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에 축구하는 학교 운동장은 뒷문을 개방하지 않는다.
정문으로 들어가면 운동장과의 거리가 너무 멀기에 뒷문을 이용하는데,
언제부턴가 뒷문을 개방하지 않아
담을 넘어 운동장에 들어가는 일을 몇년째 반복하고 있다.
담을 넘는 일도 수차례 반복하다보니 이력이 붙어
커다란 스포츠백을 어깨에 메고도 훌쩍훌쩍 넘을 수 있게 되었다.
길에 오가는 사람들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기도 하고
단지 운동장에 들어가는 것 뿐인데 왠지 모를 껄끄러움도 있었지만
그것도 지나친 횟수의 반복에 의해 정상적인 생활로 승화되는 단계에 이르렀다.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축구에 심취하고자 운동장을 찾은 어느 일요일.
운동하러 들어갈 때 그랬던 것처럼 운동을 마치고 나오는 순간에도 담을 넘어야 한다.
언제나 그랬던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담을 넘는데
울타리 밑에 작은 쪽지와 쪽지가 바람에 날아가는 것을 막기 위해
쪽지위에 올려둔 작은 돌맹이가 보인다.
쪽지에는 여자로 보기엔 투박한 글씨로,
그렇다고 남자로 보기에는 너무도 정갈한 글씨가 보인다.
"8월 1일 오전 11시 30분경, 이곳에서 열쇠를 주웠습니다.
정문 관리실에 맡겨둘테니 찾아가세요."
누군지 모르지만 참 자상한 배려와 따뜻한 마음씨를 엿볼 수 있었다.
남의 일이라도 이런 일들을 내가 직접 곁에서 훔쳐볼 수 있는 것은
살아가며 몇 안되게 느낄 수 있는 훈훈함이다.
"이거 봐!"
축구를 마치고 나오는 동료들에게 쪽지를 보이니
대부분 별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고개만 끄덕거리고 있다.
떨어지지 않는 눈길로 쪽지를 쳐다 보다 혹시나 쪽지가 바람에 날려가지 않을까
돌맹이를 안정되게 자리잡아 두었다.
그리고 내 자동차가 주차된 곳으로 향했는데....
열쇠가 없다.
그리고 떠오른 생각은 내가 학교 담을 뛰어넘을 때
열쇠가 떨어졌을 수도 있다는 생각과 그 지점에서 본 문제의 쪽지.
그리고 다시 뛰어가 보니 아마도 그 쪽지에 나온 열쇠가
내 열쇠가 맞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문 관리실에 가서 물어보니 그런 일 없다고 한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다시 들렀는데도 아직 그런 일이 없다고 한다.
혹시나 해서 연락처를 알려주고 동료차를 타고 일단 집으로 들어왔다.
오후 4시쯤 관리실에서 전화가 왔다. 누군가 열쇠를 맡기고 갔다고 했다.
작은 일이긴 하지만 사람 사는 맛이 새롭게 느껴지는 것 같다.
열쇠를 주워 잘 보관했다가 관리실에 맡겨준 누군가도 고맙고 관리실 사람들도 고맙다.
이렇게 가끔씩 생기는 훈훈한 일들에 그나마 사는 맛이 생기는 모양이다.
버스를 타고 운동장 관리실을 찾았다.
이미 몇번 방문으로 얼굴이 익은 수위 아저씨가 반갑게 맞아준다.
열쇠를 건네며 순박하게 묻는다.
"이거 맞죠?"
틀릴 리가 있나. 당연하겠지.
"고맙습니다. 열쇠 주우신 분께 내 대신 고맙다는 말이라도 좀 전해주셨나요?"
"물론 했습니다. 어떤 이쁘게 생긴 여학생이 왔더라구요."
수위 아저씨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나는 질문을 던졌다.
"연락처 안 적어놨어요?"
"......?"
아, 이 아름다운 세상을 나는 아직도 TV 드라마로 알고 있다.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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