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오케스트라

아하누가 2024. 6. 20. 00:29


 

요즘은 사는게 바쁘다는 핑계로 못가지만 몇 년전에는

클래식 음악회에 자주 갔다.
연말에 대충 짐작해보니 30번 정도?
한달에 두 번 이상을 갔으니 어지간한 연주자보다 더 많이 다닌 셈이다.
친구가 모 심포니오케스트라의 직원으로 있어

어렵잖게 표를 구했고(그것도 평생 앉아볼까 말까한 특급 좌석이다)

거기에 재미들어 매번 빠짐없이 가곤 했다.
다만 협연자가 유명세를 날리는 소위 명 연주자는 아니었고
대부분 중학생이나 초등학교 고학년생으로,
아마도 경력에 관련되어 있거나 혹은 부모들이 경제력을 앞세워 만들어준
연주회인 것 같았다.

하지만 음악을 듣는데 그것이 무슨 문제랴.
그저 음악이 있어 좋고 예술의 전당이라는 좋은 분위기가

기분을 좋게 하는데 말이다.

 

 

그 음악회를 매번 참여하면서 한가지 좋은 방법을 터득했다.

바로 눈높이를 맞추는 일이다.
가끔 그 연주회 말고 다른 해외 유명 초청연주회도 가곤 했다.
물론 그때는 비싼 돈 내고도 좋은 자리에 앉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음악회는 대부분의 경우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유명 연주자들이 초청되어 협연을 하곤 했다.

그리고 사람들의 박수도 우렁차다.
가끔 최고의 것만을 인정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많이 본다.
음악회를 들으려면 최고의 오케스트라가 하는 것을 들어야 하고
협주자는 최고로 알려진 사람의 연주를 들어야
마치 음악회를 다녀온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본다.


초등학교 5학년이 연주하는 파가니니가

어찌 장영주가 연주하는 파가니니와 같을 수 있을까?

그건 비교 자체가 어려운 것임에도 사람들은

초등학교 5학년생의 연주에서 장영주를 원한다.

전혀 그렇지 않을 것 같은 그 일들은 쉼없이 우리 주변에서 벌어진다.
그런면에서 볼 때 눈높이를 맞추는 방법을 이미 터득했으니

나는 영악한 사람일까?

 


내가 좋아하는 축구도 그런 눈높이로 본다.
중고생들이 하는 축구면 그 수준에 맞춰봐야 하고

세계 최고의 팀들이 하는 경기면 그 또한 그 눈높이로 봐야 한다.
우리나가 국가대표팀도 눈높이를 맞춰서 봐야지

세계 최강의 국가들의 기준에서 보려면
언제나 복장이 터지고 성질이 나게 마련이다.
음악 또한 마찬가지여서 그것은 스스로의 감성으로 받아 들여야지
다른 지식적인 접근은 적절치 않다.

 

 

* * * *

 

 

우연찮은 일로 지금 나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어느 오케스트라의
임원 아닌 임원으로 관련되어 있다.
친구가 단장이고 나는 지도위원이라는 명함으로

아이들의 그림이나 감상문을
심사하기도 하고 포스터를 디자인해주기도 한다.
매달 열리는 음악회인데 실력도 좋고 진행이나 구성능력도 수준급이라
늘 흡족해하기도 하고 때로는 약간의 모자람에 몹시 아쉬워하기도 한다.
그 오케스트라에서 이번달에는

초중학생을 위한 '방학숙제용' 연주회를 개최했다.
잘 알고 지내는 몇분에게 권하여 자녀들이 다녀온 모양이다.
다행히 연주회가 맘에 들어 자녀들이 무척 좋아하더라는 말을 듣게 되어
비교적 좋은 기분이다.

 

 

그런데 아침에 어떤 분에게 전화가 왔다.
중학교 1학년 딸이 개학을 해서 학교에 숙제로 음악감상을 제출했는데
음악선생이 '예술의 전당'이나 '세종문화회관' 공연이 아니면

인정을 하지 않겠다고 한단다.
물론 그렇다고 내게

'왜 그런 비천한 공연을 소개해주었냐'는 항의는 아니었고
그분 또한 서글픈 느낌을 감출 수 없었던 모양이다.
숙제야 안한걸로 하면 간단하지만 그분의 딸이

1학기에 전교 1등을 했다고 했다.
1등이 가지는 강박관념을 생각할 때

방학숙제 점수 몇 점은 몹시 아쉬운 것일게다.
결국 지난 주말에

세종문화회관에서 하는 다른 공연을 보고 왔다며 씁쓸해한다.

 

 


어느학교 음악 선생일까?
내가 관련된 음악회여서 아쉽기도 한 것은 사실이겠지만

분명 잘못된 일이다.
현악 사중주는 현악 사중주대로,
피아노 소타나면 또 그 작은 무대의 느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무대가 크다고 음악의 감동이 크게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
거리의 이름모를 악사의 연주에 커다란 감동을 느꼈다는

유명한 음악가의 얘기가 떠오른다.
아직도 세상은 최고의 것, 최대의 것을 고집하는가?

 

 

그것들은 고집해야 할 상황과 시기가 있다.
아무 때나 최고, 최대를 찾으면 그 외의 것이 소홀해진다.
최대, 최고는 오로지 하나만 존재할 텐데
그 나머지 작은 것들은 다 어디서 존재의 의미를 찾아야 할까.
최고는 지향으로 삼고 생활은 언제나 눈높이에서 만족하자.
어쩌면 그게 더 세상을 현명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사는 걸지 모르겠다.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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