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96

며칠 밤을 새워 일했더니 오른쪽 어깨에 꽤나 신경쓰이는 담이 걸렸다. 장농 밑에 반짝거리는 500원짜리 동전을 꺼내기 위해 엎드린 채 무리한 힘을 주었을 때 온몸이 마비된 듯한 느낌이 드는 고통스러운 증상이다.  글을 쓰기 위해 잠시 사전을 찾아보았는데, 담이라는 단어에 내가 원하는 의미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이 '담'이라는 말도 제대로 된 표준어 인지 모르겠고, 더욱이 담이 걸린 건지, 결린 건지도 알 수가 없다. 하지만 하고자 하는 얘기의 의미는 그것이 아니니 대충 어깨가 마비되는 증상이 왔다고 생각하자.  컴퓨터에 앉아 며칠을 꼬박 새며 같은 작업을 반복했더니 오른쪽 어깨가 말을 듣지 않는다. 팔이 어깨 위로 올려지지 않는다. 이거 큰일이다. 며칠 지나면 나아질 거라 생각했는데 그렇지도 않다. ..

마사토

마사토라는 흙이 있다. 마치 돌처럼 생겼지만 손으로 조금만 힘을 가해도 모래처럼 부서지는, 흙도 아닌 돌도 아닌 흙이다. 그렇다고 보기 힘든 것도 아니고 우리나라 어디서든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흙의 한 종류다. 이 흙은 입자가 굵고 세균이 거의 없어 종자 파종시에 발아에 용이하고 균에 의한 피해도 없고 농사에도 이용되며 배수 또한 잘 되기 때문에 여러 분야에서 많이 사용한다고 하는데그거야 내가 알바 아니고 아무튼 마사토는 그냥 흙이다.   강원도 횡성집 마당에 심은 잔디는 나날이 잘 자라고 있지만 땅을 잘 고르지 못해 잔디 또한 고르지 않고 울퉁불퉁하다. 누군가가 마사토를 잔디위에 덧깔아 평평하게 바닥을 다져야 한다는 귀띰을 했다. 땅이 고르든 아니면 울퉁불퉁하든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연의 섭리요 신의..

선(線)

내게 남보다 좀 특이한 재주가 하나 있다면 바로 선에 관한 것이다. 막연히 선(線)이라 하면 도통 개념이 잘 정립되지 않을테지만 간단하면 말하면 줄긋기를 잘한다는 것이다. 줄긋기 뿐만 아니라 줄 간격 맞추기, 눈대중으로 평행 맞추기 등 재주라고 하기에도 뭔가 부족해 보이는 것들이다. 자 같은 받침점 없이 연필로 종이에 일정한 간격으로 선을 긋는 대회가 있다면 한번 나가보고 싶은 생각을 늘 가지고 있다.  내가 말하는 선이란 디자인에서 말하는 시각적 크기로, 측정도구에 의지하여 정확한 간격을 이루는거나 평행 수직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주변상황과의 상관관계로 벌어질 수 있는 실질적 간격을 철저한 시각에 의존한 시각적 크기다.   얼핏 대단한 재주 같기도 하지만 이런 재주 아닌 재주는 세상에 이름을 날리는데 ..

나는 왜 펜탁스카메라를 좋아하는가?

내가 펜탁스 카메라를 구입하게 된 사연은 매우 싱겁다. 당시 NIKON의 D70과 CANON사의 신제품 350D를 저울질하다 실물이나 구경하자며 평소 잘 가던 카메라숍을 찾은 것이 뜬금없이 펜탁스 카메라를 구입하게 된 충동의 시발이었다. 구입 후보 리스트에 이름도 없었던 펜탁스 카메라를 들고 앉아 있는 자신의 모습을 택시안에서 발견하곤 허무하고 황당한 웃음을 짓던 기억이 아직 새롭다. 생각지도 않았던 카메라의 갑작스런 구입과 평소 눈여겨 보지도 않았던 펜탁스 카메라의 등장은 잠시 생각할 여러가지 여지를 주었다. 왜 나는 생각지도 않았던 펜탁스 카메라를 냉큼 집었을까? 아마도 메이저급 메이커에 대한 無개성의 반발심리가 그 첫번째 이유였을 것이고, 조금 더 전문가 이미지에 가깝다는 두번째 이유는 자위에 불과..

서울사람 시골가기-2

1. 장난감 점심 먹으러 오라는 이장님의 연락을 받고 찾아 갔더니 이장님 댁엔 이미 언덕 너머 사시는 노부부가 자리잡고 읹아 있었다. 데려간 아들 두 녀석이 치고 박고 장난치자 이를 지켜보던 노부부 할머니의 한말씀. "그래서 키울 때는 딸이 좋다니깐. 딸 하나 더 낳지 그러슈?""그러게 말이에요. 근데 딸은 정말 얌전히 잘 크나요?" 할머니 말씀인 즉 딸이 커가는 과정은 사내들의 그것하곤 다른데, 그 다른 점이 너무도 확연하여 매우 차이가 크다는 설명이었다. 딸들은 조신하게 인형을 모으거나 또는 놀고 난 자리도 깔끔하게 정리한다고 덧붙인다. 그리고 노는 문화도 상당히 달라 딸들에게는 장난감 자체가 사내들하고는 다르다고 설명했다. 장난감이 어떻게 달라지냐 물으니 이 할머니 말씀이 걸작이다. "사내들은 맨날..

새 핸드폰

핸드폰을 새로 바꿨다. 밧데리 한개를 잃어버린 핑계로 새로 장만했다. 핸드폰이란 도구는 전화를 걸고 받음에 그 목적이 있다는 보수적 관념으로 똘똘 뭉친 내가 번쩍거리며 광이 나거나 각종 편의장치가 줄줄이 달려 있는 핸드폰을 샀을 리는 없다. 언젠나 한박자 늦은 구매가 가장 경제적인 혜택을 가져온다고 착각하며 살다보니 핸드폰 번호를 바꾸는 일도 많았었다.  벌써 번호 바뀐 것만 세번째다. 번호를 바꾼다는 것, 그러니까 신규 가입으로 핸드폰을 구입하면 그 가격은 놀랄만큼 싸다. 번호가 바뀌면 상당히 불편하겠지만 그 정도의 불편은 싼 가격이라는 경제논리 앞에 그리 대수롭지 않은 불편으로 전락하게 된다. 이번에도 싼 가격과 걸고 받음의 기분 기능만을 생각하여 새 번호를 구입하려 했는데 고맙게도 번호 이동이라는 ..

도장

도장이라는 단어를 적고 나니 여러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무언가 약속을 굳게 다질 때도 도장을 찍는다는 표현을 하고 잘 지내던 사람끼리 헤어지려는 확실한 다짐을 할 때도 도장 찍는다는 표현을 한다.  그런가 하면 젊은 남녀가 어쩌구 저쩌구 하룻밤을 같이 지내고 난뒤 보수적 관념의 남자가 마치 상대가 제 여자라도 된양 '도장을 찍었다'라고도 표현하는 경우가 있으니 이 도장의 용도야말로 참으로 다양한 셈이다. 하지만 그거야 다 옛날 이야기지 요즘 세상이 또 어디 그런가. 세상의 모든 서명이 손쉬운 사인 제도로 바뀌어가는 추세다 보니 도장을 이용해야 하는 경우는 집문서가 오가거나 커다란 계약이 오가는 상황에서나 사용하게 되는게 요즘 도장의 용도일 것이다.   * * * 오후에 필요한 서류가 있어 시내의 공증사무..

꿈이란 게 깨어나서 생각해보면 모두 이상하지만 그래도 곰곰이 생각하면 그 상황과 등장인물의 의외성에 더욱 고개를 흔들게 된다. 이건 정신감정으로도 분석하기 힘들고 심령과학으로도 증명하기 힘든 영원한 수수께끼일 듯싶다.  지난 밤에 꿈을 꾸었다. 어느 꿈이든 마찬가지겠지만 그 등장인물과 배경, 그리고 행동들이 예사롭지 않다. 장소는 어느 대학교 강당이었고 상황으로 보아 나는 그 학교의 학생같은데 주변 교우들은 학교 동창들이 아니라 옛 직장 동료들이 더 많이 보인다. 교수인듯한 사람이 시험을 치르려는 듯 한명씩 실시테스트를 시키고 있는데 그 과목이 묘하게도 리코더 연주하는 시험이다. 나이 30 좀 넘은 사람이면 리코더라는 게 뭔지 잠시 헷갈리겠지만 리코더라는 것은 다름 아닌 어렸을 떄 음악시간에 배우던 '피..

어떤 제안

세상을 살다보면 자신보다 한수 위라고 생각되는 상황이나 사람을 만나게 된다. 때로는 그 상황이 불쾌하여 한수 높은 상대방을 애써 부정하게 되고 때로는 흔쾌히 상대의 고단수에 꼬리를 내리기도 한다. 이렇듯 간혹 불쾌하거나 치졸한 자존심 때문에 상대를 부정하는 경우도 있지만 고단수와 만나는 상황을 겪게되는 것은 상당히 유쾌한 일임에 틀림없다.  자주 가는 인터넷 커뮤니티는 많은 사람들이 접속하여 공통된 취미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곳이다. 하지만 이러한 가상의 조직 역시 사람들이 살고 부대끼는 곳이라 크고 작은 언쟁과 논쟁, 그리고 감정싸움이 따라다니는 모양이다. 결국 사람들이 그러한 감정의 조절실패로 상처를 입기도 하고 애꿎은 분위기만 썰렁해지고 만다.  내가 자주 가던 그 조직도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는..

우리나라에서 예쁜 여자들이 가장 많은 곳

남자들끼리 하는 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예쁜 여자들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곳은 어딜까? 정답은 여의도와 청량리라 한다. 여의도는 방송국이 모여있다는 것을 상징하는 장소로 연예인이 많음을 뜻하고, 청량리는 사창가를 일컫는 대표적인 장소로, 이곳에 가면 예쁘다는 여자들을 많이 볼 수 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나라의 예쁜 여자들은 TV나 술집에서 볼 수 있다는 뜻인데 얼핏 생각하면 그렇게 틀린 말만은 아닌 듯 싶다. 하지만 사람이 예쁘고 멋진 사실을 단지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만으로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람의 얼굴이 예쁘게 보이려면 일단 즐거움과 행복함을 얼굴에 가득 담고 있어야 한다. 일에 찌든 기분으로 억지 웃음을 띄운다면 그것을 보는 사람들에게 잠시나마 예쁘다는 느낌은 줄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