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전쯤 되었을까?
날마다 새로운 기록을 갱신하던 무더위가 극심한 기승을 부리던
여름의 토요일 오후였다.
동대문 운동장에서 열리는 프로축구 경기를 보려고 집을 나서다
문득 포항에서 열릴 경기가 더 재미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리고는 신이 들렸는지 아니면 정신이 나갔는지 택시를 잡고 김포공항을 외쳤고
이어 김포공항에 도착해서 포항가는 비행기표를 샀다.
비행기 트랩을 올라가 탑승하려는데 문앞에서 다소곳이 인사를 하던
미모의 스튜어디스가 유독 나에게만 항공권을 보여 달란다.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얼른 항공권을 보여주고 자리에 앉았다.
당시 나의 복장 상태 -
윗옷 : 올란도매직이라고 영어로 쓰여진 소매없는 런닝셔츠
아래옷 : 반바지
신발 : 집에서 신는 슬리퍼
복장이 그러니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렇게 급작스레 행선지를 바꾸어 포항에 도착하여 축구경기를 봤다.
저녁 7시에 시작한 축구가 끝나고 밖으로 나오니
시간은 어느덧 밤 10시가 다 되어가는 무렵.
믿었던 심야 우등고속버스가 매진되었다고 하니 이제 집에 돌아갈 일이 막막해졌다.
아무도 아는 이 없고 아는 곳 아무데도 없는 낯선 지역 한복판에서
이리저리 서울가는 방안을 찾다가
새벽 1시경에 동대구역에서 출발하는 기차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리고는 총알택시를 타고 동대구역으로 출발.
겨우 기차표를 예매하고 한숨을 돌리니 집 생각이 났다.
핸드폰이 없던 시절이라 역전 공중전화로 집에 전화하니
축구장 간 사람이 안나타난다고 난리다.
이러저러 해서 동대구역이이니 이제 곧 들어가겠다고 하니
아내는 잠결에 '동대구역'을 '동대문역'으로 알아듣고 아무런 반응이 없다.
잘못 알고 있는게 차라리 잘된 일이라 생각되어
기차에 몸을 실고 천천히 서울로 향했다.
돌아오는 길에 생각난 것은 단 한가지.
"내가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올 봄엔 울산에 월드컵 경기장이 개장했다고 해서 내려갔었다.
내려가는데 7~8시간 정도 걸렸을까? 겨우 경기시간에 도착해서 축구를 보고
다시 차를 타고 올라오니 새벽 4시.
올라오는 그 지겨운 차 속에서의 시간 동안 나는 내내 같은 생각만 했다.
"내가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인가...."
* * * *
오늘은 대전월드컵 경기장이 개장한다기에 대전에 갔다가
조금전 새벽 1시에 집에 들어왔다.
대전이란 곳이 상대적으로 가까워서 그랬는지 별로 힘든지 모르겠다.
아니면 그짓도 몇번 반복하니
이제는 만성이 되었는지 그저 그러려니 하는 생각뿐이다.
사람이 어느 한가지에 미치면 그것을 보는 주변 사람들은 두가지 반응을 보인다.
하나는 그 모습이 매우 아름답다는, 보기 좋다는 반응이고
또 한가지는 그 모습이 '미친놈' 같다는 반응이 그것이다.
저 두 표현의 미묘한 차이가 무엇일까 생각하니 그것은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고
나서의 일인지 아닌지로 구분되어지는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 말고는 그 구분의 기준이 모호하다.
매니아라는 말로 용서되는 사회가 있고 나라가 있는가 하면 자칫 잘못하면
매니아란 말이 '또라이'로 비춰지는 사회도 있다.
아마 우리나라의 경우가 후자의 경우가 아닐까 생각한다.
좋아하는 일이 있어서 그것에 열중하는 것은 분명 아름다운 일이다.
그리고 할 일을 제대로 못하면서 좋아하는 일을 쫓는 것도 또한
아름답지 못한 일이다.
내가 스스로 좋아해서 하는 여러 가지 일들이 남의 눈에는
과연 아름답게 비춰지고 있을까?
갑자기 그 생각을 하니 무턱대고 좋아하는 일을 쫓는 일도 이젠 두려워진다.
아하누가
이후 축구보겠다고 영국 맨체스터도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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