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새해가 되면 원치 않아도 바라는 일이 생긴다.
아니, 바라는 일을 기원하는 시간이 생긴다.
그러면서 올해는 뭘 바랄까 생각에 젖곤 한다. 하지만 언제나 그 생각의 결론은 뻔하다.
식구들 아프지 않고 건강하고 돈이나 많이 생겼으면 좋겠고
불의의 사고 없이 모든 것이 자연의 섭리대로 진행되었으면 좋겠다는,
소원의 교과서 같은 내용들이다.
올해 초에도 아마 그런 소원을 빌었던 것 같다. 아니, 분명 그랬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처럼 한해가 다 가는 이때 올해를 돌이켜 보면 과연 그것이 이루어졌을까?
식구들 아무 일 없는 걸 보니 모두 건강히 살고 있는 것 같고
밥 굶은 기억도 없고 주체못할 정도로 돈이 넘쳐나진 않는 걸로 보아
돈도 굶어죽지 않을 만큼 벌었나보다.
그러니 올해는 더도 덜도 말고 딱 적당히 지낸 셈이다.
그런데 가만히 기억을 더듬어 보니 올해에는 다른 해와는 다르게
매우 중요한 일 세가지를 이루었다.
우선 축구팬으로서 월드컵에서의 선전이 그것이다.
단 1승에 목말라 했고 16강을 목 놓아 외쳤는데 정말 기적 같은 일이 벌어져
4강이라는 엄청난 성적을 올렸다.
전 국민들도 열광했고 거리마다 사람들로 넘쳐났으니 정말 꿈같은 일이었다.
세계적으로도 평생 한번 볼까 말까한 월드컵 경기를
개막전과 한국경기 2경기를 포함해서 7경기나 보았으니
분에 넘치는 소원 성취를 한 셈이다. 아마 다시는 이런 기회가 없을 것이다.
또 하나의 소원은 대통령 선거 4번만에 처음으로 맘에 내키는 투표를 했고
그것이 또 당선으로 이루어졌다.
월드컵이야 온 국민이 원했지만 대통령 선거란 지지 성향이 각자 다르니
이것을 미화시킬 수는 없다.
다만 내 마음속에 그렸던 작은 기적이 일어난 것으로 꿈이 이루어졌다는 생각한다.
마지막 한 가지는 평소에 바라던 신문 기고가 이루어졌다.
종합일간지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전국적으로 엄청난 판매망을 가지고 있는 신문에
한자리를 잡고 내 이름이 제목으로 걸린 칼럼을 맡았다.
오래전부터 그런 기회가 오길 기대했었는데 어느 순간 우연한 인연으로
그 꿈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동안 잡지나 인터넷, 방송원고 등 제도권 밖에서의 연재는 꾸준히 이어졌는데
이렇게 제도권 안으로 들어가 글을 쓰게 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이렇게 세 가지 바람을 이루었지만 언제나 그렇듯
그 이루어짐의 끝은 허탈함만이 남곤 했다.
무슨 일 한 가지가 이루어지면 세상이 확 뒤바뀔 것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막상 이루어진 다음 순간은 그 전의 순간과 다름이 없다.
오히려 더 허탈하고 무기력해졌을 뿐이다.
이루어진 꿈 치고는 해당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런가?
하긴 월드컵 4강은 온 국민이 원했고
대통령의 당선은 50%의 국민이 원했을 것이니
정작 나만의 바람이 이루어진 것은 하나뿐이다.
어쩌면 그런 눈에 보이는 이루어짐보다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직 곁에서 그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이 더 커다란 행복일지 모른다.
바라는 것을 이룬다는 것은 좋은 일만이 아닌가 보다.
차라리 바라지 않던 일이 이루어지지 않았음에 더 행복해야 할 것이다.
* * *
내년에도 나는 식구들이 건강하고 돈이 많이 벌면 좋겠다는
매우 평범한 바람을 가질 것이다.
그러나 내년 이맘때쯤에 나는 어떤 글을 쓰고 있을지 모른다.
그저 막연히 올해보다 더 좋은 일들이 이루어졌길 기대할 뿐이다.
아니, 바라지 않는 일들이 이루어지지 않기를 더 희망한다.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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