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을 새로 바꿨다.
밧데리 한개를 잃어버린 핑계로 새로 장만했다.
핸드폰이란 도구는 전화를 걸고 받음에 그 목적이 있다는
보수적 관념으로 똘똘 뭉친 내가
번쩍거리며 광이 나거나 각종 편의장치가 줄줄이 달려 있는 핸드폰을 샀을 리는 없다.
언젠나 한박자 늦은 구매가 가장 경제적인 혜택을 가져온다고 착각하며 살다보니
핸드폰 번호를 바꾸는 일도 많았었다.
벌써 번호 바뀐 것만 세번째다.
번호를 바꾼다는 것, 그러니까 신규 가입으로 핸드폰을 구입하면
그 가격은 놀랄만큼 싸다.
번호가 바뀌면 상당히 불편하겠지만 그 정도의 불편은
싼 가격이라는 경제논리 앞에 그리 대수롭지 않은 불편으로 전락하게 된다.
이번에도 싼 가격과 걸고 받음의 기분 기능만을 생각하여
새 번호를 구입하려 했는데 고맙게도 번호 이동이라는 게 생겨서
싼 가격과 동시에 내 입장에서는 상당히 호사스러운 핸드폰을 구입하게 되었다.
한박자 유행이 지난 제품이지만
드디어 나도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되었으니 상당히 반가운 일이다.
핸드폰을 인터넷에서 구입하고 다음날 물건을 받으니 바로 작동이 가능했다.
상당히 놀라운 시대적 변화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으니 그게 바로 전 핸드폰에 입력되어진 많은 전화번호를
새 핸드폰으로 이동하는 문제였다.
이걸 언제 다 하나하나 옮겨서 입력한다냐.....
"그거 대리점 가면 요즘 컴퓨터로 바로 이동해줍니다. 모르셨어요?"
"......?"
사무실 후배 직원의 귀뜸에 자못 놀라면서도
하긴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그 정도 기술력이 없겠냐고 고개를 끄덕거리며
근처 대리점을 찾았다.
그 회사 번호를 이용하는데 상당히 불친절하고 고압적이다.
산 곳에서 서비스 받으란다.
인터넷으로 샀다니까 본체도 안하며 입력된 전화번호 옮기는데 3,000원 내란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기분이 나쁘다.
자기들도 입력된 전화번호 이동해주는 프로그램을 돈내고 쓰는데
그 비용이 일년에 36만원이란다.
사정이야 알겠다만 그거야 고객 유치를 위해 서비스하려고 쓰는 기회비용 아닌가?
아무튼 기분이 나빠 문을 발로 걷어차고 나왔다.
그리고 무려 10여일만에
기존 핸드폰에 입력된 전화번호를 새 핸드폰에 옮기는데 성공했다.
물론 가끔씩 생각날 때마다 했으니 10일 내내 단순반복 노동을 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3,000원 가치 이상되는 고생인 것만은 사실이다.
* * *
번호를 새 기계에 하나하나 옮기며 번호 주인공들을 떠 올린다.
중요한 사람, 중요하지 않은 사람, 그리운 사람, 그리고 기억에도 가물가물한 사람....
숫자를 하나하나 입력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핑계로
연락이 이미 끊겼거나 또는 인연의 관점에서
그 수명이 다했다고 판단되는 사람들의 번호는 새로 입력하지 않았다.
아쉽지만 현실이다.
나도 누군가의 전화기에서 인연으로서의 수명이 다한채 지워져갔을 것이다.
새 전화기를 구입하면서 나는 또 한번 나의 인연을 정리한다.
그리고 새로 입력될 새 인연을 기대한다.
내가 주변에서 자주 전화통화를 하며 안부를 묻고
반가움을 표시할 사람이 몇명이나 있을까?
여유있게 생각해서 약 20명 남짓? 어거지로 우겨봐야 30명?
결국 고작 20명의 주변 인물로 인연의 끈을 만들어가고 있다.
새로 핸드폰을 구입하면서 나는 세상이 넓다는 말을 처음으로 부정해본다.
그리고 이제는 주변 사람의 숫자보다
인연의 깊이가 더 중요한 나이가 되었다는 사실도 새삼 느낀다.
새 전화기에 입력되지 못한 사람들로 인해
인연의 새 개념을 터득하게 되었음을 그나다 다행으로 생각한다.
2006년의 첫날은 이렇게 시작되었으니 올해의 단어는 당연히 '인연'이 될 것이다.
시작부터 상당히 골치 아픈 한해가 될 것 같다.
알면서 모르는게 사람의 인연이니까.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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