고,
거기에다가 2년전 동경에서 있었던 월드컵 예선에는
직접 비행기타고 날라가 축구보고 온 축구광인 내가 어째 담담하다.
보통 때 같으면 분에 못이겨 김은 한숨 34번과 탄식 54번,
비분강개한 절규 231번을 했어야 정상인데

하품 3번과 담배 3개로 끝냈다.

 


지난번에 더 크게 져서 그런건지

아니면 나이를 조금 더 먹어서 그런건지 알 수가 없다.
승부에 조금 초연해졌다고 생각을 하고 나니 오히려 허전하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승부에 초연해진다는 것이 더 무의미한 것 같다.
승부에 초연해져서 승부욕이 떨어진다는 사실은

참으로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어쩌면 승부욕에 불타있을 때가 더 신이 나는 일만 같다.
맞다.

그럴게 아니라 지금부터라도 승부에 초연하고픈 도사같은 생각일랑
얼른 때려치우고 다시 더러운 성질을 내야겠다.
그것이 오히려 더 활기있고

생동감이 넘치는 삶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아하누가

승부욕도 나이가 젊어야 가능한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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