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를 타고 집을 나서는데 옆자리에 CD 한 장이 보인다.
며칠전 필리핀 마닐라에 갔을 때 어느 시장 모퉁이 노점상에서 구입한 CD인데,
조잡한 표지와 표면 인쇄 상태가 정품이 아니라 불량 복제품이라는 사실을
뚜렷이 말해주고 있는 CD다.
어떤 노래를 부르는 어떤 가수인지 내가 알려고 해야 알 수 없고
다만 추천이라는 단어 하나 믿고 노점상 주인이 집어준 것을 덥썩 들고 온 것이다.
차안의 오디오에 넣으니 노래가 나온다.
음악의 나라, 음악을 사랑하는 나라 필리핀답게 노래가 듣기 좋다.
가사가 영어가 아니라 따갈로그라는 그들의 언어로 되어 있어
미국적이지도 않고, 또한 불과 며칠전 마닐라에 있었던 일들이 떠오르니 더욱 좋다.
이렇게 좋은 음악이 계속 흘러나와 복잡한 도로에서의 시간을 행복하게 만들어주었으면
얼마나 좋겠냐만 그 CD는 3번째 노래에 들어가며 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노래가 모두 12곡이 들어있는데 3번째 곡부터 10번째 곡까지
못들을 정도로 잡음이 흘러나왔다. 12곡중에 무려 8곡을 날려버린 셈이다.
CD를 꺼내어 자세히 살펴보니 뒷면이 완전히 긁혀져 있다.
CD는 복제품도 음질의 차이가 없다는 사실을 믿고 덜컥 사버린 내 잘못이다.
그리고 그냥 산다는 기분에 사지 설마 이 CD를 귀담아 듣겠냐며 방심한 이유도 있다.
어쩌면 CD를 이렇게 만들어 팔까.
값도 무려 40페소(약 1,000원)나 받았으면서 너무도 성의가 없다.
우리 같으면야 MP3를 다운 받아 이를 다시 트랙으로 바꾸어 CD로 만들어도
이보다 더 잘 만들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아무리 복제품이라고 해도 겉면을 장식한 인쇄는 보통의 버블젯 프린터보다
더 선명하지 못하고 겉면에 인쇄된 실크스크린은
그야말로 조악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좋은 여행의 추억을 위해 구입한 CD가 사람을 매우 약오르게 한다.
우리 같으면 아무리 복제품이라도 진품이나 별반 차이 없게 잘 만들었을텐데
참으로 답답하게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한국 같으면 이랬을 텐데, 한국 같으면 저랬을 텐데.... 라는 생각을 반복하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 * *
세상의 모든 불만과 실망은 비교에서 나온다.
비교의 대상이 없었다면 내가 그렇게 불만을 느낄 수 없었을 것이며
또한 내가 그렇게 실망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내가 스스로 내 속을 채우지 못함은
분명 내 속 어딘가에 비교의 대상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임이 확실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그 비교의 대상이라는 것이
일반의 경우를 말한다기 보다 ‘최상’의 경우를 기준으로 한다는 점이다.
최상의 경우라는 것이 스스로 경험한 사실 중에서 벌어진 최고, 최상의 경우라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최상의 경우는 그것이 아니고
자신의 경험 외에 어디선가 주워 들은 남의 경험까지 모아
그중에서 가려낸 최고치를 기준으로 한다는 점이다.
어디서 주워 들은 경험이 사실인지 아닌지도 확인하지 않으면서.
비교의 대상이 있는 한 세상을 받아들이는 것은 매우 피곤한 일이다.
비교를 해야 할 것을 비교하고 비교에 쓰일 기준은 언제나 적정해야 한다.
그러한 생각을 하고부터는 필리핀 여가수의 CD를 잘 듣는다.
한 장의 CD에 4곡밖에 들을 수 없지만 그나마 매우 소중한 음악이다.
아마도 비교의 행위가 없었다면 현실을 현실 그대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불만도 없었을 게다.
오늘도 나는 이름모를 필리핀 여가수의 CD를 들으며 생각에 잠긴다.
음악은 아름답지만 비교는 아름답지 않다.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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