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을 새워 일했더니 피곤하기도 했지만 일단 씻어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날이 밝아오고 하루가 또 시작되니 잠에 대한 욕구는 조금 사라졌지만
개운한 맛이 없어서 도무지 안되겠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물론 세수를 했는지 안했는지, 목욕을 언제 했는지 남이 보기엔 도저히 알 수 없는
뛰어난 신체적 장점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 위안으로 다가왔지만
그래도 일단 씻어야 했다.
점심먹기전에 사무실 근처에 있는 사우나에 갔다. 평일 오전이어서 사람이 별로 없다.
간밤의 긴박한 상황과는 달리 매우 여유있는 분위기에서
본격적으로 목욕을 시작하려고 주변을 둘러보니
뜨거운 물이 잔뜩 담겨있는 곳이 보인다.
그렇다.
우리는 항상 저 곳을 실제적인 목욕탕이라고 부르며 살아왔다.
무조건 저곳에 가서 때 불리고 이태리 타올로 박박 밀어야
제대로 목욕했다고 생각했으며
또한 돈을 주며 보내준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기억은 안나지만 꽤 오래전부터 나는 그곳에 들어가지 않는다.
위생 문제를 고려할 만큼 깔끔한 성격은 절대 아니고 단지 뜨거운 곳이 싫기 때문이다.
왠지 모르게 뜨거운 곳에는 들어가기가 싫다.
어린 시절 아버지따라 목욕탕에 가던 때 말고는 그곳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런데 오늘은 저곳이 매우 편안한 곳으로 느껴진다.
저곳에 들어가면 지난 일요일에 무리하게 축구해서 아픈 다리며
간밤에 밤을 새워 모니터 앞에 움츠린 자세로 경직된 어깨 근육이
살살 풀릴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 * * *
물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뜨겁다.
나이도 많이 먹었으니 웬만하면 참아보려 했지만
그래도 뜨겁다. 하는 수 없이 아주 어린 시절 쓰던 전술인 '야금야금' 전술로
탕에 들어가기로 했다.
어차피 사람도 많지 않으니 누가 볼 사람도 없을 게다.
'야금야금' 전술이란 초등학교 이후 뜨거운 물에 들어갈 때 쓰는 전술로,
신체에서 뜨거움을 가장 덜 느끼는 발부터 시작해서
조금씩, 아주 조금씩 상체를 물에 담그며 마지막에 목까지 물에 담그는
훌륭한 기술이다.
다만 그에 소요되는 시간이 지나치게 많으며 또한 주변에서 볼 때
매우 궁상맞아 보이는 단점이 있지만 뜨거운 것을 아주 싫어하는 내게는
그 정도의 약점은 그 훌륭한 장점으로 상쇄되어 왔다.
무릎까지 담그고 1센티미터씩 물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밖에 나와있는 살과 물에 들어간 살의 경계 부분은 칼로 에이는 것 같은 아픔이 온다.
여기서 잠깐!
어차피 뜨거운 것 그냥 한번에 들어가지 왜 그런 고생을 하는가?
이 부분이 바로 내가 스스로 생각하는, 뜨거운 것으로 비교분석한 사람의 성격을
파악 방법이다.
내가 확실히 알고 있는 나의 성격중 하나는 귀찮고 하기 힘든 일, 또는 이와 반대로
즐거운 일이라도 한번에 화끈하게 끝내는 스타일이 아니라 지루하게 물고 늘어져
시간과의 싸움으로 해결하는 스타일이다.
즉 하기 싫은 일이 있으면 그 일을 내가 직접 하지 않아도 될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앙증맞은 상상으로 할 수밖에 없는 위급한 상황까지 안하고 버티며,
또한 고통을 나누어 조금씩 오래 가지고 가는 것이 한번에 크게 맞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고통분담'이란 표현이 이 경우에도 어울리는 것인지는
모르나 굳이 다르게 표현하자면
고통을 시간으로 희석시켜 순간적인 정도를 약화시킨다는 것이다.
그 성격은 비단 나쁜 일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어서 좋은 일이나 또는 긍정적인 일에도
똑 같이 적용된다. 아마 나같은 사람에게 5일의 휴가를 준다면
일주일에 하루씩 쉬며 5주 동안 휴가를 갖는다거나 또는 하루 걸러 하루 쉬며
휴가를 보낼 것이다. 어쩌면 하루 반나절씩 쉬며
휴가 기간을 두배로 질질 끌고 갈 지도 모른다. 어떻게는 질질 끌고 가는 것.
그것이 바로 나의 대표적인 성격인데
나는 그것을 뜨거운 목욕탕 물에 들어가며 또 확인하고 있는중이다.
결국 허벅지 넘어까지 전진했다. 이제부터는 조심해야 한다.
제일 뜨거운 곳은 똥꼬 있는데니까 여기서 속도 조절 및 흐름을 타지 못하면
그동안의 고생이 말짱 헛고생이 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신중했다.
1센티미터씩 전진하던 단위도 0.5센티미터로 바꾸며 소수점을 적용해야 할 만큼
세분화 시켰으며 마음에 준비도 단단히 하고 있었다.
이 고비만 넘기면 배나 가슴은 쉽게 해결할 수 있다. 다시 한번 심호흡을 하며
탕안으로 들어가는 계단식 입구에 걸터앉아 발을 바닥으로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어떤 덩치 큰 사람이 나타나더니 내 등 뒤에서 큰소리로 말했다.
"안 들어가실 겁니까?"
"아~ 예, 풍덩~"
탕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계단처럼 되어 있어 1센티미터씩 잠수가 가능한 곳인데
내가 그곳을 막고 있어서 뒤에 오는 놈이 내가 말을 걸었는데
그만 그 소리에 놀라 한번에 탕안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늘 긴장하던 똥꼬 부분에 엄청난 뜨거움이 몰려왔음에도
다른 사람이 있기에 고통스러운 표정 한번 짓지 못하고 탕안에 앉아 있었다.
아, 이 고통을 누가 알아줄까.
* * *
성격은 절대로 고쳐지지 않는다.
주변에서 성격을 고치라고 충고하는 사람을 나는 매우 무책임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그 성격에 맞게, 남 피해주는 일만 없으면 스스로 재미있게 살자.
성격을 고치려 한다는 건 정신병에 걸리겠다는 생각이나 다름없다.
나 또한 그저 내가 사는 방식으로 살뿐이다.
자정을 넘긴 시간. 지금도 일을 하고 있다.
아마 내일 아침도 그 사우나를 가야 할 것 같다. 이번에는 기필코 성공할 것이다.
아하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