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96

주변환경에 의한 수면시간 조절법

잠을 잔다는 것에 대한 욕구는 인간의 본성이어서      잠에 대한 갈망은 누구에게나 집요하게 따라다닌다.      정신이 멀쩡한 시간에 그런 얘기를 하거나 들으면      얼핏 이해가 되지 않지만 잠이 쏟아지는 늦은 밤 무렵이나      또는 잠에서 깨어야 할 아침 무렵이면 잠의 욕망이라는 것이      얼마나 처절하고 잔인한지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렇듯 잠이라는 것은 날마다 반복되는 욕망의 연속이지만,      나이가 점점 들어갈수록 그 욕망을 채우기에는      너무도 열악해진 주변환경을 깨닫게 된다.      잠이란 것은 육체적, 정신적 피로도에 따라 다르지만 주변환경 또한      배제할 수 없다.      주변이 잠자기에 적합하면 잠도 잘 오는 법이고      ..

화장실과 핸드폰

"응...괜찮아, 지금 회의 준비하는 중이라 시간 있어~"                갑자기 이게 웬 봉창 두드리는 소린가?     오후에 사무실 화장실에 앉아 행복한 시간을 보내려는데     옆 칸에 자리잡은 놈이 전화기에 대고 하는 소리다.               요즘 핸드폰 없는 사람이 없다고 하지만 똥 사는 상황에서도     핸드폰으로 통화를 해야 하는 현실이 너무도 각박하게 느껴졌다.     그것만해도 이미 불쾌한 기분인데     전화 내용을 들어보니(원치 않아도 들릴 수밖에 없다) 그 내용 또한     몹시 가증스러운 것이라,     똥 싸는 놈이 회의고 뭐고 마치 화장실에서 똥 싸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의식적인 말투가 몹시 귀에 거슬렸다.     모처럼 행복하게 똥을 싸야 하는 시간..

추위가 싫은 남자

사람마다 체질적인 특징이 있게 마련이다.     굳이 사상의학이라던가 또는 다른 의학적 부연 설명을     곁들이지 않더라도 사람마다 체질이 다르다는 것은 모두 다 아는 얘기다.     이렇게 모두가 아는 얘기를 거창하게 서두에 끄집어 낸 것은     유난히 주위를 싫어하는 나의 체질적 특징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나는 추위를 몹시 탄다.     이 세상에서 가장 싫은 게 무엇이냐고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단호한 목소리로 '추위'라고 한다.     그렇다.     추위는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다.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추위를 얼마나 타기에 이렇듯 오도방정을 떨고 있는지     그간의 행적을 더듬어 보자.     글의 특징에 어울리게 일기 형식으로 정리해본다.   ..

영어회화

스무살 때나 지금이나 계속 주변에서 끊이지 않고 들려오는     단어 하나가 바로 '영어회화'다.     내 또래의 사람들이라면 테이프 한질 산적 없는 사람이 없을테고,     학원에 등록 한번 안한 사람이 있으랴.     남의 말인데로 열심히 목숨 걸 듯 배워야 함이 안타깝다.     하지만 그것도 수 차례 과열되고 너도나도 하고 있고     또 여기저기서 '영어회화'라는 단어가 들려오고 반복되니까     안 그래도 될 일이 더 어렵게만 느껴지는 것 같다.     가만히 있으면 쉽게 생각할 수도 있는 문제인데     주변에서 '쉽게 배우는 영어회화' 류의 제목들이 범람하니     오히려 시작부터 주눅이 드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문득 영어회화 책을 읽다 좋은 문장이 있어 소개한다.    ..

모포터는 소리, 휴일이 가는 소리

군대에서도 일기를 쓰게 한다.     부대마다 그 정도는 다르지만 내가 생활하던 부대에서는     이라는, 문맥도 안 맞는 것 같고     군인다운 유치함이 철철 넘치는 제목의 일기를 쓰도록 했다.     가끔 내무검사 때나 일석점호 시간에 검사를 하기도 해서     생활하는 부대원들에게는 여간 골치 덩어리가 아니었다.           대부분의 부대원들은 내무반 책장에 꽂혀있는 이라는     문고판 책을 순서대로 베꼈으며     그것도 하기 귀찮을 때에는 노래가사를 적곤 했다.     하지만 군대에서 시간 때우기에 좋은 것을 찾던 내 입장은     제법 다른 일에 비해 취향도 맞고 하기도 어렵지 않은 일 같아     제대로 된 일기를 부지런히 썼다.              하루가 가는 의미도 있었고 한..

내 생각, 네 생각, 남의 생각

오랜만에 신문을 봤다.     독자투고란에 게재된 어떤 글이 마음을 무겁게 한다.                얼마전에 어린 아이를 구하고 탈진하여 숨진     어느 30대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 어린 아이의 부모가 그 30대의 유족을     찾지도 않았다는 기사 또한 신문을 통해 보도되었다.     오늘 신문에서 본 글은 그 이야기를 들은 어느 독자가 쓴 글인데,     자식을 구하고 세상을 떠난 은인의 유족에게 찾아가지도     않은 사람을 보며 세상의 황폐하고 무정한 민심을 한탄하고 있는     글이었다. 말 그대로 서글프고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내 마음이 무거운 것은 그 이유가 아니다.          나는 이상하게도 오히려 그 어린 아이의 부모를 이해한다..

요시자키 에이지

어느 날 아침 스포츠신문을 보니 반가운 얼굴이 보인다.     붉은악마와 일본 울트라니폰의 화합 한마당에 참석한     일본대표의 인터뷰였다.          요시자키 에이지.     1997년 월드컵 예선의 열기가 한참일 때 나타난 한국 유학생.              내가 뛰는 축구팀 회원으로 축구를 아주 좋아하는 일본 친구.     몇 살이냐 물으면 나보다 열 살이나 어리면서 '소띠'라고 대답하는 놈.     자기네 나라에는 나이가 많아도 '형'이라 호칭하지 않는다면서도     내게 형 소리를 하는 놈.     한국 오는 일을 밥먹듯 하고 축구에 많은 애정을 보이더니     이제는 내가 신문을 통해서야 볼 수 있는 사람이 되었나?     반가운 사진을 보니 얼마 전 녀석의 모습이 생각난다.     ..

지하철에서 만난 어느 외국인 부부

출근길에 지하철을 타려고 계단을 내려가는데     낯선 외국인 두 사람이 지도를 꺼내들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고 있다.     내가 일하는 시내에서야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지만     내가 살고 있는 이곳 변두리에서 자주 보는 모습은 아니다.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일까 궁금하고     또한 제대로 안내해줄 사람도 없이 단 두 사람일 것만 같아     잠시 걱정스러웠다.     특히 내가 태어나고 내가 자라고 또한 지금도 살고 있는     나의 동네에 온 손님이니 이대로 보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내려가던 계단에서 걸음을 멈추고 그들이 서 있던 곳으로 되돌아갔다.          아니나 다를까.     누군가 옆에서 아래로 내려가라는 손짓을 하며     안내를 하는데 가까이..

30대여, 수면으로 올라오라!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에 보면 경로석이 있는데 가끔 거기서 할아버지들의     호통 소리를 듣곤 한다.     대부분의 일들이 그 자리에 앉아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 젊은이와     자리를 양보하라는 노인들의 고성이 대부분인데     오늘 일은 어째 심상치 않다.          큰 소리의 호통에 자리에 앉아 있던 어느 아주머니가     민망한 표정으로 일어났다.     자리를 양보 받은 할아버지가 자리에 앉아서도 계속 세상 타령을     하며 요즘 젊은이...를 운운하고 있었다.     듣다 못한 아주머니가 그 자리를 피해 다른 곳으로 옮기려는지     내가 서있는 근처로 오더니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나도 올해 쉰일곱인데...."         의술과 의료시설의 발달,..

TV 출연

글쎄.... 한 6년 정도 되었을까?         휴가를 간다고 두 친구 부부와 강릉으로 향했던 적이 있다.     날짜도 비슷하고 요일도 비슷한 이맘때였는데     어찌나 길이 막히던지 이건 차가 가는지 서는지 구별할 수 없는     극심한 정체 속에 있었던 적이 있다.     막히고 또 막히고 갈만하면 또 막히고....         구름에 달가듯이, 도로에 차 굴러가듯이 가야하는 길이     정체와 짜증으로 일관된 휴가길이 되고 있었다.     나름대로 머리를 쓴다고 밤 9시경에 출발했으나     대부분 휴가가는 사람들이 모두 똑같은 생각을 했는지     도로는 아우성 그 자체였다.         하룻밤을 차안에서 꼬박 새우고 그 다음날도 계속 같은 모습으로     아침을 맞고.... 그렇게 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