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96

똥 냄새의 철학

잠을 자기 위한 모든 준비를 마치고 잠자리에 든다. 불은 이미 꺼지고 이불은 포근하게 깔려 있으며, 조용한 주변 상황은 잠을 자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상황이다. 베개를 머리에 잘 맞추어 자세를 잡은 다음 몇 번 몸을 뒤척이며 최고의 숙면을 취할 수 있는 자세는 어떤 것인지 여러 가지 예행연습을 통해 자세를 가다듬었다. 그리고 가장 잘 애용하던 5번 자세,  자세를 잡고 눈을 감았다. 이제 평소 좋아하던 연예인의 뇌쇄적인 포즈만 그리면 행복한 잠의 세계에 빠져들게 되는 순간이다.  그런데 베개 옆에서, 아니 어딘가에서 똥 냄새가 솔솔 풍겨온다. 아니, 행복한 잠에 빠져들기 일보 직전에 이게 무슨 청천벽력 같은 날벼락인가? 이제 두돌이 되어가는 어린 아이가 있으니 어렵지 않게 발생할 수도 있는 일이긴 하..

美化

제목 그대로 어려운 말이다.추한 것을 정상적인 것처럼 표현했다는 뜻도 있고,정상적인 것을 아름다운 것처럼 덮어버렸다는 뜻도 있다.또한 그렇지 않은 것을 그렇게 보여지도록 만드는 의미도 있고 진실이 아닌 것을진실인 것처럼 표현하기도 하며 있지도 않은 것을 있는 것처럼 만들기도 한다.코에, 뺨에, 입술에 무언가를 잔뜩 매달고 꿰뚫는 피어싱이란 단어도 그렇고,동성연애자를 뜻하는 '이반', 성전환수술자를 뜻하는 '트렌스젠더'가 또한 그렇다.무슨 트렌스젠더는 트렌스젠더냐, 그냥 성전환자라고 해도 되지.성전환자라고 하면 비하시킨건가?아무튼 나는 그 '트렌스젠더' 라는 말이 무척 싫다.나중에 우리 아들놈이 트렌스젠더 되겠다고 나설까봐 걱정이다. 그래 좋다. 거기까지는 유별난 신체적인, 그리고 취향적인 특징이라고 치자..

핑클?

사무실에 IBM 호환기종 PC를 한대 들여놨다.인터넷 전용선을 설치하니 계속 쓰고 있던 맥킨토시 기종으로는 병용이 불편해서큰 맘 먹고 장만한 것인데 직원 모두가 IBM 기종에는 깡통이어서조금만 이상 증세를 보여도 컴퓨터를 못 쓰고 있었다.그러던 하루는 내가 알고 있는 사람중에 컴퓨터에 대해 가장 박식하게 알고 있을 거라생각되는 처남을 불러 이것저것 점검을 부탁했다.별 것 아닌 일로 사람을 오라가라 한다는 표정으로 가소로운듯 일을 마친 처남은서비스 정신이 생각났는지 아니면 자신의 해박한 지식을 과시하려는 듯한바탕 기분을 내려는 모양이었다. “매형! 바탕 화면은 뭘로 깔아 드릴까요?” 컴퓨터를 잘 모르는 내게는 나름대로 놀라운 제안이었다. “응? 뭐 있는데? 내가 고를 수도 있나?”“뭐 이것 저것 많아요....

윤차장의 핸드폰

오래전에 들은 우스운 이야기 하나 -어떤 사람이 전화를 받았다. 누군지 모르는 상대방은 매우 위급한 상황이라고 했다. "여보세요? 거기 777-7777이죠? 여기 263-7507인데요.792-0000으로 전화해서 이리로 전화해달라고 해주시겠어요?""그럼 당신이 전화하면 되지 왜 내게 부탁합니까?" 그러자 위급한 상황이라던 상대방이 말했다. "제 손가락이 7에 끼어서 안나오거든요....."  저 이야기는 아주 오래전에 보았던다이얼식 전화기를 생각해야 비로소 웃음이 나오는 이야기다.또한 다이얼 방식의 전화기 아니면 생길 수도 없는 일이다.지금은 다이얼 방식의 전화기를 못 본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예전엔 하나하나 돌리던 느긋함이 있었는데....                *           *        ..

목욕탕의 철학

밤을 새워 일했더니 피곤하기도 했지만 일단 씻어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날이 밝아오고 하루가 또 시작되니 잠에 대한 욕구는 조금 사라졌지만개운한 맛이 없어서 도무지 안되겠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물론 세수를 했는지 안했는지, 목욕을 언제 했는지 남이 보기엔 도저히 알 수 없는뛰어난 신체적 장점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 위안으로 다가왔지만그래도 일단 씻어야 했다.  점심먹기전에 사무실 근처에 있는 사우나에 갔다. 평일 오전이어서 사람이 별로 없다.간밤의 긴박한 상황과는 달리 매우 여유있는 분위기에서본격적으로 목욕을 시작하려고 주변을 둘러보니뜨거운 물이 잔뜩 담겨있는 곳이 보인다. 그렇다.우리는 항상 저 곳을 실제적인 목욕탕이라고 부르며 살아왔다.무조건 저곳에 가서 때 불리고 이태리 타올로 박박 밀어야제대로..

나는 이 사람들의 열렬한 팬이다!

문화적인 분야에 관심이 매우 많은 편이다.그러다보니 스포츠도 좋아하고 음악 듣는 것도 좋아하고 아무튼 다양하게 좋아한다.어쩌면 내가 술을 안 먹는다는 사실이 그런 것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을 지도 모르겠다.오늘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한가롭게 더듬어 본다.언젠가 한번 정리하고 싶은 생각들이니 이 늦은 밤은 그런 감상에 젖기에제법 적당할 것 같은 느낌이다.   1. 프로기사 유창혁바둑에 대해 조금만 아는 사람이면 저 이름을 알 것이다.조훈현, 이창호와 트로이카를 이루는, 화려한 공격을 자랑하는 바둑의 프로기사다.그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내 고등학교 후배이기도 하지만 (같은 학교를 나왔을 뿐서로 얼굴도 알지못하는 졸업생명부상의 후배다) 그의 화려한 碁風이 좋아서다.특히 바둑이 유리한 상황이라도 뒤로 물러서지..

축구장 가는 길

10년전쯤 되었을까?날마다 새로운 기록을 갱신하던 무더위가 극심한 기승을 부리던여름의 토요일 오후였다.동대문 운동장에서 열리는 프로축구 경기를 보려고 집을 나서다문득 포항에서 열릴 경기가 더 재미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그리고는 신이 들렸는지 아니면 정신이 나갔는지 택시를 잡고 김포공항을 외쳤고이어 김포공항에 도착해서 포항가는 비행기표를 샀다.비행기 트랩을 올라가 탑승하려는데 문앞에서 다소곳이 인사를 하던미모의 스튜어디스가 유독 나에게만 항공권을 보여 달란다.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얼른 항공권을 보여주고 자리에 앉았다.당시 나의 복장 상태 - 윗옷 : 올란도매직이라고 영어로 쓰여진 소매없는 런닝셔츠아래옷 : 반바지신발 : 집에서 신는 슬리퍼  복장이 그러니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그렇게 급작스레..

명언 한줄

요즘 날마다 밤을 새워가며 일하는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해서다.쓰고 보니 말도 안되는 글을 썼다. 당연히 돈벌려고 일을 하겠지. 일중에 껄끄럽고 까다로운 일이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내년 다이어리 제작으로,이 때문에 많은 밤을 일과 씨름하며 보냈다.이제 두달 10일의 긴 장정이 끝나가고 있고아마 오늘밤이 그 일로 밤늦은 시간에 일하는 마지막 시간이 될 듯 싶다.내년 다이어리 제작으로 남들보다 훨씬 빨리 내년은 내게 다가왔고,억울하게 나는 남들보다 한 살을 먼저 먹은 셈이다. 그 다이어리 기획중에 각 페이지 하단에 들어가는 '명언' 부분이 있다.그렇게 기획되어진 다른 다이어리를 보면서그 부분이 항상 유치하다는 생각을 했었고,그런 것 생략하면 생략할수록 일하는 내게는 편하게 마련이니 강력히 반발했지만돈주는 사..

집에 일찍 들어가게 된 이유

간밤엔 집에 일찍 들어갔다.집에 일찍 가게 된 데에는 커다란 이유가 있다. 아니, 집에 일찍 들어갈 수밖에 없는,피할 수 없는 운명같은 이유가 있었다.  * * *  사무실에 배달되는 신문을 항상 가방 속에 넣어 두었다가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보곤 한다.사람이 많지 않은 지하철 안에서 문이 자주 열리지 않는 어느 한쪽 문에 기대어신문을 펼쳐보는 것이 퇴근시간에 가지는 중요한 즐거움이다.어제도 지하철 한쪽 구석에 자리잡고 가방 안에서 주섬주섬 신문을 꺼내어보기 좋게 추린 후 힘껏 펼쳐들었다.그러자 신문 사이에 끼워져 있던 광고물(배달되는 신문에는 꼭 그런게 있다)두 장이 신문 사이에서 스르륵 떨어진다.서있는 사람이 몇 사람 없는 넓은 지하철 안에서 벌어진 일이라앉아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떨어진..

오케스트라

요즘은 사는게 바쁘다는 핑계로 못가지만 몇 년전에는클래식 음악회에 자주 갔다.연말에 대충 짐작해보니 30번 정도?한달에 두 번 이상을 갔으니 어지간한 연주자보다 더 많이 다닌 셈이다.친구가 모 심포니오케스트라의 직원으로 있어어렵잖게 표를 구했고(그것도 평생 앉아볼까 말까한 특급 좌석이다)거기에 재미들어 매번 빠짐없이 가곤 했다.다만 협연자가 유명세를 날리는 소위 명 연주자는 아니었고대부분 중학생이나 초등학교 고학년생으로,아마도 경력에 관련되어 있거나 혹은 부모들이 경제력을 앞세워 만들어준연주회인 것 같았다.하지만 음악을 듣는데 그것이 무슨 문제랴.그저 음악이 있어 좋고 예술의 전당이라는 좋은 분위기가기분을 좋게 하는데 말이다.  그 음악회를 매번 참여하면서 한가지 좋은 방법을 터득했다.바로 눈높이를 맞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