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엔 집에 일찍 들어갔다.
집에 일찍 가게 된 데에는 커다란 이유가 있다. 아니, 집에 일찍 들어갈 수밖에 없는,
피할 수 없는 운명같은 이유가 있었다.
* * *
사무실에 배달되는 신문을 항상 가방 속에 넣어 두었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보곤 한다.
사람이 많지 않은 지하철 안에서 문이 자주 열리지 않는 어느 한쪽 문에 기대어
신문을 펼쳐보는 것이 퇴근시간에 가지는 중요한 즐거움이다.
어제도 지하철 한쪽 구석에 자리잡고 가방 안에서 주섬주섬 신문을 꺼내어
보기 좋게 추린 후 힘껏 펼쳐들었다.
그러자 신문 사이에 끼워져 있던 광고물(배달되는 신문에는 꼭 그런게 있다)
두 장이 신문 사이에서 스르륵 떨어진다.
서있는 사람이 몇 사람 없는 넓은 지하철 안에서 벌어진 일이라
앉아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떨어진 광고지로 쏠렸다.
지하철 바닥에 떨어진 광고지의 가장 커다란 글씨는 이러했다.
"오빠! 너 오늘밤 죽었다!"
"홍콩 미인 총집합!"
그동안 지하철에서 쌓아온 인격과 사회적 지위가 한번에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차마 이 상황에서 바닥에 떨어진 그 광고물을
다시 주워담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일부러 못 본 척 했다. 그러다 말겠지 뭐.
그런데 바로 옆에 어느 어린 아이가 엄마 손을 잡고 서 있다가
계속 엄마한테 큰 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엄마, 저 아찌가 저거 떨러트려써~~"
자식, 나이도 어려 보이는 아이인데 발음이 또랑또랑하다.
발음만 조금 나빴으면 저 말이 이렇게 들렸을 지도 모른다.
"엄마, 저 찌찌가 저거 떠들어서 써베래부애고아"
저렇게 말했다면 별로 쪽팔릴 게 없었는데 아주 선명한 발음은
주변 사람들의 이목을 다시 한번 집중시켰으며
그 사실로 인해 지하철 바닥에 떨어져 있는, 헐벗은 여인의 모습이 담긴
저 이상한 종이의 주인이 나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었다.
처음에 그냥 넘어가도 될 듯한 일이 다시 한번 상기되니
신문에서 광고지 한 장 떨어진 단 한 가지 이유가
매일매일 술집에 가서 영계 불러다 앉히고 술마시는,
TV의 시사고발 프로그램에
모자이크 처리되어 나오는 화면 속의 주인공이 되는 것만 같았다.
결국 그 어린아이가 사고를 쳤다.
"아저씨!~ 여기 이거 떨어졌어요"
이번엔 아까보다 또랑또랑한 목소리였음은 물론 그 크기도 우렁차서
지하철 4번째 문 구석에 앉아있는 70세 할머니도 들릴만한 소리였다.
나쁜 녀석....
"어! 그래 고맙다"
그리고 얼른 주워들었다만 가방 안에 넣자니 남들이 더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고
들고 있자니 그것도 우스운 꼴이라 다음 역에서 얼른 내렸다.
그리고 대충 쓰레기통 찾아 버릴 거 버리고 그 다음 전철을 타고 집에 들어왔다.
* * *
아마 그 전철을 계속 타고 왔더라면
나는 집 앞 전철역에서 분명 초등학교 동창을 만났을 것이다.
누군지 모르는 그 놈은 가정문제 때문에 속이 상한다며
마시지도 못하는 나를 끌고 술집에 갔을 것이다.
그리고 술 기운이 계속 올라 자신이 한번 쏜다며
영계가 나와 '오빠 죽여줄께' 하는 술집에 데려갔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집에 들어가면 정확히 새벽 3시인 것은 확실한 일이다.
아니면 지하철 출구에서 예전에 한동네 살던 짝사랑의 여인이 추억을 더듬으며
거리를 배회하다 나를 만났을 지도 모른다.
그 시간에 추억을 더듬으며 거리를 배회한다는 것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상황이니
그 여자 또한 분명히 나하고 술이나 한잔하자고 했을 것이다.
대부분 그런 경우엔 이혼을 했던지 아니면 뭔가 불만인지
밤늦게 집에 들어가도 되는 상황이 된다.
그러니 또 늦게 까지 술을 마셨어야 했다.
그것도 아니면 동생 친구들을 만났을 지도 모른다.
동생 친구가 술 한잔 사달라는데 바쁘다고 그냥 가버리는 비열한 형이 있나?
그런 형은 우리나라에 없다.
동생 친구가 사달라면 온갖 폼을 잡고 신용카드로 무리하면서도 사줘야 하는 게
내가 살아온 우리나라의 정서다.
아무리 동생 친구라지만 다 큰 녀석들이 얻어 먹었다고 그냥 갈까?
형님 좋은데로 한번 모시겠다며 호기를 부리겠지.
그러면 이번에 더 늦게 집에 들어가게 된다.
아, 그렇다!
지하철에 내려 바로 다음 지하철을 타는 바람에
나는 아무런 우연한 만남도 없이 집에 잘 들어올 수 있었다.
만약 지하철을 한번 갈아타지 않고 그 지하철로 그냥 갔었다면
저런 경우를 만났을지도 모를 일이다.
* * *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선택을 한다.
그것이 자의든 타의든 선택을 한다. 잘못된 일에는 원인을 찾으며
자신의 선택을 탓하지만
아무 일이 없었을 때 자신의 그 뛰어난 선택은 기억하지 못한다.
그저 잘못된 일, 잘못된 선택만 원망하고 있다.
오늘 내가 집에 돌아가 아무 생각없이 하루를 마무리했다면 하루에 있었던
수많은 선택들이 모두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점을 너무 간과하며 보낸다.
각자 자신들에게 있는 이렇듯 뛰어난 능력을 말이다.
그러면 오늘은 또 어떤 선택들이 있을까.
아하누가
지금 읽어보니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