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이름이 적힌 수건

아하누가 2024. 7. 7. 00:35



집들이 겸 자리를 마련한 후배의 집을 찾았다. 

서른이 갓 넘은 나이에 혼자 사는 남자치곤 깔끔하게 정리된 집이었다. 

모임의 후배들과 함께 편한 자세로 있다 화장실을 찾았다. 

세수를 마치고 어딘가 당연히 걸려 있을 수건을 찾았다. 

보통의 집이라면 수건이 흔히 있는 장소에 걸린 수건을 찾아 손으로 꺼내려는 순간, 

수건 아래 부분에 선명하게 적힌 글씨가 보인다.

 

겨우리

 

진한 매직으로 쓰여진 글씨는 누구라도 쉽게 눈에 띌 만큼 선명하다. 

매직으로 수건에 이름을 쓴다는 일은 일반 사람들에게는 매우 생소한 일일지는 모르나 

군대에 다녀온 이 땅의 남자들이라면 매우 친숙하게 받아들여지는 장면이다. 

 

통일을 강조하는 군대의 문화와 생활방식은 

지급받는 군복이나 속옷, 세면 용품, 침구 등 모든 것이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따라서 내 것과 네 것이 분명히 구분되어야 하는 몇 가지 용품에는 

남들도 쉽게 알아볼 수 있게 유성매직으로 진하게 자신의 이름을 써넣는다. 

가끔 자신만의 개성을 살린답시고 멋들어진 필체로 화려한 싸인을 남겨두는 사람도 있는데 

대부분 갓 입대한 신참들이 하는 일이다. 

그 표식은 남들이 더 알아보기 쉽게 하는 것이 더 우선된 목적이므로 

결국은 대부분 자신의 이름 석자를 정갈하게 써두게 된다. 군복에도 속옷에도 마찬가지. 

다만 그것들은 평소에는 남들에게 이름이 쓰여진 부분을 보여줄 이유는 없고 

단지 빨랫줄에 걸려있을 때 구분을 쉽게 하기 위한 목적이다. 

그러나 수건만큼은 자신의 관물대(자신의 용품을 보관하는 곳)앞의 

가림막 역할도 하기 때문에 항상 이름이 선명하게 쓰여진 수건은 내무반 안에서 

쉽게 볼 수 있다. 

따라서 군대의 추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매직으로 커다랗게 이름이 쓰여진 수건이란 

저마다의 가슴속에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게 된다. 

 

 

그런 수건을 보면서 잠시 군대 생활의 추억에 잠긴다. 

혹시나 군대에서의 느낌이 조금 더 살아날까 냄새도 맡아보고 꼼꼼히 얼굴도 닦았다. 

정말 오랜만에 옛 추억을 되살려준 후배의 생활방식에 고마움을 느끼며 욕실 문을 나섰다.

거실에는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둘러앉아 있다. 

집의 주인인 후배에게 독특한 생활방식 덕분에 

좋은 추억이 되살아났다는 말을 꺼내려는 순간 후배는 무슨 생각이 났는지 

내 얘기를 듣기도 전에 큰소리로 외쳤다. 

그리고 군대에서 있었던 아름다운 나의 추억은 그 짧은 외침속으로 금방 사라져버렸다. 

 

 

“겨울아!”

“.....?”

 

 

후배의 외침에 건너편 작은 방에서 조그만 강아지 한 마리가 뛰어나와 

내 앞에서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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