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 한 6년 정도 되었을까?
휴가를 간다고 두 친구 부부와 강릉으로 향했던 적이 있다.
날짜도 비슷하고 요일도 비슷한 이맘때였는데
어찌나 길이 막히던지 이건 차가 가는지 서는지 구별할 수 없는
극심한 정체 속에 있었던 적이 있다.
막히고 또 막히고 갈만하면 또 막히고....
구름에 달가듯이, 도로에 차 굴러가듯이 가야하는 길이
정체와 짜증으로 일관된 휴가길이 되고 있었다.
나름대로 머리를 쓴다고 밤 9시경에 출발했으나
대부분 휴가가는 사람들이 모두 똑같은 생각을 했는지
도로는 아우성 그 자체였다.
하룻밤을 차안에서 꼬박 새우고 그 다음날도 계속 같은 모습으로
아침을 맞고.... 그렇게 가다 가다 결국 강릉까지 못 가고
근처(연곡 해수욕장이었나?)에 그만 자리잡고 말았다.
해도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렇게 힘들게 도착해서 비록 목적지는 아니지만
어딘가에 자리잡고 나서야 집에 전화를 했다. 막내가 받았다.
"형 아까 저녁 뉴스에 형 나온거 알아?"
"......?"
내가 뉴스에 나오다니.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부터
김밥 옆구리 터지는 소리에다 강아지 풀뜯어 먹는 소리에
일기나라 코스닥 등록하는 소리하고 있네?
내가 파렴치범도 아니고 큰 뉴스 뒤에 나와 의견을 말하는
전문가도 아니요 그렇다고 기자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취재할 만큼 유명한 사람도 아니니 막내의 얘기는
한마디로 더 이상 연구할 가치가 없었다.
하지만 뉴스는 모르는 법.
혹시 내가 명동에 지나치다가 카메라에 잡혔을 지도 모르고
예전에 축구장에서 윗도리 벗고 난리 피운 적 있는데
그 화면이 자료화면이라는 제목으로 나왔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호기심이 생겨 막내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어디 나오든? 뭔 뉴스래?"
막내 얘기로는 내가 휴가를 밤에 떠나고 그 다음날 9시 뉴스에
기자가 다음과 같은 멘트로 뉴스를 시작하고 있었다고 한다.
'지금 보시는 장면은 헬기에서 바라본 휴가길 차량이 극심하게
엉켜있는 고속도로 상황입니다.....'
썅! 그러면 그렇지.
막내 말은 정말 내가 TV에 나왔다는 것이 아니라
헬기에서 비춰주는 장면 속에 한자리 잡고 있을 거라는 소리였다.
하긴 그랬다.
거짓말 하나도 없이 30시간 동안 차안에 있었으니까.....
그 일이 있고 나서 나는 휴가를 8월 첫째 주말에 절대로 잡지 않는다.
차라리 휴가를 포기하고 은행에서 에어콘을 쐬고 있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 그 때는 움직이지 않는다.
(여기서 잠깐. 앞에 쓰여진 '은행에서 에어콘을 쐰다'라는 표현을
알고 있으면 이미 당신도 옛날 사람이다.)
그래서 보통 7월 20일전에 휴가는 마무리하고 8월 첫주가 되면
느긋하게 TV앞에 앉아 휴가길 정체현장을 보며 묘한 쾌감을 느낀다.
가끔 친구들이 왜 나를 변태라고 부르는지 이해가 가기도 한다.
그런 오늘은 휴가가 가장 정점에 다다른 날이다.
제조업이 쉬니 관련 업체들도 쉬어야 하고
그러니 그집 식구들도 쉬고 덕분에 강아지도 쉬고 유치원도 쉬고
학교도 쉬니 어디론가 가야하는 날이다.
우리 사무실 직원도 한사람 떠났고 거래처 직원도 떠났다.
그리고 보니 서울 시내가 조용하다.
이제 저녁이 되면 KBS 9시 뉴스 시작하자마자
헬기에서 찍은 휴가길 장면이 보여지겠지.
휴가.....
이거 아무리 생각해도 문제 있다.
산업적으로도 문제고 놀러가는 사람들도 힘들고
놀이 시설 갖춘 데도 한번에 일년치 다 벌어야 하니
서비스도 엉망이다.
주변을 둘러보니 휴가들은 나누어서 잘 쓰던데
아직 그렇게 하는 곳은 일부분인가?
반드시 여름에 휴가가 있어야 하고, 휴가중엔 반드시 어딘가를
다녀와야 하고....
제도적으로 해결하든 인식의 전환으로 해결하든
이 문제가 빨리 해결되었으면 싶다.
아하누가
지금은 2024년.
글을 쓴 이후로 EBS 세계테마기행에 두 차례나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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