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96

어떤 차량 접촉사고 현장에서

건너 편 이장 댁에 모처럼 민박 손님이 왔다. 여름 휴가 이후로 뜸했던 손님인데, 단풍이 절정을 이루는 계절이 되자 찾아온 반가운 손님이다. 이장 댁은 원주로 출가한 자녀들을 위해 집을 조금 크게 지었는데, 두 내외만 지내기에 적적하여 민박 손님을 받는다. 하지만 돈도 많이 받지 않는다. 그저 사람 사는 냄새가 아쉬울 뿐이다.  그날 저녁 민박집 손님 차가 이장 댁으로 진입하려던 순간 뒤에서 앞지르려던 트럭과 부딪혔다. 문 한짝이 완전히 찌그러진, 사람이 다치지 않는 범위에서는 제법 큰 사고였다. 저녁 식사를 앞두고 아내에게서 소식을 듣고 곧 현장으로 갔다. 가로등 하나 없는 어두운 길에 차량 두대만 비상등을 켜고 있고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씨끄럽게 웅성거리고 있다. 워낙 어두운 길이라 어느 차가 민박..

강원도 여자는 모두 짝궁뎅이?

"너 그거 알아?" 요즘 들어 아내가 살던 강원도에 집을 짓는다니 친구 한 녀석이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났는지 매우 흥미로운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뭐냐고 물으니 이 녀석의 말이 또한 황당하다.  "강원도 여자들은 다 짝궁뎅이래."".....?" 이런 망측한 말이 있나. 특정 지역 사람들의 명예를 실추시킴은 물론이요 여자 신체의 특정부위를 거론함으로써 수치심으로 느끼게 하는, 여러가지로 문제의 소지가 많은 발언이다. 하지만 녀석의 모친이 강원도 출신이라는 점으로 미루어 특정 지역을 비하한 것 같지는 않고 그냥 웃자고 해본 소리이긴 한데 그 근거가 아무래도 미심쩍다.  "왜 짝궁뎅인데?" 국어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궁뎅이'라는 단어를 과감하게 등장시킨 것을 보면 나름대로 일리있는 근거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

집주인의 비애

강원도에 집을 짓기 시작한 이래 시간만 나면 강원도 현장으로 달려갔다. 집주인으로서 또는 집을 가지게 된 한 가장의 설레임으로 인해 서울에서 강원도까지 가는 먼길은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고 한달음에 달려갈 수 있었다.  여름이 점점 다가오던 어느날, 날씨는 급격히 더워졌고, 집을 짓는다는 즐거움의 약기운도 점점 떨어져 신나게 달려가던 강원도까지의 거리는 점점 멀어져가는 고된 길이 되었다. 그래도 좋은 집을 지어야 한다는 집주인 본연의 생각으로 마음을 굳게 다지고 길을 떠났지만 힘든 길은 역시 힘든 길이라 운전은 점점 고된 일이 되었다. 양평쯤 도착했을 무렵 조금 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어차피 한달음에 달려가 현장의 몇 가지 상황을 확인하고 그길로 다시 돌아와야 하는 일정이니 만큼 경치좋은 곳에..

잃어버린 열쇠와 한장의 메모

일요일 아침에 축구하는 학교 운동장은 뒷문을 개방하지 않는다. 정문으로 들어가면 운동장과의 거리가 너무 멀기에 뒷문을 이용하는데, 언제부턴가 뒷문을 개방하지 않아 담을 넘어 운동장에 들어가는 일을 몇년째 반복하고 있다. 담을 넘는 일도 수차례 반복하다보니 이력이 붙어 커다란 스포츠백을 어깨에 메고도 훌쩍훌쩍 넘을 수 있게 되었다. 길에 오가는 사람들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기도 하고 단지 운동장에 들어가는 것 뿐인데 왠지 모를 껄끄러움도 있었지만 그것도 지나친 횟수의 반복에 의해 정상적인 생활로 승화되는 단계에 이르렀다.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축구에 심취하고자 운동장을 찾은 어느 일요일. 운동하러 들어갈 때 그랬던 것처럼 운동을 마치고 나오는 순간에도 담을 넘어야 한다. 언제나 그랬던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서울 사람 시골가기

태어날 때부터 사는 곳이 서울인 내게 시골이란 공간은 매우 낯선 곳이다. 하지만 현재 강원도 산골에 집도 한채 짓고 있겠다, 더욱이 그곳은 아내가 나고 자란 고향이니 이제 어느 정도 시골에 익숙해져야겠다는 생각에 시골을 자주 찾게 되는 요즘이다. 이 좁은 땅덩어리에 시골이 멀어야 얼마나 멀겠으며, 급변하는 경제성장과 사회변화 속에 시골이라고 해야 서울하고 문화적으로 다른 게 뭐가 있겠냐는 생각에 낯선 어색함을 친근함으로 바뀌도록 스스로 몇번씩 다짐하곤 한다. 그 다짐이 효과를 발휘한 것인지 아니면 예상했던 대로 시골이란 곳과 서울이란 곳의 거리적, 문화적 차이가 좁아진 탓인지 주변 환경이 다른 것 말고는 사람사는 사회의 큰 차이는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한번 두번 횟수를 늘리다 보니 전혀 생각지도 않았..

카메라가 달린 핸드폰

베트남의 경제도시 호치민에 잠시 머무를 때였다. 마침 주위에 신문이 있어 관심있게 펼쳐보았지만 대부분 알아보지도 못하는 베트남 말들 뿐이었다.그러나 그 말들 사이로 보이는 사진중에 흥미로운 사진이 한장 눈에 띄었다.정부 고위인사로 보이는 두 사람이 핸드폰을 들고 서로 마주보고 있는 사진이었다. 카메라가 달린 핸드폰이 이제 베트남에서도 시판된다는 베트남 친구 후이부의 설명이었다. 그리고 후이부는 내게 물었다. "한국에는 대부분 핸드폰에 카메라가 달렸다죠?""그렇지...." 모두가 그렇지야 않겠지만 카메라 달린 핸드폰은 주변에서 너무도 쉽게 볼 수 있으니 틀린 말은 아닌 셈이다. "그럼 형 것두 카메라 달렸어요?""......" 사실 내 핸드폰에는 카메라가 없다. 카메라만 없는 정도가 아니라 인터넷도 안된다..

디지털카메라 팔기

그동안 잘 사용해오던 디지털 카메라를 중고 시장에 내놨다. 사용에는 별 이상이 없고 단지 더 좋은 걸 장만하고자 하는 계획으로 시장에 내놓았는데 어째 마음이 편치 않다.마음이 편치 않은 이유는 그동안 손때가 묻은 애정 때문이기도 하고 또 쓰던 걸 남에게 돈 받고 팔아야 하는 행위가 그동안 살아온 정서와 썩 어울리지 않는 다는 느낌에서다. 하지만 카메라라는 것이 예전과 다르게 장롱속에 보관되는 귀중품은 아니다.디지털 시대에 맞춰 시간만 지나면 구닥다리가 되어버리는 전자제품의 성격이 되었다.좋은 각겨에 되팔아 자금을 마련하고 사는 사람은 싼 가격에 적당한 모델을 구입할 수 있으니 이게 또 요즘 사회다. 그러나 자연스럽지 않다는 것, 그래서 어색하다는 것은 여전히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긴다.   나름대로 정성..

이름이 적힌 수건

집들이 겸 자리를 마련한 후배의 집을 찾았다. 서른이 갓 넘은 나이에 혼자 사는 남자치곤 깔끔하게 정리된 집이었다. 모임의 후배들과 함께 편한 자세로 있다 화장실을 찾았다. 세수를 마치고 어딘가 당연히 걸려 있을 수건을 찾았다. 보통의 집이라면 수건이 흔히 있는 장소에 걸린 수건을 찾아 손으로 꺼내려는 순간, 수건 아래 부분에 선명하게 적힌 글씨가 보인다. 겨우리 진한 매직으로 쓰여진 글씨는 누구라도 쉽게 눈에 띌 만큼 선명하다. 매직으로 수건에 이름을 쓴다는 일은 일반 사람들에게는 매우 생소한 일일지는 모르나 군대에 다녀온 이 땅의 남자들이라면 매우 친숙하게 받아들여지는 장면이다.  통일을 강조하는 군대의 문화와 생활방식은 지급받는 군복이나 속옷, 세면 용품, 침구 등 모든 것이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필리핀 여가수의 CD

자동차를 타고 집을 나서는데 옆자리에 CD 한 장이 보인다. 며칠전 필리핀 마닐라에 갔을 때 어느 시장 모퉁이 노점상에서 구입한 CD인데, 조잡한 표지와 표면 인쇄 상태가 정품이 아니라 불량 복제품이라는 사실을 뚜렷이 말해주고 있는 CD다. 어떤 노래를 부르는 어떤 가수인지 내가 알려고 해야 알 수 없고 다만 추천이라는 단어 하나 믿고 노점상 주인이 집어준 것을 덥썩 들고 온 것이다.  차안의 오디오에 넣으니 노래가 나온다. 음악의 나라, 음악을 사랑하는 나라 필리핀답게 노래가 듣기 좋다. 가사가 영어가 아니라 따갈로그라는 그들의 언어로 되어 있어 미국적이지도 않고, 또한 불과 며칠전 마닐라에 있었던 일들이 떠오르니 더욱 좋다. 이렇게 좋은 음악이 계속 흘러나와 복잡한 도로에서의 시간을 행복하게 만들어주..

노라 존스 Norah Jones

갑자기 글을 쓰고 싶을 때가 있다. 그때라는 것은 문학적 욕구가 솟구쳐 오른다거나 감성이 넘칠 때가 아니라 그저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싶을 때다.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다는 것을 더 정확히 표현하면 자기 합리화로 철저하게 무장된 논리에 대해 누군가로부터 동조의 반응을 얻고 싶은 때이다. 이런 장황한 서론으로 이야기를 끌어가자니 이후에 무언가 중대한 주제가 등장해야 하겠지만 불행히도 그렇지 못한 것이 조금은 민망스럽다.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노래 한곡을 들었다. Norah Jones라는 젊은 미국 여가수의 노래인데, 뉴욕 출신인 이 가수는 참신함을 앞세운 이미지에 가벼운 재즈풍의 노래로 올해 그래미어워드를 석권했다. 최우수 레코드, 최우수 앨범, 최우수 노래를 휩쓸었으니 가히 석권이라 할만한 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