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서 제대하고 얼마 되지 않은 때였을까.
바쁠 것도 없이 지내던 어느 여름이었는데 비가 많이 내렸다.
많이 내린 정도가 아니라 마치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것처럼 퍼부었다.
군대에 있을 때는 그런 비를 보며 커다란 유리창이 있는
커피숍의 창가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쳐다보면
매우 운치 있을 것이라는 앙증맞은 상상을 했었다.
지금이라면 비로 인해 또 다른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생기니
그런 상상이야 하지 않았겠지만 군대라는 폐쇄적 사회가 가져다주는
상상의 변화로 인해 아주 철없이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제대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그때 역시 마찬가지여서
그런 생각을 아무 거리낌없이 하고 있었다.
커다란 우산을 들고 집을 나섰다.
평소 자주 가던 '피망'이라는 커피숍 창가에 앉아 커피를 시켰다.
이른 시간이어서 그랬는지 손님은 아무도 없었고
예전에 꿈속에서나 그려볼듯한 상황을 현실에서 아주
여유 있게 맞이하고 있었다.
갑자기 출입문이 열리고 누군가 낯익은 사람이 들어왔다.
지금은 미국에 이민간 광효형이었다.
혼자 앉아 있는 나를 보더니 아침부터 무슨 약속이 있느냐 묻기에
힘들여 잡아 둔 감상이 깨어질까봐 그저 고개만 설레설레 흔들었다.
비에 젖은 우산을 툭툭 털며 앞자리에 앉은 광효형이 말을 꺼냈다.
"군에 있을 때 말이야. 이런 비만 보면 제대하면 반드시
커다란 창가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비 구경이나 해야겠다고
생각했거든......"
".....?!"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은 느낌도 비슷한가보다.
* * *
그런 비가 계속 내린다.
하지만 이제 한낮에 커피숍 창가에 앉아 커피를 마시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바쁘게 살아야 하는 의무를 가진 한 가정의 가장이
의식적으로 한가로움을 피하려는 모양이다.
가장 한가롭다고 생각하는 일이 화장실 변기에 걸터앉아
담배를 피우는 일이었는데
그나마 집에서 담배 피우지 말라고 잔소리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무섭도록 퍼붓는 비에
나의 마지막 한가로운 감상도 떠내려가는 것일까.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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