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모포터는 소리, 휴일이 가는 소리

아하누가 2024. 6. 20. 00:14


    
     군대에서도 일기를 쓰게 한다.
     부대마다 그 정도는 다르지만 내가 생활하던 부대에서는
     <수양록>이라는, 문맥도 안 맞는 것 같고
     군인다운 유치함이 철철 넘치는 제목의 일기를 쓰도록 했다.
     가끔 내무검사 때나 일석점호 시간에 검사를 하기도 해서
     생활하는 부대원들에게는 여간 골치 덩어리가 아니었다. 
     


     대부분의 부대원들은 내무반 책장에 꽂혀있는 <마음의 양식>이라는
     문고판 책을 순서대로 베꼈으며

     그것도 하기 귀찮을 때에는 노래가사를 적곤 했다.
     하지만 군대에서 시간 때우기에 좋은 것을 찾던 내 입장은
     제법 다른 일에 비해 취향도 맞고 하기도 어렵지 않은 일 같아
     제대로 된 일기를 부지런히 썼다.         
     하루가 가는 의미도 있었고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빈 여백을
     메꾸어 나간다는 재미도 있어서
     나름대로 지루한 군 생활에 활력이 되어주곤 했다. 
     


     그 일기는 내 자리 물품 정리하는 곳에 아무렇게나 꽂아 두어
     보고싶은 사람 누구나 꺼내 볼 수 있게 했고
     비교적 인기도 좋아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며 가끔 내 일기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사람은 나름대로 기분이 좋은 표정을 보이곤 했다.           
     


     그렇게 일기를 열심히 쓰던 어느 일요일.
     이제 어느 정도 고참이 되어 꼭 밤에만 일기를 써야 하는 것은
     아니었고 아무 때나 편할 때 일기를 써도 되는 시기가 되었을 때였다. 
     


     일요일 오전엔 덮고 깔고 자던 모포(담요)를 밖에 널어둔다.
     자주 빨지도 않으니 햇빛이라도 쬐야지.
     뭐 대단한 물건이라고 보초병도 하나 세워둔다.
     모포 지키는 군인도 있으니 이야말로 군대 아니면 볼 수 없는 장면이다.      

        
     그렇게 널어둔 모포는 해가 질 무렵인 저녁식사전에 잘 털어서
     다시 내무반에 들여온다.
     한두 번 하는 게 아니라 매주 하다보니 모포 터는 솜씨가
     예술인지라 매우 커다란 소리가 나며,
     그 소리는 듣는 사람 마음을 시원하게 해줄 정도로 우렁차다.          
     양쪽 끝에서 두 사람이 끝자락을 마주잡고 서로 호흡을 맞추어 터는
     소리는 한번 소리가 날 때마다 건너 산에 부딪히며 다시 돌아와
     우렁찬 울림을 들려주곤 했다.
     별로 재미있지도 않은 모포 터는 일을 그나마 즐겁게 할 수 있었던
     이유도 그 호쾌한 소리에 있었으리라.      
     


     대부분의 쫄병들은 모두 나가서 모포 터는 일에 열중하고 있을 때
     고참이 된 나는 그 모포 터는 소리를 들으며 내무반에 앉아 일기를 쓰고 있었다.
     군대라도 휴일은 마음이 편하다. 특별한 훈련기간이 아닌 이상
     대부분 종교행사나 체육으로 마무리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휴일 오후를 마치며 들리는 모포 터는 소리는 왠지 모를
     아쉬움을 가슴 한구석에 쌓게 한다.
     그날 나는 일기장에 달랑 한줄의 일기를 썼다. 
   
               
     '모포 터는 소리, 휴일이 가는 소리'

    
         
     일기장 윗줄 적당한 간격이 띄어진 곳에 자리 잡은 그 짧은 표현은
     군인이 맞이하는 휴일의 감정과 또한 그것이 저물어 가는
     군인의 감성을 아주 적절하게 표현한 멋진 말이었다.
     때로는 많은 설명이 오히려 표현의 부족함을 역설하듯
     간단한 문장이 더욱 많은 생각을 하게 하고 또한
     더욱 심금을 울리는 멋진 말이 되기도 하니까.
     군대에서 생활하고 있는 군인으로서는 보기 드문
     서정적인 표현을 했다고 자부하며 펼쳐진 일기장을 내려다보며
     히죽히죽 얼빠진 웃음을 계속 잇고 있었다. 
    

 

                *         *          *

 


     그날 저녁 일석점호 시간에 하필이면 <수양록> 검사를 했다.
     당시 당직이던 한 간부가 내 일기를 보더니 이게 장난하는 거냐며,
     성의가 없다고 다시 쓰라고 했다.
     시적 표현과 풍부한 감수성을 인정 못하는 상황이
     너무나 안타까왔지만 하는 수 없이 또 일기를 썼다.
     그곳은 군대였으니까.

     


     일요일만 되면 그 생각이 떠오른다.
     이런 것도 시대가 가져다 준 아픔일까?

 

 


                        *************

 

 


     일요일이 지나간다.
     언제나 그랬듯 일요일 밤이 가져다 주는 공기는 묘한 분위기를 만든다.
     오래전 일을 더듬어본 기분으로

     오늘 일기를 한줄의 감상으로 마무리한다.

     

 

 


       '새로운 한 주를 걱정하는 한숨 소리, 휴일이 가는 소리'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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