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디지털카메라 팔기

아하누가 2024. 7. 7. 00:36



그동안 잘 사용해오던 디지털 카메라를 중고 시장에 내놨다. 

사용에는 별 이상이 없고 단지 더 좋은 걸 장만하고자 하는 계획으로 시장에 내놓았는데 

어째 마음이 편치 않다.

마음이 편치 않은 이유는 그동안 손때가 묻은 애정 때문이기도 하고 

또 쓰던 걸 남에게 돈 받고 팔아야 하는 행위가 

그동안 살아온 정서와 썩 어울리지 않는 다는 느낌에서다. 

하지만 카메라라는 것이 예전과 다르게 장롱속에 보관되는 귀중품은 아니다.

디지털 시대에 맞춰 시간만 지나면 구닥다리가 되어버리는 전자제품의 성격이 되었다.

좋은 각겨에 되팔아 자금을 마련하고 

사는 사람은 싼 가격에 적당한 모델을 구입할 수 있으니 이게 또 요즘 사회다. 

그러나 자연스럽지 않다는 것, 그래서 어색하다는 것은 여전히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긴다. 

 

 

나름대로 정성들여 팔게 된 사유와 사용 내역, 가격 등을 올리니 많은 메일이 왔다. 

가격이 마음에 들어서인지 카메라가 나름대로 좋은 것이어서 인지 

생각보다 많은 구매자 때문에 한대 뿐인 카메라의 임자를 찾느라 나름대로 고민했다.

그러다 가장 만만한 구매자를 찾아 전화하고 그 다음날 만나기로 약속, 

이제 나의 카메라는 새로운 임자를 찾아가게 된다. 

 

그날밤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과연 쓰던 것을 돈 받고 파는게 잘하는 일인지, 

얼마전 비압축 모드로 촬영하여 인쇄에 들어간 인쇄물이 어떻게 나왔을지 궁금했고, 

또 판매 가격은 괜찮은 건지, 

새로운 카메라 구입에 들어가는 적잖은 비용은 또 어떻게 마련해야 하는지,

추운 걸 싫어하니 겨울 지나고 사야겠다고 생각하니 

카메라 없이 보내는 기간에 또 무슨 일이 생길지....

많은 생각들이 떠올랐다. 

그러나 그 많은 생각중에서도 가장 괴로웠던 것은 

막상 카메라가 없다고 생각하니 깜깜해지더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주사위는 던져진 일. 구입의 희망에 들떠 있는 구매자에게 연락하여

안팔기로 했다는 말을 한다는 건 돈 받고 파는 일보다 더 찜찜한 일이다.

 

 * * *

 

다음 날 아침. 구매자로부터 메일이 왔다. 

돈이 아직 마련이 되지 않았다며 다른 임자를 찾으라는 메일이었다. 

차마 전화에 대고 맣라기 민망했던지 짧막한 메일에 다소 미안한 느낌이 담겨있다.

결국 카메라는 팔지 않고 아직 내 손에 있다. 

세상의 모든 물건에는 임자가 따로 있다지?

아마 오래도록 좋은 사진 많이 찍다가 나보다 더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그냥 주어버리라는 뜻인가보다.

 

하룻밤 동안이지만 생각의 차원에서 카메라는 내손을 떠났었다. 

가까이 있어서 몰랐던 소중함을 충분히 느낄 만한 시간이었다고나 할까.

가까운 곳에 있어 그 가치를 느끼지 못했던 많은 것들이 생각난다. 

소중한 것이면서도 홀대받는 것들. 

몇년 째 장롱 위로 자리잡고 있는 내 기타. 사놓고 듣고 보지도 않던 책과 CD들. 

그리고 비교할 수 없이 소중한 주위의 사람들....

이미 사라졌을 때야 가치의 소중함을 느끼는 바보짓을 또 하지 말아야겠다. 

있을 때 잘 하라는 말이 농담만은 아닌 모양이다.

더불어 내키지 않는 일도 하지 말아야겠다.

 

사진만 찍으라는 카메라인줄만 알았는데 여러가지 가르쳐준다.

파인더를 통해 무언가를 유심히 본다는 것은 

가까이 있는 것들을 더 소중하게 느끼게 해주는 모양이다.

 

 

 

 

 

아하누가

 

 

 

'세상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울 사람 시골가기  (0) 2024.07.07
카메라가 달린 핸드폰  (0) 2024.07.07
이름이 적힌 수건  (0) 2024.07.07
필리핀 여가수의 CD  (0) 2024.07.07
노라 존스 Norah Jones  (0) 2024.0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