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에 집을 짓기 시작한 이래 시간만 나면 강원도 현장으로 달려갔다.
집주인으로서 또는 집을 가지게 된 한 가장의 설레임으로 인해
서울에서 강원도까지 가는 먼길은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고 한달음에 달려갈 수 있었다.
여름이 점점 다가오던 어느날, 날씨는 급격히 더워졌고,
집을 짓는다는 즐거움의 약기운도 점점 떨어져
신나게 달려가던 강원도까지의 거리는 점점 멀어져가는 고된 길이 되었다.
그래도 좋은 집을 지어야 한다는 집주인 본연의 생각으로 마음을 굳게 다지고
길을 떠났지만 힘든 길은 역시 힘든 길이라 운전은 점점 고된 일이 되었다.
양평쯤 도착했을 무렵 조금 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어차피 한달음에 달려가 현장의 몇 가지 상황을 확인하고
그길로 다시 돌아와야 하는 일정이니 만큼
경치좋은 곳에 자리잡고 풍광에 취해 한숨 퍼질러 잠을 자는
행복한 일정은 도저히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쏟아지는 잠과 피로를 꾹 참고 묵묵히 강원도 현장으로 향했다.
잠이 오고 피곤이 쏟아졌지만 현장을 확인한다는 기쁨과
곧 서울로 돌아가야한다는 촉박한 일정으로 인해 꾹 참아가며
한걸음씩 한걸음씩 강원도로 향하고 있었다.
보통의 이런 경우라면 현장에 도착할 즈음되면 목적지에 왔다는 설레임에
피곤도 사라지고 새로운 힘이 솟아나야 할진대
어찌된 일인지 이날은 오히려 더 피곤이 쏟아지고 긴장의 해소로 인해
그 피곤은 더 가중되고 있었다.
현장에 도착하니 작업차량은 보이는데 현장 특유의 소란스러움은 들리지 않는다.
좁은 진입로를 따라 들어가고 있는데도 현장의 소음은 들리지 않는다.
현장에 거의 도착했을 때까지도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막 울기 시작한 매미 울음과 근처 산에서 들리는 새소리만이 선명하게 울려올 뿐이었다.
아직 공사가 한창인 집에 들어섰다.
식사를 마친 후여서 그랬는지 인부 서너명이 단열작업을 하고 남은
두툼한 스티로폼을 깔고 드러누운 채 낮잠에 빠져있다.
그 장면을 본 나는 매우 분노했다.
단지 현장의 상황을 확인하고 작업인부를 격려하기 위해 졸음과 피곤을 참으며
한달음에 이곳까지 왔건만 정작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모두 낮잠을 자고 있으니
이 어찌 분노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깊어갈수록 그 노기는 점점 식지 않았고 급기야 가장 가까이에서 자고 있는,
큰형님뻘 되어 보이는 나이의 인부 한사람을 깨우기에 이르렀다.
"아저씨!"
깨우는 소리를 들은 작업자는 혹시라도 단잠에서 깰까
눈꺼플을 반만 연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나의 분노는 드디어 폭팔했다.
"스티로폼 남는 거 없어요?"
인부는 반쯤 떴던 눈을 다시 감으며 두글자로 이루어진 단호한 문장으로 대답했다.
"없어!"
이 짧막한 대답에서 풍기는 의미속에는 한번 더 그따위 쓸데없는 질문으로 단점을 깨우면
입이라도 찢어버리겠다는 무서운 의지가 숨어있음을 쉽게 느낄 수 있었다.
하는 수 없이 공사 현장을 둘러보다 넓은 합판에 각목을 덧댄,
높은 곳에 작업할 때 발판으로 쓰이는 판대기 한개를 찾았다.
손수건을 꺼내 대충 먼지를 털어내고 인부들 자는 작은 틈을 찾아 세팅을 한 뒤 벌렁 누웠다.
딱딱하고 지저분하여 매우 불편했지만 몸이 피곤한 이 상황에서 더 이상 바랄 것은 없었다.
정말 서럽다. 푹신한 스티로폼을 하나도 남겨두지 않았다니....
눈을 감고 잠시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주변의 웅성거림에 잠을 깼다.
"저 사람은 누구더래요?"
"몰러. 거진가?"
희미한 잠결 속에 누군가 내게 묻는 소리를 들었다.
"아저씨는 어서 왔더래요?"
".......저요?"
잠결에 대답했다.
"저는 집주인인데요?"
갑자기 지나간 몇가지 장면들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스쳐갔다.
집을 짓기 위해 관련 서적과 인터넷 정보를 통해 알게 된 수많은 내용들.
그중에서도 집을 짓기 위해 집주인이
얼마나 많은 고초를 견뎌야 하는가에 대한 부분이 떠올랐다.
그거 모두 맞는 말이다.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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