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글을 쓰고 싶을 때가 있다.
그때라는 것은 문학적 욕구가 솟구쳐 오른다거나 감성이 넘칠 때가 아니라
그저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싶을 때다.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다는 것을 더 정확히 표현하면
자기 합리화로 철저하게 무장된 논리에 대해 누군가로부터
동조의 반응을 얻고 싶은 때이다.
이런 장황한 서론으로 이야기를 끌어가자니
이후에 무언가 중대한 주제가 등장해야 하겠지만
불행히도 그렇지 못한 것이 조금은 민망스럽다.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노래 한곡을 들었다.
Norah Jones라는 젊은 미국 여가수의 노래인데,
뉴욕 출신인 이 가수는 참신함을 앞세운 이미지에 가벼운 재즈풍의 노래로
올해 그래미어워드를 석권했다.
최우수 레코드, 최우수 앨범, 최우수 노래를 휩쓸었으니 가히 석권이라 할만한 성과다.
이러한 경우는 최근 들어 1981년 크리스토퍼 크로스 이후에
20여년만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신문 보도인데 내가 아는 기록하곤 좀 다르다.)
그런데 이 가수의 노래를 듣다 깜짝 놀란 부분이 있는데
바로 이 가수의 분위기나 창법이 내가 정말 좋아하는 팝가수 JANIS IAN과
너무도 흡사하다는 점이었다.
JANIS IAN은 호소력 강한 짙은 허스키 보이스를 가진 여가수로,
지금은 이미 50대에 들어섰지만 10대 시절부터 천재적인 싱어송라이터로
인정받던 재원이다.
바로 이 두 사람의 음악적 색깔이 비슷하다는 데서부터 골치가 아파지기 시작한다.
그 과정을 도식적으로 설명하면 이렇다.
일단 어떤 가수가 선배 가수를 흉내냈다(흉내를 냈다는 것은 다분히 내 감성이다).
그 선배 가수는 내가 무척 좋아하는 가수다.
그런데 선배 가수는 매니아층만 이루었지 대중적인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그러나 흉내를 낸 가수는 커다란 성공을 했다.
그렇다고 그 부분이 배가 아프냐면 그것은 전혀 아니다.
다만 그렇게 성공한 가수가 언론을 통해 누구누구로부터 음악적 영향을 받았다는
기사가 하나도 보이지 않아 섭섭했던 것이다.
이것도 섭섭한데 마음이 답답한 이유가 매우 소심한 성격 때문이라는
결론적 사실이 또한 사람을 답답하게 한다.
그래미상을 받은 노라존스가 제니스이언에 대한 언급이 없어 섭섭하던중
검색하던 기사중에 흥미로운 기사를 발견했다.
올해 그래미상은 뉴욕 출신의 신인 여가수에게 밀어주기를 함으로써
9.11테러에 대한 뉴욕 시민들을 위로하고 미국의 애국심을 다시 불러일으키려는
의도가 보인다는 기사였다.
단 한 장의 앨범만으로 그래미 어워드를 석권했다는 점에서 유추된 분석인 듯하다.
그리고나서 그때부터는 오만가지 부정적인 상상들이 머릿속을 지배하기 시작했고
그러한 상상들은 점점 더 극단으로 치달아 기분까지 불쾌해지기에 이르렀다.
어쩌면 지금은 활동이 뜸한, 그리고 전성기의 음악성을 잃었다고 할 수 있는
제니스이언의 옛모습을 보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질 수도 있는 이 상황에서
이러한 부정적인 사고가 온몸을 감싸게 되니 이 또한 부끄럽고 답답하다.
이러니 아무나 붙들고 얘기를 하고 싶을 수밖에.
* * *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해 자신도 모를 애착을 보인다.
나는 그것을 ‘충성’이라는 말로 늘 표현한다.
표현에 쓰인 단어가 다분히 투박하고 전근대적이긴 하나
내 머리로는 그것 말고 달리 표현할 적절한 단어가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그 충성에 대한 관념 때문에
부끄러워해야 할 소심함을 의도적으로 감싸 안으려는 건지도 모르겠다.
오랜만에 글을 쓴다면서 하필이면 건국 이래 반미 감정이 가장 나쁘다는 요즘,
미국 여가수를 놓고 이러쿵저러쿵 주절거리게 된 것도 그리 반갑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도 자판을 신경질적으로 두들기고 있는 걸 보니 답답하긴 답답했던 가보다.
사람들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일은
자신이 아끼고 좋아하는 것의 품위가 손상되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찾아오는 모양이다.
노라 존스의 노래를 들으며 나는 그것을 절실하게 느낀다.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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