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TV를 통해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끈
도올 김용옥 교수의 노자 강의가 있다.
매주 금요일 밤에 했는데 시간이 적당해서 잘 보던 TV프로그램이었다.
거침없는 화술은 물론 그전에는 생각하지도 않았던 동양철학을
나름대로 알아듣기 쉽게 강의한다는데 흥미가 있었고
그런대로 강의도 들을만 했다.
모처럼 좋은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메시지 한 장만 달랑 남기고 도올은
강의를 무작정 끝내버렸다.
방송이라는 사정도 있고 개인의 사정도 있으니
메시지에 적힌 내용말고도 속으로야 뭔 사정인들 있었을 테지.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 동안 그 일은 마치 새까만 옛 일처럼
기억 속에서 점점 사라져가고 있었다.
* * *
휴가 전날 친구 희수가 한 권의 책을 불쑥 내밀었다.
휴가 동안 책이나 보라며. 제목은 <노자를 웃긴 남자>라는 책으로
이미 신문보도를 통해 잘 알고 있는 책이었다.
다만 그 책을 읽지 않은 이유는 이미 공개된 사람의 흠을 잡고
비판을 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라 생각했으며
또한 그 일은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었다.
항상 그랬다.
비판하는 것은 칭찬하는 것보다 훨씬 쉽다는 것이 평소 생각이다.
비판을 하기 위해선 비판을 당하는 사람을 보다 뛰어나야 하는데
대부분의 비판은 그렇지 못했다.
그것이 내가 비판하는 사람의 손을 들어주지 않는 하나의 이유였고,
또 한가지는 남의 유명세를 업고 항간에 화제를 만드는 그 것이
무척 비열하다는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 또한 그 책을 보기 전의 생각이었고
<노자를 웃긴 남자>라는 책을 본 지금의 느낌은 몹시 다르며 또한
혼란스럽다.
사상을 논하고 철학을 말하는데 내가 어디 낄 자리나 있으련만
비판의 자료치고는 너무도 명백하며 또한 명쾌하다.
더 깊이 속을 들여다보면 또 어떨지 모르지만 비판 중에는 가장
명확한 비판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누구라도 그 책을 본다면 도올의 손을 들어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비판은 그렇게 해야 한다.
하지만 그 책을 일고 내가 가진 감정은 비판의 통쾌함이 아니라
어쩌면 그렇게도 이 사람 말 들으면 이 사람 말이 맞고,
저 사람 말 들으면 저 사람 말이 맞는지 스스로가 처량할 뿐이다.
노자의 첫 구절에 나오는 말처럼, 또 그 말의 해석이 누구 것이 옳든지
나는 꾸며진 아름다움은 아름다움이 아니라는 말에 동의한다.
아니, 쌍수 들고 환영한다.
따라서 내 모습도 꾸며지지 않은 채 하고 싶은 대로,
보여지는 대로 보여지는 것이 가장 아름다울 수 있겠으나
그것도 소신이 있은 다음의 문제인 것 같다.
지금처럼 아무 말이나 듣고 나면 일단 고개부터 끄덕인다면
그게 뭐 아름다울 게 있겠나.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 비참하고 처량해지니 그저
워낙 수준이 높은 얘기들이 오가는 와중의 혼란이라고 생각해야겠다.
거봐, 동양철학은 어려운 거라니까 서로들 쉽게 해석했다고 그러네.....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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