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서울 사람 시골가기

아하누가 2024. 7. 7. 00:38


태어날 때부터 사는 곳이 서울인 내게 시골이란 공간은 매우 낯선 곳이다. 

하지만 현재 강원도 산골에 집도 한채 짓고 있겠다, 

더욱이 그곳은 아내가 나고 자란 고향이니 

이제 어느 정도 시골에 익숙해져야겠다는 생각에 시골을 자주 찾게 되는 요즘이다.

 

이 좁은 땅덩어리에 시골이 멀어야 얼마나 멀겠으며, 

급변하는 경제성장과 사회변화 속에 시골이라고 해야 서울하고 

문화적으로 다른 게 뭐가 있겠냐는 생각에 낯선 어색함을 친근함으로 바뀌도록 

스스로 몇번씩 다짐하곤 한다. 

그 다짐이 효과를 발휘한 것인지 아니면 예상했던 대로 

시골이란 곳과 서울이란 곳의 거리적, 문화적 차이가 좁아진 탓인지 

주변 환경이 다른 것 말고는 사람사는 사회의 큰 차이는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한번 두번 횟수를 늘리다 보니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몇가지 이채로운 시골만의 장면이 만들어진다. 

이렇게 조금의 차이라도 느낄 수 있으니 시골은 아직도 내게는 새로운 공간이다. 

작은 일들, 그러나 서울이 고향인 내게는 크게 놀랄 수도 있는 

몇가지 얘기를 떠올려본다.

 

* * *

 

1. 초등학교 동문

 

아내가 자란 고향 근처의 식당에 들러 점심식사를 했다. 

아내는 식사를 주문하는 아줌마와 아가씨에게 일부러 서울에서 온 티를 내지 않으려 

친근감있는 말투로 물었다. 

 

"여기 초등학교 나왔어요?"

 

다정한 아내의 말투가 별로 대수롭지 않은 듯 고개만 끄덕인다. 

같은 초등학교 출신이란 말에 일말의 공통점을 찾은 아내는 

더 기분이 좋아졌는지 내내 호들갑스러운 말을 이었다. 

 

"어머, 저도 여기 초등학교 나왔어요? 중학교까지 여기서 다닌 걸요?...."

 

그러자 음식주문을 받던 아줌마의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럼 여기서 그 학교 안 나온 사람도 있더래요?"

 

 

2. 모기

 

새로운 집을 짓게 되는 곳 주변엔 두 가구가 산다. 

70대 할머니 혼자 사는 집과 60대 이장님 부부댁이다. 

주변에 작은 습지가 있어 여름에는 모기떼에 시달릴 것 같은 불안감이 들었다. 

마침 이장님 부인이 지나가기에 다정한 듯 물었다.

 

"안녕하세요? 여기 모기 많나요?"

 

쑥스러운 듯 대답하는 아주머니의 말투 또한 매우 투박하다.

 

"모기 별로 없더래요."

 

이런 산골에 모기가 없다면 아무도 믿을 수 없을 것이다. 

거기다 모기 공장으로 불려도 손색이 없을만한 습지가 집앞에 자리잡고 있는데 

모기가 없다면 누가 믿으랴. 

이번엔 질문의 내용을 달리해서 물었다. 

 

"한여름에는 좀 있겠죠?"

 

그러자 여전히 표정의 변화없는 아주머니가 반문했다.

 

"여름에 모기가 없으면 그게 여름이더래요?"

 

 

3. 황새

 

새로 짓는 집앞에는 커다란 강이 있다. 

댐으로 이어지는 강은 여름 한철 물을 막아두게 되어 

8월말에는 거대한 호수로 변한다고 한다. 

그 강물은 상수원 보호지역으로 지정된 곳으로, 

주민들의 출입을 통제하기 위해 커다란 펜스가 가로막고 있다. 

그러나 몇 안되는 동네 사람들이 지나는 통로가 있고 

또 별 제재없이 통행이 가능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지금은 물이 많지 않은 그곳에는 

작은 강을 따라 커다란 초지가 방대하게 펼쳐져 있어 

마치 동물의 왕국에 나오는 사자 한마리가 뛰어놀면 딱 적당할 것 같은 

야성적 분위기가 감도는 곳이다. 

그런 느낌을 증명이라도 하듯 목이 길고 늘씬한 황새류(해오라기로 추측) 몇마리가 

동양화에 나오는 한적한 풍경처럼 노니고 있다. 

이장님댁에 들러 잠시 마루에서 물을 한잔 얻어먹다 그 장면을 보고 말을 건넸다. 

 

"참 멋있네요. 황새가 날아가는 것도 멋있구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고개를 휙 돌려 강물 쪽을 쳐다보던 이장님 부인이 대답했다. 

 

"멋만 있지, 살도 별로 없더래요. 맛도 없고....."

".....!"

 

 

 

내가 있는 이곳이 시골은 분명 시골인 모양이다.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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